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예견한 피터 힉스를 추모하며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를 추모하며] 원자핵 안의 ‘강한 상호작용’ 연구하다 힘 전달하는 입자가 질량 갖는 방법 설명 CERN, 2012년 ‘힉스 보손’ 입자 발견 이휘소 박사와의 특별한 인연도

지난 4월8일 별세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명예교수.
지난 4월8일 별세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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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Peter Ware Higgs, 1929-2024)가 지난 4월 8일 월요일 에든버러의 자택에서 혈액에 관련된 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4세. 힉스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론적 도구를 개발해서 입자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힉스는 에든버러 대학의 명예교수였고, 왕립학회 및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펠로우이자 영국물리학회(IoP) 명예회원이었으며, 컴패니언 오브 아너(Companions of Honour) 서훈을 받는 등 생전에 영국 물리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힉스가 노벨상을 수상한 데에는 그 전 해에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역시 그가 제안해서 그의 이름이 붙은 입자, 힉스 보손(Higgs boson)을 발견하여 그의 이론을 확증한 것이 결정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힉스 보손은 1970년대부터 물리학자들이 새로운 가속기를 건설할 때마다 1순위로 발견하려고 했던 입자다. 하지만 힉스 보손의 질량은 이론에서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가속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발견되기까지는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 2008년 완성되어 2010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CERN의 LHC 가속기는 이전의 가속기보다 4배 이상 높은 에너지에서 가동되어 약 2년 동안 데이터를 내놓았는데, CERN은 이를 분석한 결과 2012년 7월에 마침내 힉스가 예측한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음을 발표했다.[1]

에든버러에서의 연구생활

피터 힉스는 1929년 영국의 뉴캐슬에서 BBC의 사운드 엔지니어인 토마스 힉스와 부인 거트루드 힉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상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힉스가 어머니와 브리스톨에서 살면서 중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다른 도시에서 일했다. 힉스가 다닌 학교인 커담 그래머 스쿨(Cotham Grammar School)은 20세기 영국의 또 다른 위대한 물리학자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이 다녔던 학교이기도 하다. 20년도 더 차이가 나므로 디랙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힉스도 이 학교를 다니면서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힉스는 17세 때인 1946년 런던 시티 스쿨(City of London School)로 옮겨서 수학을 공부하고 다음 해 런던 킹스컬리지에 입학해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1950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1952년에는 석사 학위를, 1954년에는 분자 진동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분자 진동 이론에서의 몇 가지 문제들 Some problems in the theory of molecular vibrations>이다.

힉스의 첫 직장은 에든버러였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에든버러 대학은 전자기학을 완성한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힉스는 대학때 스코틀랜드로 무전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이 도시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의 짧은 연구원 시절을 거쳐 1960년에 정규직 강사 자리를 얻어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연구원 시절 힉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포함한 이론물리학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연구해 왔다. 에든버러에 돌아온 후 힉스가 주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원자핵을 이루는 힘인 ‘강한 상호작용’이었다.

원자핵 속 ‘강한 힘’

가속기가 발전함에 따라 1950년대부터 원자핵과 그보다 작은 세상에 대한 지식이 극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욱 더 커다란 가속기가 건설되었고 새로운 입자가 계속 발견되었다. 겨우 양자역학으로 원자를 이해하고 주기율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물리학자들에게 원자핵 속의 세계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고, ‘강한 상호작용’은 전자기력보다 더욱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힘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힘은 원자핵 안에만 작용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강한 상호작용’은 이름 그대로 전자기력보다 매우 강하기 때문에, 원자들 사이에서도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힘은 원자핵 바깥에서는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 힘은 원자핵보다 작은 범위에서만 작용하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한 가지 설명은 이들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무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기력은 질량이 없는 빛을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먼 거리까지 작용할 수 있지만, 질량이 있는 입자가 힘을 전달하면 전달되는 범위에 한계가 생긴다. 힉스는 전자기이론을 확장한 ‘게이지 대칭성 이론’을 핵력에 적용할 때,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질량을 가지는 방법을 연구해서 1964년에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2]

기술적으로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힉스가 제안한 방법은 “가장 에너지가 낮은 진공 상태가 0이 아닌 값을 가지게 되면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질량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론을 게이지 대칭성의 ‘자발적 깨짐’(Spontaneous breaking of gauge symmetry)이라고 하는데, 힉스의 이름을 붙여서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이라고도 한다. 그에게 노벨상을 가져다 준 업적이 바로 이 이론이다.

