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된 대한민국, 제국건설의 꿈 꿔야
[채진원의 정치 읽기] 폐쇄적 민족주의로는 21세기 세계화에 부응못해 여야 ‘혐오정치’ 탈피하고 `공화의 나라` 만들어가야 시민 참여와 문화 다양성 갖춘 ‘보편제국’ 목표 세우자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UNCTAD)는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이사회에서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기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1964년 운크타드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온 국민이 자긍심을 갖고 기뻐할 일이다.
이번 쾌거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선진국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의미다. 외교부는 “이번 선진국 그룹 진출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로부터 한국의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확인받고,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이 가능한 성공 사례임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선진국 넘어선 국가발전의 목표 필요
이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공인된 선진국이 된 만큼 새로운 국가발전의 꿈을 꿀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에 머물지 않고, “주민자치연방공화국”이라는 ‘보편제국’(empire) 건설을 추구하는 꿈이다. 여기서 ‘제국’이란 한마디로 팍스 코리아나(Pax Coreana) 정신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문명국가를 말한다.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을 이웃나라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개방된 마음을 가진 나라로 학술적으로는 ‘비지배적 자유’를 추구하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가진 문명국가(헌법제국)를 말한다.
‘보편제국’이란 자국 시민과 주변국 이웃시민들에게 ‘공동의 자유’를 위해 시민권과 참정권을 차별없이 보편적으로 동일하게 보장하면서도 문화의 다양성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개방적인 연합국가(합중국)’를 만들고, 국가운영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발적 애국심으로 운영하는 공화주의적 국가패러다임을 말한다.
이런 ‘공화주의적 애국심’에 기초한 보편제국의 가능성은 이미 우리 헌법 전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그것은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더욱더 이것은 우리 헌법정신의 기원인 3.1 독립선언문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무도함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를 꼼꼼히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팍스 코리아나’ 제시했던 문희상 국회의장
이 ‘팍스 코리아나’의 정신은 2019년 6월 1일 러시아에 이어 발트 3국을 공식 방문했던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은 “동포 여러분의 힘을 합치고, 여야 없이 합치고, 남북을 합쳐 전 세계에 ‘팍스 코리아나’ 시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문 국회의장의 ‘팍스 코리아나 시대’ 제안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뒤 촛불시민혁명으로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는 한국이 주변국들의 지지와 동의를 받는다면, 팍스 코리아나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팍스 코리아나’는 주변 패권국들에 의해 한반도의 주권이 유린되고 분단체제를 고착화한 우리의 허약했던 과거사를 극복하고, 자주적인 개방국가의 위상을 확립하여 번영과 평화로 나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계기이자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제국’ 건설의 꿈을 가져야 하는 현실적 배경은 뭘까? 지금과 같이 폐쇄적인 혈연적·민족적 동질성 및 순수성에 기초하여 이민자들을 경계하고 차별하는 민족주의(nationalism)나 제국주의(imperialism)나 패권주의(hegemonism)로는 21세기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로마 공화정보다 더 관대한 시민권 부여정책을 폈고, 오스만 트루크 제국이 이민자에 대해 더 포용적인 정책을 폈던 경험과 같이, 대한민국은 인종, 종교, 언어, 소수자 등 다양한 이질성을 포용하는 ‘다문화시민국가’로의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미국 지역별로 성소수자의 숫자와 IT산업간의 상관관계가 정비례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자유롭고 관용적인 지역에 많은 인재가 몰려들어서 경제적으로 생산성의 상승효과를 얻었다는 연구결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보편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헌법정신을 충실하게 지키는 데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성숙부터 필요하다. 여야 정치권이 도덕적 선악의 이분법으로 자신은 옳고 우월하며 상대는 그르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여 상대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공격하는 진영논리와 혐오정치를 멈추고 이것과 절연해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서로 유한한 존재로서의 한계를 연민하면서 ‘공동의 자유’를 지키는 공화의 나라를 만드는데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이 빨갱이, 친일파로 딱지붙이며 상대를 공격하여 국가와 국민들을 대립과 갈등으로 분열시켰던 ‘혐오정치’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빨갱이, 친일파라는 타자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도 차이와 다름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이것이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옳음의 우월성과 그름의 열등성으로 나눠지면서 열등성을 가진 존재는 괴멸되거나 타도되어도 되는 악마적 존재로 정당화되었던 것은 아닐까?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교훈
한국이 패권주의 경쟁속에 있는 미국과 중국의 줄서기 선택을 강요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국이 미중의 문명충돌과 패권충돌을 막고 이를 완화시킬 독자적인 문명교류국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 차원에서 “한국 아시아방파제 역할론”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강력한 ‘방어적 군사력’으로 ‘아시아 방파제역할론’을 담당함으로써 중국에는 한반도가 미국의 중국진출 통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는 한미일 동맹의 전략자산을 방어하는 아시아의 방패제가 될 것임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국 정치가 ‘어느 정치세력이 문명교류국가를 만드는데 유능한가의 경쟁구도’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대(對) 민족주의를 놓고 벌이는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구도를 넘어 ‘새로운 보편제국 건설’의 방법론을 놓고 논쟁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여야 정치권이 혐오정치를 멈춰야만 ‘제2의 한국전쟁’도 예방하고 막을 수 있다. 한반도는 21세기 미중패권경쟁이 심화되는 한반도에서 미중의 대리전으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치권은 ‘제2의 한국전쟁’에 대비하여 자발적 애국심을 갖는 ‘국민개병제 군개혁’을 기본으로 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 연대임금제 실시’, ‘노사정 고통분담 및 대타협’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정전반의 쇄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치권은 안보와 관련해서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의 ‘자치안보’를 배울 필요가 있다. 스위스는 ‘중립’이 아니라 ‘자립(自立)’과 ‘자강(自强)’을 실천하고 있다. 스위스는 주변에 프랑스, 독일, 이태리,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이 있어도 여전히 영세중립국으로 전쟁과 분쟁에서 휘둘리지 않고 중립을 취하고 있는 강소국이다.
그렇다면 이런 스위스의 영세중립국의 원칙과 힘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게마인데(기초자치단체)와 칸톤(광역자치단체)중심의 주민자치의 전통에서 자라난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무장중심의 자결주의에서 왔다. 스위스 시민들의 자결주의는 국민개병제도를 통해 모든 시민이 전사라는 유비무환의 무장중립원칙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자결주의로 무장한 스위스 시민에 대해 히틀러도 감히 침공하지 못했다. 영세중립국을 지키는 스위스 시민의 자결무장력은 사대교린과 소중화의 전통,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보편제국 건설을 위한 주민자치에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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