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사 대(對) 친일파: 이분법의 함정

일제 치하에 고통받았던 내국인 민중들 억압에도 독립자금 마련해 송금한 이들 김구 선생의 민족지사 대 친일파 이분법 글로벌 경쟁 21세기, 국민 협력에 안맞아 정치인들, 친일논쟁 정치적 이용 말아야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항복하자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던 국내의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항복하자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던 국내의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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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586 운동권 정치 청산론’에 대해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했던 친일파들의 논리와 똑같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홍 원내대표가 자신들을 독립운동가처럼 이야기했던데, 어느 독립운동가가 돈봉투를 돌리고 쌍욕을 하나”라며 “독립운동가를 모욕하는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2024년은 1919년 3·1운동에서 기원하는 민주공화국이 건설된 지 105년이 되는 해이다. 105년 된 지금 후손들은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부합하는 나라를 건설했는지를 자문해 보면서 정치권의 친일파 논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 토론하면 좋을 것이다.

국민은 조국에, 정부는 해외에

서구의 선진국들은 대개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nation-state)를 건설하는 데 있어 적과 동지, 외국인과 내국인 같은 ‘상상의 공동체’의식을 실현시킬 ‘통일전쟁’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배타적 영토공간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을 형성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선진국의 경우와 달랐다. 국민(nation)의 형성은 일제지배하의 조국의 땅인 국내에서 이뤄졌고, 국가를 대표하는 임시정부(state)의 수립은 일제 밖 해외의 중국 땅에서 이뤄졌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서로 떨어진 다른 공간에서 ‘국민의 형성’과 ‘정부의 수립’을 했기 때문에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더 둘을 결합시키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복잡했다.

억압에도 독립 염원을 지켰던 국내파 민중들

당연히 국민의 형성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일제 밖 해외 민족지사들도 힘들었겠지만, 더 힘들었던 존재는 당연히 ‘국내파 민중’들이었다. 내국인들은 일제지배하의 국내에서 근대적 국민을 형성하면서, 해외 정부를 만들어 운영했던 민족지사들에게 필요한 독립자금을 마련해주고 자신들은 힘들게 살아갔던 민중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권이 벌이는 ‘친일파 논쟁’을 보면, 그 배경에는 여전히 ‘민족지사대(對) 친일파’의 구도처럼 선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만들어서 해외 민족지사들의 헌신을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과도하게 이상주의적으로 칭송하고 특혜와 보훈을 주는 듯하다. 반대로 내국인들의 국민 형성에 대한 노력과 독립운동의 헌신과 기여를 상대적으로 저평가하거나, 나아가 과도하게 친일파의 색깔을 입혀 매도하고 배척하는 풍조가 뿌리 깊게 있는 듯 보인다.

반성적 성찰이지만 진정한 애국의 이름으로, 조국의 자유와 독립 및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을 위해 싸운 애국자의 범위에는 해외 민족지사들의 비중 만큼이나 국내파 민중들의 비중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제가 점령한 조국의 땅에 뿌리박으면서 여러 형태로 탄압과 억압을 받으며, 드러나지 않게 저항하고, 때로는 견디지 못할 상황 속에서 일제의 부역을 강요받으면서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근대적 국민국가를 만드는 건국(nation building)과정에 참여해 조국 근대화에 앞장섰던 국내파 민중들의 헌신을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해외 민족지사=대인배=옳음=선’, ‘국내 민중들=소인배=그름=악’ 같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우열을 따지고 위계서열을 가르는 민족주의에 대한 찬양은 내국인을 차별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친일파로 매도하면서, 반대로 해외 민족지사들을 과도하게 우상으로 숭배할 가능성을 만든다.

김구 선생의 ‘친일파 규정’ 오류

하늘 아래 신과 같은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없을 것이다. 특정한 역사속에 끼여 있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들의 행위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민족지사가 김구 선생이다. 1946년 11월 7일 <Japan Diary>에 Mark Gayn이 남긴 자료에 따르면, 김구 선생은 친일파의 범위를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했다. 김구 선생은 “한국 내에 있던 사람들은 사실상 모두 일제 협력자다. 그들은 모조리 감옥에 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런 발언을 볼 때, 김구 선생은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자신이 서 있는 해외 독립지사의 선의를 부각하려다 보니 국내파들을 모두 친일파로 보고 악마화하면서 그 범위를 넓게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논쟁거리다. 해외 민족지사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을 만들어 주던 사람들은 여건상 국내를 떠나지도 못하면서 일제의 압제와 수탈속에서 독립을 지원했던 국내파 민중들이다. 일제 지배하에서 국내에 있었던 국내파들을 친일 부역자로 보고 모조리 감옥에 보내겠다는 김구 선생의 시각은 이분법적선악관에 따른 민족지사들의 과도한 선민의식, 특권의식, 보상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김구 선생과 같은 인식이라면, 박정희 독재정부시절 해외 망명정부를 세우지 않고 국내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모조리 독재협력자라고 비난받게 된다.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경이 됐다.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경이 됐다.