이휘소 박사가 부른 ‘힉스 메손’

물리학의 역사에서 흔히 그렇듯이, 이 이론도 거의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벨기에 브뤼셀 대학의 엥글레(François, Baron Englert, 1932~)와 브라우 (Robert Brout, 1928~2011)는 힉스보다 조금 먼저[3], 그리고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의 구랄니크(Gerald Stanford “Gerry” Guralnik, 1936~2014), 하겐(Carl Richard Hagen,1937~), 키블(Sir Thomas Walter Bannerman Kibble, 1932~2016)은 힉스보다 조금 늦게[4], 각각 독립적으로 거의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피터 힉스의 기억에 따르면, 1972년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열린 컨퍼런스의 ‘약한 핵력’ 세션이 끝나고, 당시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학 부장이던 이휘소(Benjamin Whisoh Lee, 이휘소, 1935~1977)가 세션을 정리하는 강연을 하면서 힉스의 논문에서 언급한 스칼라 입자를 “힉스 메손 (Higgs meson)”이라고 불렀다[5]. 이에 따라 이 이론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휘소가 그렇게 부른 이유는 힉스가 논문에서 스칼라 입자를 언급해서라고도 하고, 아래에서 이야기할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2021)의 1967년 논문에서 위의 논문들을 인용하면서 힉스의 논문을 제일 앞에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것이 여러 사람이 공헌한 이론에 하필이면 힉스의 이름이 붙게 된 이유다.

이들은 모두 ‘강한 핵력’을 설명하려고 자발적 게이지 대칭성 깨짐을 연구했다. LHC에서 발견한 ‘힉스 보손’은 약한 상호작용에 관련된 입자이므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힉스를 비롯해서 1964년에 이론을 만든 사람들이 LHC에서 발견한 ‘힉스 보손’을 직접 예측한 것은 아니다. 1967년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가 전자기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SU(2)×U(1) 게이지 이론에 힉스 메카니즘을 적용해서 전자와 중성미자의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논문을 발표했다.[6] 2012년에 발견된 입자는, 굳이 말하자면 와인버그의 논문에 등장하는 입자다. 그러면 와인버그가 억울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와인버그는 이 논문으로 이미 197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입자를 빠르게 가속해 충돌시킨 결과 생성되는 다양한 입자는 힉스 입자의 특성과 일치하는 흔적을 보였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입자를 빠르게 가속해 충돌시킨 결과 생성되는 다양한 입자는 힉스 입자의 특성과 일치하는 흔적을 보였다.

생을 넘어, 우주의 끝날까지

피터 힉스는 매우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그 이후의 인생도 내내 그러했다. 힉스 보손의 발견을 발표하는 자리에 초대받고서도 뒷풀이에 어울리지 않고 곧장 집에 돌아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맥주 한 캔으로 조촐하게 자축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그렇지 않아서, 앞서 말했듯 새로운 가속기가 지어질 때마다 그의 이름은 다시 화제에 올랐고 그의 유명세는 점점 높아졌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여러 명예가 덧붙여졌고, 1984년 러더퍼드 상, 2004년 울프 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그는 에든버러 시의 살아있는 기념물이자 일종의 관광 자원이 되었고, 시에 “탁월한 기여(outstanding contribution to the city)”를 했다는 공적으로 2011년에는 시에서 수여하는 ‘에든버러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군축 운동이나 그린피스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은 그 당시 만난 활동가 조디 윌리암슨(Jody Williamson)이다. 그들은 1963년 결혼해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부인은 2008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을 발전시켰던 여러 이름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피터 힉스도 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붙은 이론은 인간이 우주와 물질을 탐구하는 한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이며, 그의 이름이 붙은 입자는,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의 끝날까지 존재할 것이다.

주석

[1] Georges Aad et al., ATLAS Collaboration, Observation of a new particle in the search for the Standard Model Higgs boson with the ATLAS detector at the LHC, Phys. Lett. B 716, pp.1-29 (2012) ;

Serguei Chatrchyan et al., CMS Collaboration, Observation of a New Boson at a Mass of 125 GeV with the CMS Experiment at the LHC, Phys. Lett. B 716, pp.30-61 (2012).

[2] P.W. Higgs, Broken symmetries, massless particles and gauge fields, Phys. Lett. 12, (2) pp.132-133 (1964) ; Broken Symmetries and the Masses of Gauge Bosons, Phys. Rev. Lett. 13 (16) p.508 (1964).

[3] F. Englert, R. Brout Broken Symmetry and the Mass of Gauge Vector Mesons, Phys. Rev. Lett. 13 (9) p.321 (1964).

[4] G. S. Guralnik, C. R. Hagen, T. W. B. Kibble. Global Conservation Laws and Massless Particles, Phys. Rev. Lett. 13 (20) p.585 (1964).

[5] P. Higgs, “My Life as a Boson”, talk presented at Kings College London, Nov. 24th, 2010.

[6] S. Weinberg, A Model of Leptons, Phys. Rev. Lett. 19, 1264 (1967).

이 칼럼을 영상으로 · 6:39 [더칼럼니스트] ‘神의 입자’ 예측한 피터 힉스를 추모하며!
글쓴이

이강영 경상국립대 물리교육과 교수

이강영은 경상국립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KAIST에서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여러 기관에서 연구하며 140여 편의 논문과 5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공저 제외)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으로 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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