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의미는
[정운영과 함께 하는 금융소비자보호] 일반투자자 입장에서 ‘적합성’ 판단해야 판매자, ‘누구를 위한 상품일까’ 생각하길 소비자도 ‘내게 적합한지’ 꼼꼼히 따져야
- 다음 예를 들어 살펴보자.
- 현재 60년생인 고정 수입원이 없는 가정주부가 평소 별다른 투자경험 없이 예적금 상품만 보유한 상태였다. 어느날 판매직원이 연락해 만기가 임박한 적금에 대한 안내를 받았고 금융회사 지점을 방문했다. 이 주부는 보유 중인 예적금으로 자녀의 결혼자금에 보태줄 예정이라고 언급하자 판매직원은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볼 수 있다며 OO 사모펀드를 권유했다.
- 판매직원은 평소 본점의 상품제안서, 동영상자료 및 본점 유선문의를 통해 이 사모펀드에 대해 숙지하고, 손실 가능성이 적은 상품으로 이 주부에게 적합한 상품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손실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등 수익 부분 위주로 안내했다. 그러자 이 주부는 가입의사를 표명했고, 판매직원은 이 소비자가 보유한 예금과 적금을 처리한 다음 사모펀드(1억원)와 ELT상품(7천만원)을 가입처리했다.
- 그러나 이 상품들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펀드손실이 심화되자 주부는 환매를 신청해 8천만원 가량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에 대해 소비자는 판매직원이 원금손실 없는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가입 직후에도 전화를 걸어 원금손실 상품이라면 해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비자는 판매직원이 안전한 상품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며, 투자자 성향 분석 항목 또한 실제와는 정반대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은 단순 예·적금 상품으로 자산관리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금리가 낮은 안정적인 금융상품 관리만으로 ‘장수 위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정지향적인 투자자들도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ELS, DLS, 변액보험,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관심을 가지고 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대처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은 과거에 접해보지 못한 복잡한 금융투자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금융지식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심지어는 현장에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금융인들조차도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금융상품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금융상품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선택은 소비자가 맞지 않는 금융상품을 구매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결국 큰 손실을 초래한다.
소비자에 ‘적합한’ 금융상품이란?
그렇다면 금융인들이 금융소비자에게 유익한 금융상품을 권하고 판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금융소비자에게 ‘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하고 판매해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은 기존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 즉 적합성·적정성·설명의무·불공정행위 금지·부당권유 금지·허위 및 과장광고 금지에 관한 내용을 금융투자상품 뿐 아니라 예금, 보험, 대출, 신용카드 등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즉 금소법이 금융회사의 금융상품 판매활동 전반에 대한 체계적 규율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금융상품 6대 판매원칙이 법으로 시행된다고 해도 불완전판매를 완벽하게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답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금융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금융소비자들도 자신들에게 적합한 상품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투자경험 없는 가정주부에 사모펀드를 판매해?
이런 경우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상품을 가입한 여성은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이 없고, 투자경험도 거의 없는 만 62세의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이 펀드가입의 투자재원인 예적금이 당초 자녀의 결혼마련자금용이었다고 말한 점에 비춰, 투자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판매직원은 판매, 상담과정에서 이를 인식했음에도 ‘공격투자형’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권유할 상품을 판매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다고 볼 수 없다.
금소법의 ‘적합성’ 원칙은 일반 금융소비자의 재산상황이나 금융상품의 투자경험 등에 비춰 투자성향에 맞는 상품만 권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대상을 일반금융소비자로 하고 있다. 일반 투자자는 전문투자자에 비해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 정보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을 충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금소법은 일반 투자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금융상품 판매자는 거래 상대방이 일반투자자일 경우 금융상품 계약체결을 권유하기 전에 면담, 질문 등을 통해 금융상품 취득 또는 처분목적, 재산상황, 취득 또는 처분경험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또 일반투자자로부터 서명과 기명날인, 녹취 또는 그밖의 방법으로 확인을 받아 이를 유지관리해야 하고, 확인받은 내용을 일반투자자에게 지체없이 제공하도록 금소법은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적합성 원칙과 관련,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팔아서는 안된다’는 소극적인 의미의 법 해석이 적용되고 있으나 무엇이 부적합한 상품인지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한 상태이다. 그러나 영국은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하도록 하는’ 보다 적극적인 적합성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영국의 ‘적합성 원칙’을 적용해보면
영국처럼 시행한다면, 판매 접점에서 “이 상품이 고객님에게 적합해요”라고 말하려면 판매자는 훨씬 소비자지향적인 관점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고위험’ 금융상품의 경우 단순한 확인 내지 이해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고, 부적합한 경우에는 판매권유를 하지 않아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은 보통 자신의 성향과 투자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매자가 수익이 더 좋고 안전하다고 말하면 쉽게 구매하게 된다. 금융소비자들이 명심해야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수익이 좋으면서 안전한 상품은 없다’라는 것이다. 수익이 좋은 금융상품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다.
금융인들이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판매하려면 ‘내가 판매하려고 하는 이 상품은 누구를 위한 상품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 된다. 금융소비자를 위한 상품인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상품인지를 판단해 보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회사로부터 실적에 대한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이를 판단하고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도라도 최소한의 일반화에 도달해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장 금소법의 적합성 원칙을 지키는 것이 현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금융소비자들도 자신의 적합성 판단을 하는데 예전보다 다소 시간이 많이 소요되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금융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일정시간 감수해 나가길 기대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