소련 침략하의 체코에서 민주화 운동

국제시사잡지 PADO의 편집장인 김동규 박사가 번역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인간은 위험이 멀어지면 즉, 안전해지면 용감해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은 해외 독립지사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 살았던 즉, 안전하지 않은 위험지대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국내파 사람들의 헌신과 공을 다시 보고 되살려야 한다는 경구로 들린다.

이 소설에서 소련의 체코 민주화 무력 진압을 피해 안전한 스위스로 망명 와 있는 체코 지식인들의 모임 장면이 나온다. 이들 체코 망명객들이 술을 마시고 울분을 토하면서 당장 수도 프라하로 돌아가 소련에 맞서 싸우자고 목소리를 올리자, 이를 듣던 여자 주인공(사브리나)이 “그렇다면 당장 체코로 돌아가서 싸우시죠!”라고 쏘아붙이고 자리를 떠난다. 이에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위험에서 멀어지면 용감해지는 법이다”라고 간단히 한마디 해설을 달았다.

이 구절은 ‘국내 친일파 대(對) 해외 독립지사’라는 선악의 이분법이라는 프레임에 따라 친일파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반사적으로 해외 독립지사를 영웅화하면서 숭배하는 논리를 연상시킨다. 이에 그동안 국내파 독립운동가들의 공을 가리거나 과도하게 친일파로 매도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반성케 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지하 조선에서 조선총독부와 타협을 해가며 위험을 감수하면서 온건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멀리 있는 상하이와 만주, 연해주의 독립투사들보다 비겁한 친일 부역자로 보는 태도는 전세계 식민지-탈식민지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악의 이분법’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준다.

식민시대, 가해자도 피해자도 구별 어려워

해외 민족지사를 우월한 우상으로 강조하면 할수록 열등한 존재인 친일파를 악으로 보면서 악마에 대한 복수를 정당화하는 ‘응보적 정의’를 키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홉스에 따르면, 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간들을 이리로 만든다. 무정부적 상태에 있는 식민시대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엄밀하게 가리기가 힘들다. 대체로 무정부 상태에서 벌어지는 국가 폭력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성이 중첩되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호모 사케르>를 쓴 조르조 아감벤의 언급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정체성이 아닌,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속에 끼어 있는 연약한 인간’(호모 사케르)으로 봐야 ‘응보적 정의(과거청산, 기억정치)’가 아닌 ‘회복적 정의’가 가정하는 사과와 용서 및 화해가 가능하다.

무정부 상태속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한 선행과 악행을 어느 한 사람의 영웅과 악인이 했다는 식으로 단순화해 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시각은 공화주의 역사관과 거리가 멀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침묵, 묵인, 방조로 협력한 다수의 중간지대 사람의 역할과 의미를 드러내는 공화주의 시각도 필요하다.

공화의 시대, 이분법적 진영이념 맞지 않아

왕조사관, 영웅사관, 귀족사관, 민족사관, 민중사관, 유물사관 등은 민주공화국 정신과 공화주의 역사관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독단적인 ‘영웅만들기’는 우상숭배이고, 반대로 독박 씌운 ‘악인만들기’는 마녀사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맞게 민족지사와 친일파라는 이분법적 선악관에서 벗어나 공화주의 역사관을 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민족주의와 공화주의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감을 선동해 동질성이 강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민족주의’라면, ‘공화주의’는 동등한 동료시민들이 다양성과 이질성을 존중하면서 민족·종교·인종의 영역에서 차별이 없이 연대하는 개방적인 나라를 만드는 시도이다.

따라서 민족지사와 친일파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는 민족주의에서는 칭찬받을 일이지만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공화주의에서는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서 상대를 적대화하고 악마화하면 정말 적이 만들어지고, ‘생각이 다르면 악이고, 나는 정의’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민주공화국은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 건설과 관련해서 민주화 단계가 어느 정도 달성된 만큼, 이제부터는 세계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냉전화, 탈물질화 등 탈경계의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21세기 공화단계로 가는 게 적절하다. 그래서 일제시대, 독재시대, 반공시대에 적절했던 친일 대 반일, 친북 대 반북,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처럼 선악의 이분법과 같은 패러다임의 언행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서 글로벌 협력을 추구하며 생존해야 하는 우리의 국격을 훼손하는 것으로,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논리로 보인다. 정치권의 친일파 논쟁은 반복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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