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변명
[최성호의 사람 사는 건축] 낡고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냐 지난 50년간 급변한 한국사회 낙후감에 아파트 재건축 집착 정치가 용적률 완화할 지도
재건축의 심리학..그리고 정치
건축 역시 사회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건축을 보면 사회 변화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건물의 재건축도 사회변화의 산물이다. 지금 재건축이라고 하면 아파트 재건축을 떠올리지만, 건축 관점에서 보면 재건축은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행위를 말한다. 재건축이란 사회적 수명이 끝난 낡거나 용도에 맞지 않은 건물을 재탄생시키는 과정이다. 건축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재건축을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건물 내구연한이나 재건축에 의한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재건축을 마냥 권장할 수 없다.
그러나 건물 내구연한 요건만 가지고 재건축을 막을 수는 없다. 국내에서 재건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는 재산적 가치 때문이고, 두 번째는 생활 변화에 맞지 않는등 낡았다는 감정 때문일 것이다. 낡았다는 것은 순수하게 감정의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변화가 빠른 나라에서는 그로 인한 박탈감이 심하다. 그러므로 재건축을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작년 대선에서 윤석열 참모들은 이런 점을 잘 읽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 중 하나가 재건축을 공약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내구연한을 아시나요
어쨌든 재건축 공약에 따라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안전진단 배점기준을 올해부터 바꿨다. 가장 걸림돌이 됐던 구조안전성 배점을 50%에서 30%로 낮추고, 주거 환경 배점을 15%에서 30%로, 설비노후도 배점이 25%에서 30%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구조안전성 배점이 높아 안전진단 결과 재건축 판정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행하는 기준으로 하면 11곳의 아파트단지가 재건축 판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구조안전성 배점완화 하나만으로도 재건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이번 배점조정에서 주거환경이나 설비노후도의 배점을 늘린 것은 생활변화에 따른 건물의 ‘사회적’ 내구연한을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건물이 사회적 요구에 맞추지 못하면 그 일대가 퇴락하고 슬럼화 되기도 한다. 1972년 폭파공법으로 철거되면서 건축 역사에서 ‘모더니즘 몰락’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는 푸루이트 아이고(Pruitt-Igoe)가 대표적인 예다. 현상설계 당선작인 이 아파트가 정책의 실패와 더불어 사회적 변화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슬럼화돼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모든 건물이 시대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면 곧 퇴락하고 만다.

우리나라에선 ‘재건축’하면 떠오르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유명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이 아파트가 준공된 때가 1979년 8월이다. 이때만 해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도 안된 1996년부터 재건축 추진 움직임이 있었다.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은 1989년 7월 주택건설촉진법(이후 주택법으로 개명) 제 3조의 9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노후·불량한 주택을 철거하고 그 철거한 대지위에 주택을 건설하기 위하여 기존주택의 소유자가 설립한 조합(이하 “재건축조합(再建築組合)”이라 한다)을 말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가능해졌다. 은마아파트는 일찍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구조안전진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마아파트가 서둘러 재건축을 추진한 것은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사회가 급속하게 변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 번째로 주차장 문제다. 주차대수를 규정한 주차장법 시행령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79년 7월이다. 은마아파트가 준공될 때 쯤이다. 이 시행령에서 규정한 주차대수는 200㎡당 1대다. 아파트 공용면적을 포함해도 세대 당 0.5대 정도다. 은마아파트는 그 기준보다 더 확보해서 준공 당시 세대 당 0.7대였다고 한다.
1980년에 우리나라 차량보유 대수가 50만대였으니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주차대수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 재건축이란 말이 나온 1997년에는 우리나라의 차량보유 대수는 20배 증가한 1000만 대를 돌파한다. 그 사이 은마아파트 단지 내 여유 공지에 주차장을 증설하기도 했지만 강남이라면 가구당 2대인 경우도 많으니 그 단지의 주차대수 부족이 심각해졌다. 1989년에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 아파트도 32평형은 가구당 주차장 1대를 확보했다. 그런데도 주차장 부족에 시달린다. 그러니 강남에 위치한 은마아파트는 말해 뭣하겠는가?
