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누구를 위한 개헌 주장인가
이익 잘 따지고 거래에 능한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 털기 위한 고육책이 개헌? 야당과 ‘헌법개정’ 거래 나선 것 아닌가
검찰 개혁을 목표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논란과 분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 이번에는 청와대를 진앙지로 하는 개헌론이 점화됐다. 두 사안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누구를 위한 정치행위인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국민의 정치경제적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주장인가.
정치권과 시민사회 안팎에서 이번 개헌론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동시에 이런 구상을 드러낸 배경에 대해 ‘자신에게만 유리한 계산’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누구를 위한, 국민에게 뭐가 좋은 담론인가.
발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오간 ‘임기 단축 개헌’ 발언이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공감하며,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제가 국민적 수용성이 가장 높다”는 원칙론을 거듭 확인했다.
시점이 7월초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여당 주도로 검찰의 직접수사권 및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이에 법조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수사 지연 및 피해자 보호 공백 우려 등 거센 찬반 공방이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형소법 개정으로 국민 피해 우려가 논의되는 시점에 이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을 만나 개헌론 카드를 던진 것이다. 여당 주도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 들어서자, 개헌론으로 타개하는 입장으로 흘린 것이다.
청와대가 밝힌, 개헌론을 제기하게 된 문제의식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거론하며, 이 대통령은 “지금 체제로 가면 결국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등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아니라 권력이나 책임이 배분되는 형태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금 자신에게 권한이 초집중된 모습을 보이며 이를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3 지자체 선거에서 공천, 집권여당의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전총리 밀어주기, ‘뉴명’으로 통칭되는 국회의원 줄세우기 등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이 행하던 권력 남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헌론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국회의 권한을 더 강화하는 식으로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을 잡더라도 제도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려 든다면, 제도의 개편은 무의미하거나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
4년 중임제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딜레마
청와대는 중임제를 통해 5년 단임의 레임덕을 방지하고 국정의 연속성을 확보하되, 국회의 예산 심의권이나 견제 장치를 강화해 권력 집중을 막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도의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병폐가 해소될 수 있을까. 역대 정권마다 권력구조 개편을 시도했으나, 제왕적 권한의 본질은 법조문보다 권력을 운용하는 태도와 소통의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이나 대의민주주의의 질적 개선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임기 주기를 늘리는 방향의 개헌이 자칫 대통령에게 더 오랜 집권의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실질적인 견제는 형식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이유다. 이익 거래를 잘 하는 이 대통령은 집권의 기회를 오래 갖는 4년중임제 개헌에 매력을 느꼈을 지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개헌을 두 차례 이어서 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는 게 가능하다는 헌법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여권의 당무 개입과 소통의 위기와 피로감
더욱이 지금은 여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당무 개입 논란, 지지층의 이탈, 그리고 민심과 거리가 먼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으로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국면이다. 이러한 시기에 거대 담론인 ‘개헌’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국민들은 이를 국가 혁신 과제로 받아들이기보다 ‘정국 전환용 이벤트’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소통과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는 마당에, 권력구조 개편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인상만 준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는 거대 담론의 헌법 개정안이 아니라, 당장 체감되는 민생의 안정과 상식적인 국정 소통이기 때문이다.
엄중한 외교·안보 위기 속에서 불필요한 소모전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대외 외교·안보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는 점이다.
현재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와 구조가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으며, 일본이 그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지정학적 딜레마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대 열강과 맞서야 하는 험난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외교·안보 전략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냉혹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내부의 소모적인 정쟁과 개헌 논의로 국력을 분열시키는 것은 ‘사치’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리스크를 키우는 일이다.
사법 리스크와 공소 취소 논란: 개헌 주장의 진짜 배경인가
가장 민감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대목은 이번 개헌 구상이 이 대통령을 둘러싼 사법적 리스크 및 공소제기된 사건들과 맞물려 해석된다는 점이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공소기각 사유 확대나 재판 진행 중인 사건들에 대한 정치적·제도적 해법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 취임 전후로 제기된 거대 형사 재판과 공소 제기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어렵거나 정치적 부담이 클 때, 개헌이나 권력구조 재편이라는 거대한 틀을 흔들어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의심은 자연스럽다.
만약 개헌 논의의 기저에 사법적 책임을 우회하거나 방어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투영되어 있다면, 이는 헌법 개정이 지향해야 할 공공성과 도덕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차대한 과업이며, 그 출발점은 철저한 국민적 합의와 신뢰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의 명운이나 통치 구조의 손질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실추된 소통의 신뢰를 회복하고 냉엄한 외교·안보 위기에 대처하는 일이다.
사법적 논란을 덮거나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구심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 개헌론도 누적된 정치 피로감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더 큰 혼란과 역풍을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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