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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의 과학과 철학] 도쿄 올림픽 운영 방식,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코로나에도 올림픽 치렀다’..인간의 노력으로 인정

[정연섭 ‘크로의 과학 사냥’ 저자] 도쿄 올림픽
7월 23일에 성화를 밝힌 2020년 도쿄 올림픽은 이제 반환점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일 년 연기되어 개최되는 아픔이 있지만 인류는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여 무장하고 올림픽의 새 역사를 써 가고 있다.
일본은 1964년 올림픽을 유치하여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성장한 모습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고속열차 신칸센을 개통하였고 정지위성으로 중계하는 신기술을 보여주었다. 냉전을 종식시킨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까지 일본은 올림픽 약발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갔다.
1990년부터 디지털 기술로 세계가 연결되자 일본의 아날로그 기술은 차츰 잊혔다. 침체된 일본은 재도약의 일으킬 국제대회를 생각해 냈고 2000년 후반부터 두 번째 올림픽을 유치하려 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물 건너갔다고 느꼈지만 운 좋게 2012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경제문제가 있는 마드리드, 인권문제가 있는 이스탄불을 제치고 도쿄를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다.
최근의 국제대회는 국가 인지도를 올려주지만 이전처럼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건설하느라 막대한 비용이 든 경기장은 행사가 끝나면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대규모 토목 건설 공사로 인한 환경 훼손도 문제이다.
개최국은 예산을 줄이려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 친화적 제품을 도입한다. 도쿄 올림픽 선수촌이 골판지 침대를 제공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도쿄 올림픽도 예산을 초기에 7조원 산정했으나 나중에 17조원으로 증액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1964년처럼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이웃나라 행사에 발 벗고 도와야 하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홈페이지에 표기하여 주최국의 아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회식 참석을 저울질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수출규제, 과거사 문제, 후쿠시마 현안을 토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참석을 포기했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은 속 좁은 정치인들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는 주최국이 포용하고 인접국이 참석하는 올림픽 정신이 성취되기를 빈다. 양국의 현안이 중대할수록 올림픽 참석과 분리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 처리수 방류문제를 보자. 인접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관심거리이지만 일본은 기준에 맞게 처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방사능 피폭 탓에 도쿄 올림픽을 걱정했다. 못 본 체할 수 없었던 한국 원자력학회는 2019년에야 올림픽 체류자에 대한 방사선 영향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12년 방사선 영향에도 불구하고 도쿄를 선정했던 결정과 비교하면 한참 늦은 결정이다. 한국은 일본이 전체주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며 비난하고 일본은 한국이 비근대적 사고를 한다고 비난한다.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될 수 없다며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일관계는 한반도를 통해 발전하던 일본이 16세기 이후 한반도를 우회하여 서양과 교류하던 국제관계와 비슷하다.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이성의 과학기술을 받아 들었고 한국은 중국의 유교 사상에 젖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은 16세기의 조선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고 문화에서도 한층 역동적이다. 조선의 불행한 운명이 반복될 가능성은 없다.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는 한국이 형다운 의연함을 이웃나라에 보여줄 필요도 있다.
기회의 올림픽
코로나 시대에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어렵다. 온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이라 해도 그렇다. 일생에 한두 번 오는 기회에 메달을 목표로 땀을 흘린 선수들이야 다르겠지만 필자는 개최일자도 제대로 몰랐다.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우리보다 몇 곱절 많다 보니 저러다가 다시 연기되고 취소되리라 여겼다. TV에서 개막식을 보고서야 일본도 참 끈질기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무리하여 개최한 올림픽으로 걷잡을 수 없는 확진자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떠나지 않는다.
며칠 후 축구 선수 이동준의 거침없는 공격과 탁구선수 신유빈의 멋있는 드라이브를 보면서 올림픽을 새롭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올림픽이 묻힐 순 없다. 한 정권의 이념의 논리, 환경의 논리, 종교의 논리가 긴 역사가 살아 있는 올림픽을 막을 수는 없다.
