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배우자 수난시대 끝내자
정치권의 ‘대통령 배우자 죽이기’ 정쟁 이들의 공사 구별 없는 처신은 ‘문제’있지만 법적으로 부여되지 않은 이들의 공적 역할 ‘퍼스트레이디 법’ 제정해 지원과 감독해야
‘3김 여사’ 수난 시대
시중에서 김정숙 여사, 김건희 여사, 그리고 김혜경 여사까지 ‘3김 여사 수난 시대’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됐다. 어쩌다가 대통령 배우자나 유력 대권주자 부인까지 권력투쟁을 위한 정쟁에 연루되어 수난을 받는 시대가 되었을까? 마음이 무겁고 씁쓸하고 착잡하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 5월 7일 야당이 요구하는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에 대한 특검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는 민주당이 각종 특검 공세를 펴고 있는 것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었다.
당시 김 당선인은 “김건희 여사의 300만원짜리 특검을 받아들이는 대신 적어도 3억원 이상으로 보는 김혜경씨의 국고손실죄 의혹에 대한 특검, 김정숙 여사의 관봉권(띠로 묶은 신권, 즉 돈다발)을 동원한 옷과 장신구 사 모으기 의혹, 그리고 그 옷과 장신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3김 여사에 대한 특검을 역제안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당선인이 ‘3김 여사 특검’을 제안한 후 약 2개월 반이 흘렀다. 그동안 ‘3김 여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7월 25일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혜경 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당선되게 하기 위해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를 매수하려 했다”며 이 같이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출장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7월31일 외교부 관계자를 소환하여 조사했다. 법조계에선 고발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 만큼 피고발자인 김 여사 대한 서면조사도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 8월 1일에는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권위위원회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한 무혐의 종결 처분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한 ‘권익위·윤석열·김건희 특검법’을 대표 발의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제2부속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허울뿐인 제2부속실 설치는 김건희 여사 의혹 방탄용 ‘벙커’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통령 배우자 및 유력 대권주자 부인 입장이 대통령 못지않게 힘들어졌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3김 여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최고위 공직자 부인으로서 공사 구별이 없는 처신이 문제로 보인다.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만들자
다만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의 관점에서 볼 때, ‘3김 여사’를 위한 변명도 필요해 보인다.
첫째는 권력장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승리지상주의적 정쟁정치’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 정치권이 차기 대권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자연인 위치의 대통령 배우자 및 대권주자의 부인을 정쟁의 도구로 끌어들여 공격과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졸렬하다.
좋은 정치가 꿈꾸는 법치주의의 핵심인 ‘법의 지배’(rule of law) 관점에서 볼 때, 정쟁의 수단으로 대통령 부인의 약점을 끌어들이는 처사는 문명적이지 않다. 권력정치의 잔혹함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의 폭력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최소한 대통령 부인에 대한 법적 지위에 대한 근거조항을 만들어 놓고 나서, 이것을 위반하는 경우에 문제로 삼는 게 적절했을 것이다.
둘째는 정치권의 직무유기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 사실상 대통령을 보좌하는 배우자와 가족의 공적 역할을 법적으로 부여하지 않고 방치해온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먼저 비판받을만 하다.
한국 정치는 민주화의 핵심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면서도 오랫동안 대통령을 보좌하는 배우자의 공적 역할을 법적으로 부여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약점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법적 미비점이 부패비리로 연결돼 역대 대통령들이 위기에 빠졌음에도, 정치권은 대안제시에 무능했다.
지난 정부에서 여야 정치권과 문재인 전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벌어지고 부패비리로 연결된 ‘제2부속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법’과 같은 초당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법적 미비로 사실상 현재의 정치권이 ‘대통령 부인 죽이기’ 정쟁에 나서도록 방조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제2부속실을 통해 영부인의 리스크 관리를 해왔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갈수록 커져가는 영부인의 활동에 들어가는 사업비와 활동비를 제2부속실이 감당하거나 관리하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즉, 제2부속실은 영부인을 보좌하는 비서진에게는 급여와 출장비 등을 지급하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닌 영부인에게 사업비와 유지비를 투명하게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관행은 영부인이 참석하는 공식행사는 경비 일부를 해당 부처가 함께 부담하거나 비서실 특수활동비로 충당해온 게 사실이다. 법률에 근거한 영부인의 역할과 지위 및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한, 영부인의 사업비가 투명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은 흔히 퍼스트레이디로 호칭되지만 법적인 공식 직책은 아니다. 그래서 의전과 예우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이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칭찬하였는데 이것은 모순이다. 아무런 법적 책임과 권한이 없는 데, 외교관 신분도 아닌 자연인 위치의 영부인이 어떻게 ‘단독외교’를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판 ‘퍼스트레이디법’을 만들자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영부인과 가족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고 레임덕으로 빠지고 말았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했는지 반성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누가 집권을 하든 대통령의 배우자가 사실상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그를 법의 통제 밖에 두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법치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그 배우자는 관행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그에 걸맞은 역할과 행동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대통령 부인의 공직 부여에 대해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 미국 연방법(USC) 제3편 제105조는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데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 대통령이 배우자가 없을 경우 이러한 보조 및 서비스는 대통령이 지정하는 가족에게 제공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비공식적인 제1참모라고 할 때,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이행해야 할 공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역할과 임무가 부여되는 것이 상식이지 않을까?
따라서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영수회담 등을 통해 한국식 퍼스트레이디법(가칭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법적 근거와 지원조직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에 초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 배우자법’에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임무, 예산 지원 등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 배우자의 수난시대를 끝내도록 조치하는 게 정치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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