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의 ‘고독한 전쟁’을 응원하며

오픈AI와 싸우는 뉴욕타임즈 포털에 종속된 한국 언론들

지난 20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의 20층 설명회에 홀을 가득메운 언론인들. 사진= 문주용 기자
지난 20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의 20층 설명회에 홀을 가득메운 언론인들. 사진= 문주용 기자
  • [1분 핵심 요약]
  • - 포털 입점에 목매는 한국 언론의 ‘비굴한 절박함’은 결국 기사 한 줄의 주권을 포기한 자발적 예속이다.
  • - 뉴욕타임스(NYT)는 3조 원의 매출과 1,000만 구독자라는 자생력을 바탕으로 AI 빅테크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전쟁을 선포했다.
  • - 우리가 ‘우라까이’와 플랫폼 종속에 안주할 때, 지식의 샘은 마르고 언론의 영혼은 염가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 결론 NYT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플랫폼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된 기록자로서 ‘영혼의 제값’을 찾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작은 인터넷 매체 <더 칼럼니스트>가 응원하는 이유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소외의 역설 포털 성벽 밖의 매체들은 ‘간택’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플랫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보적 시선’을 보존할 수 있었다.
  • 구독은 방패다 NYT의 당당함은 기술이 아니라 ‘독자와의 직접적인 신뢰(구독료)’라는 재무적 독립성에서 나온다.
  • 지식의 엔트로피 언론이 투자(Cost)를 멈추고 복제에만 매달리면 AI가 학습할 데이터도 파멸하며, 결국 인류의 지식 생태계 자체가 붕괴한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청 인근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엔 수많은 언론인이 홀을 가득 채웠습니다. 2년여 만에 재개된 네이버의 언론 검색제휴 정책설명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저도 회사 동료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신규 미디어 입점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 수많은 언론 경영인과 콘텐츠 개발자들이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들의 절박한 희망은 하나였을 겁니다. ‘우리 콘텐츠를 넘겨줄 테니, 수많은 독자가 모인 세상에 닿게만 해달라’는 것.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축복과 예속의 20년...포털이 남긴 것들

물론 포털이 한국 언론에 준 ‘유통의 축복’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독자 입장에선 모든 뉴스를 한곳에서 비교해 읽는 압도적인 편의성과 정보의 민주화를 누렸고, 언론사는 배달망이나 트래픽 비용 없이도 수백만 명에게 도달하는 기회의 사다리를 얻었습니다.

포털은 ‘콘텐츠’라는 원자재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로 가공해 가치를 극대화하는 ‘유통 기술의 공유’를 실현하며 상생의 명분을 쌓아왔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의 역사는 이 거대 플랫폼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초기 포털 뉴스 서비스가 시작될 때, 우리는 그것이 새로운 기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언론사는 스스로 브랜드를 거세당했고,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고리를 포기했습니다. 클릭 몇 번에 영혼을 넘긴 대가는 푼돈에 불과한 전재료와 ‘포털 입점’이라는 허울뿐인 완장이었습니다.

포털의 낙점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심층 취재 대신 복사해서 붙여넣는 ‘우라까이’ 기사로 연명하는 사이, 콘텐츠는 어느덧 염가 판매되는 소모품으로 전락했습니다.

홀을 가득메운 언론인들에게 네이버 포털 검색제휴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네이버 뉴스제휴위원회. 사진= 문주용 기자
홀을 가득메운 언론인들에게 네이버 포털 검색제휴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네이버 뉴스제휴위원회. 사진= 문주용 기자

NYT의 선전포고...”우리는 데이터만이 아니다”

지금 뉴욕타임스(NYT)가 오픈AI와 구글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을 지켜보는 한국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20년 전 우리가 겪었던 사태의 ‘AI 버전’이자, 그보다 더 본질적인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NYT는 최근 “AI 챗봇이 우리의 기사를 무단 복제하여 지식의 원천을 약탈하고 있다”며 빅테크의 ‘공정 이용’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AP 등 거대 언론사들이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수백억 원의 ‘학습 데이터 사용료’를 받고 타협할 때, NYT는 유독 고집스럽게 법정으로 향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우리의 기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출력하는 사례가 수없이 발견됐다. 이것이 어떻게 새로운 창작인가? ‘정밀한 복사기’에 불과하다”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또 “AI는 정보를 더 널리 공유하고 지식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오픈AI의 주장에 대해서, NYT는 “사용자들이 우리 사이트에 와서 구독료를 내고 읽어야 할 양질의 기사를 챗GPT가 요약해서 보여줌으로써 ‘유료 구독 모델’을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이는 공생이 아니라 남의 콘텐츠로 자기 장사를 하는 ‘부당 경쟁’”이라고 강변합니다.

나아가 NYT는 “우리는 기사 한 줄을 쓰기 위해 전 세계에 특파원을 보내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AI 기업들은 비용은 지불하지 않은 채, 수익만 가져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NYT의 근거 있는 자신감...3조 매출과 1천만 구독자

NYT가 이런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걸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 언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 생산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탄탄한 재무 구조가 깔려 있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2023년 연간 매출 24억 2,600만 달러(약 3조 2,000억 원)를 기록하며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숫자로 증명했습니다. 특히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광고가 아닌 ‘독자 구독료’에서 나온다는 점은 경이롭다할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 1,037만 명에 달하는 유료 구독자 군단은 NYT가 포털이나 플랫폼에 구걸하지 않아도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자신들만의 성벽’을 이미 구축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콘텐츠는 파는 물건이 아니라, 독자와 맺은 ‘신뢰의 증표’라는 경영 신념입니다.

위기감 없는 안일함, 그리고 소외된 매체들

미국 언론시장이 우리나라의 다르지만, 한국 언론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NYT가 지적 재산권을 위해 전쟁을 벌일 때, 우리 언론들은 오히려 AI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기사를 더 빨리 양산해 포털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을지 고민합니다. 데이터가 농락당한다는 위기감은커녕, 자발적인 예속의 연장을 꿈꾸는 형국입니다.

<더 칼럼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대안 매체들은 처음부터 포털의 성벽 밖에 있었습니다. 주류 언론들이 완장을 차고 가두리 양식장 속에서 안주할 때, 우리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소외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 소외는 차라리 축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포털의 문법에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적어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시대에 묻는 ‘기사 한 줄의 주권’

AI 시대, 다시 찾아온 콘텐츠 염가 판매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플랫폼의 가이드라인 뒤에 숨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의 생존은 검색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독보적인 관점’에 있음을 NYT의 고독한 전쟁은 웅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IT 전문 변호사는 “아무도 고비용이 드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지 않게 되면, 결국 AI가 학습할 ‘지식의 샘’ 자체가 마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AI 시대를 앞두고 지금 한국 언론에 가장 시급한 것은 차별화되고 독자적인 콘텐츠 생산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결국 뉴욕타임스의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계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기사 한 줄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이 고독한 전쟁을 우리가 말없이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네이버 정책 설명회장에 모여 귀를 쫑긋 세우던 그 비굴한 절박함 대신,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포털의 부속품인가, 아니면 독립된 기록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을지 모릅니다.

언론의 영혼은 결코 염가가 되어선 안됩니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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