이육사는 왜 겨울 무지개를 ‘칼’이라 했을까
[김윤태의 한국시 산책] 육사의 시 「절정」에 대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에 새로운 해석 ‘비극적 황홀’ 아니라 ‘항일 의열 투쟁’ 암시 맹추위에 ‘육사의 시’ 떠오르는 안타까움은
살을 에는 듯한 맹추위
며칠 전(1월 20일) 절기로 대한(大寒)이었다. 올해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비가 내릴 정도로 영상의 포근한 날씨였지만 곧이어 맹추위가 몰려왔다. 대한은 1년 중 가장 춥다고 알려진 날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회자될 만큼 덜 추운 경우도 더러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선 두 날이 한겨울의 맹추위를 상징하는 날이다.
강추위를 표현할 때 흔히 “살을 에는 듯하다”라거나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든다”라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한시 「극한(極寒)」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악은 창날처럼 뾰쪽하고
남산 소나무는 거메졌다
매 날자 숲은 겁먹고
학 울자 하늘은 희푸르러졌다
(北岳高戌削 南山松黑色 鷹過林木肅 鶴鳴昊天碧, 진경환 역).
연암은 하늘이 희푸르러졌다고 느낄 만큼 극한의 날씨를 색채감 있게 표현했다. 희푸른 색은 한자로 벽(碧)자인데, 푸른색의 의미로 더 널리 사용되지만, 이를 해자(解字)하면 “옥(玉)처럼 흰(白) 돌(石)”이란 뜻이 된다. 곧 벽색은 흰 빛이 감도는 푸른색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칼날이 ‘시퍼렇다’고 할 때의 그 푸른빛이 바로 벽색인 것이다.
육사가 노래한 ‘겨울’
이쯤에 이르면, 우리는 이육사의 시 「절정」(문장, 1940.1)이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를 법하다. 이 시는 오랫동안 고등학교 국어 및 문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서, ‘저항시인’ 이육사의 시세계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의 시공간이 겨울 및 북방이란 점에서, 한겨울의 극한(極寒)적 날씨와 일제 치하의 극한(極限)적 상황에 자못 어울려 보인다.
매운 계절(季節)의 챗죽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려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깜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 (이육사, 「절정」, 문장, 1940.1)
이 시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대한 저항정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학창시절에 수없이 배운 바일 것이다. 제 1연에서 “매운 계절의 챗죽”은 채찍 같은 겨울의 찬바람, 즉 일제의 폭압을 의미하고, ‘휩쓸려온’ ‘북방’은 우리 겨레가 제 땅에서 내몰려 쫓겨간 만주나 연해주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는 것은 거의 외우다시피한 대목일 것이다. 제 2연의 ‘고원’도 일제 폭압에 의해 우리 민족이 처한 “서릿발 칼날”지고 “한발 제겨디딜 곳조차 없는” 절망적인 극한상황을 말한다고 지겹도록 익혔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다수의 국문학자와 평론가들이 별 예외 없이 평가해온 공통된 해석이라 할 수 있는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지점은 마지막 연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결구 부분이다.
‘비극적 황홀’ 대신 새로운 해석
여러 다양한 해석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대표적인 견해는 “비극적 황홀”(김종길, 1973-74)이라는 개념이다. 영문학자인 김 교수는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비극적 환희”로부터 차용해온 이 용어를 통해, 죽음의 비극에 맞선 초연한 태도로 육사의 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화자가 일제의 탄압과 민족적 고난에 해당함직한 ‘겨울’이라는 극한상황 앞에서 눈감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겨울이 곧 “강철과 같은 차가운 비정(非情)과 날카로운 결의를 내포한 황홀(‘무지개’)”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후 대부분의 평가는 이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같은 주류적 해석으로부터 43년이 흐른 2016년, 한 역사학자에 의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졌다(도진순, 강철로 된 무지개 – 다시 읽는 이육사, 창비, 2017 참조). 그는 깊고 폭넓은 한학적 소양(실은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육사가 그러하다)을 바탕으로 2천년도 훨씬 지난 중국의 전국시대 연나라의 자객 형가의 고사에서 해석의 실마리를 찾았다.

“무지개는 일제를 찌르는 검”
사기에 이르기를.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날 당시 하늘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백홍관일/白虹貫日)”라고 한다. 여기서 해는 진시황을, 흰 무지개는 그를 찌르는 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윤봉길의 의거를 형가의 비장한 각오와 같은 의열투쟁으로 읽어냄으로써, “강철로 된 무지개”가 일제(해/日)를 찌르는 검(흰 무지개/白虹)으로, 곧 항일 의열투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새로이 분석해냈다.
이처럼 “강철로 된 무지개”를 비극적 황홀로 읽든, 항일 의열투쟁의 선언으로 읽든, 육사의 시 「절정」이 가진 겨울의 이미지는 극한(極寒)이자 극한(極限)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강철’ 칼날에 비친 흰 ‘무지개’는 앞에서 말한 겨울의 추위를 색채로 드러낸 ‘희푸름(碧)’의 이미지와도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가.
이 혹한의 겨울은 또한 이육사 자신의 죽음으로도 이어진다. 육사는 1944년 1월 1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1904년 5월에 태어난 그는 죽을 때까지 40년도 채 못 미치는 세월 동안 17차례에 이르는 옥살이를 경험했고, 28세였던 1932년 10월에는 중국 난징에 있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했다고 전한다. 이즈음에 시 「청포도」(1939년 8월)에서 말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손님’으로 추정되는 의열단원 석정 윤세주(石正 尹世胄)와 친분을 맺고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육사의 행적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맹추위속 위태로운 나라의 미래
일제 강점기의 문학작품들을 항일과 곧바로 연결지어 해석하는 경향은 분명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육사의 이 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친일적 성격은 외교안보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뉴라이트적 역사 해석에 기초하고 있는 바, 일본의 전범 기업이 강제동원노동 피해자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제3자 변제라는 방식으로 한국 측이 대신 갚도록 한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국가이익을 도외시하고 미국을 일극으로 하는 집단서방의 ‘규칙기반 질서체계’에 일방적으로 기대고 있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동북아 지역의 전쟁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나라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이 대한(大寒)의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연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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