또다른 변화는 아파트 설계와 관련되어 있다. 은마아파트는 모두 복도식이다. 1기 신도시 32평 아파트는 계단식이다. 10년도 안 돼 설계가 완전히 변했다. 복도식 아파트는 복도에서의 소음 문제,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프라이버시 문제 등이 있다. 사람들이 점점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다 보니 복도식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게 됐다.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 대수 역시 큰 문제가 됐다. 31평형과 34평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은마아파트는 한 동의 중간 계단실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엘리베이터 1대 당 144세대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0년 뒤 지어진 1기 신도시 32평형 아파트동은 계단식이라 엘리베이터를 층당 두세대가 쓴다. 25층이라 해도 50세대가 한 대를 쓰는 식이다. 이처럼 은마아파트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구와 다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서구와 비교해보면 유독 우리나라가 재건축 논란이 심하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는 사회가 자기 스스로 변화 발전하는 식이다. 집 역시 개조, 수선, 인테리어를 통해 스스로 변화해왔다. 그렇기에 현재 주거를 포함한 사회문화 환경에 대한 만족도나 적응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대신 집을 버리고 새로 짓는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왔을 때 서구에서는 집을 고쳐 쓰는 리모델링이 유행했다. 새로 짓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존 건물에 대한 애착 등 문화적 배경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외래문화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바꿨다. 특히 1945년 광복 이후 미국 문화가 급속 이식되면서 큰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이어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후 졸속 개발이 이뤄졌고, 서구 문물도 급속 유입됐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부부와 아이들 중심의 핵가족으로 분화됐고, 구성원도 서너명이 대부분이다. 경제 발전으로 문화적 욕구도 급속하게 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보다 더 빨리 문화적 양태가 변하게 됐다.
이런 추세에 따라 1970년대 이후 집 문화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도 강남에 초가집이 있었으니 그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 느낄 것이다. 아파트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70년대 만해도 우리나라 집은 모두 단독 주택이었는데, 그 이후 아파트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다. 아파트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우리 삶이 서구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아파트가 투기대상이 돼 너도나도 찾기 시작하면서 급속하게 늘었다. 2021년 주거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거의 78.3%가 공동주택인데 그중 63.3%가 아파트다. 2015년 아파트의 비율이 53.12% 였으니 6년 만에 엄청나게 늘어난 셈이다. 소위 연립이라고 하는 공동주택 역시 층수만 낮을 뿐 아파트와 같은 구조다.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한 지 50년도 안 돼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사회 변화는 낙후감을 키운다
재건축과 관련한 문제는 단순히 아파트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아파트가 급격히 증가하다보니 부실공사도 많았다. 여기에 지난 50년 사이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 이미 은마아파트 문제 외에도 많은 것이 변했다. 구조규준도 바뀌어 과거에는 없었던 내진설계가 1988년에 도입됐고 이젠 더 강화됐다. 건축공법도에도 변화가 있어, 1979년 처음 벽식구조 아파트가 등장하고 난 이후 벽식구조가 급속하게 확산돼 이젠 모든 아파트가 벽식구조로 지어지고 있다. 층간소음 해소 문제는 늦어져 슬라브 두께를 늘리는 것이 2014년에서야 반영됐고, 입주 전 소음측정은 2022년에야 의무화됐다. 시공품질의 문제, 실내재료도 그 사이 많이 발전했다.
설비부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설치는 지금도 6층 이상 건물에서만 의무이고 5층 아파트에는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금은 법적인 것을 떠나 편의시설로 간주돼 웬만한 건물에는 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1970년대 지어진 32평형 아파트에는 ‘식모방’이라 불리던 가정부방이 있었다.
난방시스템도 많이 바뀌었다. 1982년에 지어진 잠실 주공아파트는 난방이 연탄보일러였다. 이후 중앙난방식, 지금은 열병합발전으로 난방 방식이 발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금 아파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건축되고 있다.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아파트 환경을 중요시하는 설계가 도입됐다. 모든 차는 지하로 들어가고 지상은 아파트 주민의 정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다 보니 10년만 지나도 새 아파트와의 환경·문화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낙후된 아파트로 치부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건물의 내구연한과는 상관없이 아파트 가치가 하락하고, 반대로 아파트 재건축을 부추기는 것이다.
집값 하락기에 재건축은 어떻게 될까
그러나 재건축을 결정하는 요소는 결국 시장상황일 것이다. 소유주가 ‘얼마만큼 이득을 가져갈 수 있는가’라는 잣대로 결정된다. 즉 아파트 시장이 상승세인가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높은 용적률로 지을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같이 아파트 값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아파트 용적률 변화가 없다면 재건축을 할 때 결국 공사비와 이주비용 전부를 아파트 소유주가 부담해야 한다. 32평 아파트의 경우 이주비용까지 포함해서 3억원 이상 들어간다.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 새로 집을 지을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차익도 기대 이하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하락세에서는 재건축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기댈 것은 용적률이 지금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잉여 용적률에서 나오는 추가건설분의 분양금액이 많을수록 소유자 부담은 줄어드니 쉽게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이라면 곧 용적률 상향조정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결국 지금 재건축 요건완화가 정치적 결정이었듯이 용적률 상향등의 문제도 다시 정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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