부족하고 미흡한 점만 꼬집는 뉴스에서 탈피하여 코로나 전염을 방지하려는 도쿄 올림픽 운영 방식을 냉정하게 살펴봐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향후에 전염병, 전쟁, 무역 갈등이 진행을 가로막더라도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염 평가
후쿠시마 근처에서 생산된 식재료 방사능 피폭 문제를 일부 제기하지만 후쿠시마 방사능 위협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묻혔다. 제염되고 세월이 흘러 방사능 수준이 낮아진 탓도 있지만 해외 관중을 받지 않은 탓이 크다. 코로나의 큰 위협 앞에 후쿠시마의 작은 위협을 묻혀두는 전략은 조직운영의 핵심이다.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판단을 신속하게 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500명 정도, 일본은 1만명 수준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 85%에 비하면 한국의 1차 백신 접종률이 35%이고 일본의 1차 백신 접종률도 3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돌파 감염 사례도 보고되므로 백신이 코로나 예방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궁극적인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신 접종자의 전염 비율은 0.014%, 미접종의 비율은 0.4%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필자가 직접 통계 처리한 그래프에서도 확인된다. 그래프에 따르면 70대의 확진자 숫자와 30대의 확진자 숫자가 예방주사를 맞은 5월 기준으로 확실히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올림픽의 성공이 시민의 참여에 달려 있으므로 일본도 미국처럼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려야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인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올 7월부터 100% 관중을 받고 있다.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에서도 35% 관중을 허용했고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약 50%의 관중을 허용했다.
백신의 접종률, 확진자의 숫자, 의료기관의 수용능력에 따라 관중 허용률은 조정된다. 올림픽은 단일종목의 국제대회와 다르게 모든 종목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전염의 속도가 빠를 수가 있으니 관중 허용률을 보수적으로 잡아야 한다. 따라서 일본 올림픽 조직위가 관중 입장을 불허했다고 본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백신을 맞은 시민의 입장을 허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선수들은 신체접촉이 빈번하므로 언제든지 전염이 발생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코로나 검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올 시즌 동안 18만여 건의 코로나 검사를 시행해 선수 36명, 직원 28명의 확진자를 찾았다. 한국 프로야구도 1, 2군 선수를 검사하여 18명의 확진자를 찾았다. 프랑스 오픈에서는 3일마다 선수들의 코로나 검사를 시행하였다.
2020년 각종 대회의 코로나 검사 양성률이 0.18%이라는 통계자료를 도쿄 올림픽에 적용하면 선수 1만여 명에 18명 정도의 코로나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 선수들 중에 감염자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올림픽 조직위는 모든 선수와 관계자에게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입국 시 검사하였다. 올림픽 기간 중에도 매일 선수들의 타액으로 간편 검사하고 의심 시에 유전자 증폭 시험(PCR)을 받도록 했다. 확진자로 판정되면 퇴출시켰다. 확진자가 생기더라도 신속하게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이다.
코로나는 공기 중의 비말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2m 정도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강요한다. 혼잡한 지하철 속에서 전염이 지연되는 이유도 마스크 착용 효과로 보인다. 그런데 애정표현이나 식사 시에는 두 가지의 방벽이 무너지기 때문에 감염 가능성이 높다.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덜 만나고 덜 머무르게 해야 한다.
시상식에서 선수가 메달을 직접 목에 걸도록 하였고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지역주민과 접촉도 차단하였다. 경기가 끝난 선수는 콘돔을 기념품으로 받아 이틀 안에 선수촌을 떠나야 한다.
데카메론과 올림픽
올림픽 직전의 연휴 탓에 일본인의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 일본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 올림픽 조직위는 중단 없는 올림픽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냉정한 올림픽 코로나 대책이 작동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필자도 대책을 인정하므로 올림픽 선수단의 급격한 확진자는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일본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를 극복한 모습, 디지털 기술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이 목표를 이루기는 어렵다. 다만 코로나 창궐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치렀다는 인정을 받을 가능성은 높다. 이는 일본이 우기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선수가 귀국한 후에 전염병 발현 여부로 저절로 입증된다.
이탈리아의 보카치오는 흑사병으로 중세가 몰락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절에 데카메론을 썼다. 흑사병을 피해 시골로 피한 7명의 숙녀와 3명의 신사가 2주일 동안 머물면서 입담을 겨룬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과 성직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후대의 비평가는 단테가 신곡을 썼다면 보카치오는 인곡을 썼다고 호평하지만 흑사병 시기에 왜 10명이나 모였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올림픽은 인류가 모여 벌이는 축제이다. 젊은이들은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엄청난 땀을 흘렸다. 관중이 직접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들의 시합은 TV를 통해 안방에 전달된다. 오히려 촬영기술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잘 포착하고 거친 숨소리마저 보여준다. 여러 분야에서 가상세계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므로 스포츠 분야도 관중이 꼭 현장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코로나가 스포츠에 첨단 기술을 개발시킬 명문을 제공하여 주었다.
데카메론의 이야기를 즐기듯이 올림픽의 훌륭한 경기를 즐기자. 도쿄 올림픽의 불편함과 제약은 코로나 전염병을 예방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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