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해진 태풍 예측...이제 대비는 ‘인간의 몫’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지구 & 지역 기상 모델, 정확도 높아 기후변화로 태풍도 갈수록 강해져 진로 탓보다는 ‘대비 탓’ 해야 할 시대

난마돌의 진행경로
힌남노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제 14호 태풍 난마돌이 발생하였다. 난마돌은 19일 현재 일본 가고시마 북쪽 약 270㎞ 해상에서 일본 본섬인 혼슈 지방 북쪽 해안을 따라 시속 17㎞ 속도로 북상중이다. 중심 기압은 970h㎩, 최대풍속은 초속 35m다. 강풍반경은 약 380㎞로 우리나라 경상권 대부분 지역이 반경 내에 들어 있는 상황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태풍 경로의 정확성에 대해 말이 많았다. 제대로 예측을 못해 피해가 컸다는 비난이 일면 기상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슈퍼 컴퓨터 타령’을 했다. 그런데 힌남노의 태풍 경로 예측을 보면 한미일 3국의 예상 경로가 거의 비슷하다. 슈퍼 컴퓨터 타령은 핑계인 줄 알았기에, 필자는 한국 기상청의 일기예보 기술이 갑자기 나아진 이유가 궁금했다. 기상청의 메인 홈페이지에는 태풍 경로 예측에 앙상블 기법을 적용한다는 한 줄 문장이 있다. 앙상블 기법은 통계처리 기법이므로 뭔가를 평균 처리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일기예보와 혼돈이론
일기 예보는 쉽지 않다. 필자는 은퇴 후에 농사를 짓고 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식물에 물을 주지 않았다가 낭패를 자주 겪었다. 이웃집 아저씨는 “기상청이 아니라 구라청”이라며 필자를 위로했지만 산 한쪽은 비가 오고 다른 쪽은 햇빛이 나니 기상청도 답이 없을 것이다. 기상청은 시·군 단위로 예측을 하는데 나는 우리 밭 기준으로 평가를 하니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기상 예보 뿐만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쪼개 분석하는 모든 과학현상은 비슷한 한계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올 8월 한 달 쉬지 않고 비가 내렸는데 파키스탄도 홍수 난리가 났다. 인더스 강 유역이 거의 잠겨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르’도 피해를 입었다. 십자가형 도로와 벽돌 건물, 목욕탕, 하수시설로 유명한 모헨조다르 문명의 멸망 원인으로 홍수를 꼽기도 하니 이번 홍수가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모헨조다르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들은 강에서 일어났고 물로써 망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철학사를 저술하는 필자는 문명 발상지의 지형과 기후에 관심이 많다. 역사 기록과 지질 화석은 지금의 사막도 과거에는 사막이 아니었다고 알려주지만, 중동이 바다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왜 비가 적게 내리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역사 흔적보다 기후 및 기상 이론을 통해서 이를 유추해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중동을 둘러볼 수 없는 필자는 기후를 가늠하기 위해 구글 어스를 자주 본다. 구글 어스는 이동하는 구름을 보여주고 있어 강수량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구글 어스에 필적하는 ‘윈디(Windy)’라는 일기예보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개발자는 체코인이며 일기 예측뿐만 아니라 온도, 풍랑, 강우량, 토양의 수분 함유량 등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들어있다.
아니, 이런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체코가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의문이 들어 좀 더 자세히 사이트를 읽어보았다. Windy도 해당 자료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미국, 유럽, 독일에서 가져와 보여주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이로움은 엷어졌지만 그 방대한 자료를 빠르고 쉽게 표현하는 그래픽 기술만으로도 Windy의 기술력은 인정받기 충분했다.
Windy가 해외자료를 통해 태풍의 진로를 보여주듯이 우리나라 기상청도 비슷하게 작업한다. 따라서 한미일의 태풍 경로가 비슷할 수 밖에 없다. 경로가 수렴하니 당장은 다행이지만 한편에서는 근심이 일어난다. 사기업인 Windy가 하는 역할을 우리나라 기상청이 한다고 생각하면 격이 맞지 않는게 아닐까. 국가기관이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협력하면서 첨단 독자기술을 확보하는 목표는 비단 기상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한국의 과학기술 전략일 수밖에 없다. 이 전략으로 우리나라의 해당 분야 기술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 지식의 틀을 알아야 한다. 지구 기상 모델과 지역 기상 모델로 구분되는 기상분야 지식틀을 통해 한국 기상 기술의 위상을 살펴보았다.
지구 기상 모델의 정확성
Windy는 세 종류의 지구 기상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에서 개발된 ECMWF, 미국에서 개발된 GFS, 독일에서 개발된 ICON이다. Windy 사용자는 3개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확성이 높다는 ECMWF가 선택되어 있다.
지구 기상 모델은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온난화 효과를 예측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이산화탄소가 한 국가에서 발생하였다하더라도 그 영향은 그 국가에 한정되지 않으므로 전 지구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모델은 지구를 전체적으로 관측하는 인공위성 덕에 나타난 이론이다.
지구 기상 모델은 지구 표면을 70㎞ 격자로, 영공을 70층으로 각각 쪼개어 기상 신호를 읽어낸다. 각 격자와 층마다 기상을 관측하는 센서를 설치할 수도 있지만 인공위성은 적외선이나 레이저 등을 통해 기상을 단번에 측정할 수도 있다.
지구 기상 모델은 현재 측정된 기상 신호를 기반으로 미래의 기상을 예측한다. GFS는 4개의 기상 모델로 작동한다. 대기의 거동을 알려주는 대기 모델, 바다의 거동을 알려주는 해양모델, 대륙과 땅의 거동을 알려주는 대륙/토양 모델, 빙하의 거동을 알려주는 빙하 모델이 그것이다.
대기 모델은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상식으로 이해해도 되겠지만 수학적으로는 나비스 스토크-방정식으로 기술된다. 이 방정식은 풀기 어려운 수식인데 해답을 구하는 자는 큰 돈을 받는 밀레니엄 문제로 선정되어 있다. 해양 모델은 태양광에 따른 온도 상승과 증발 해류 등을 알려줄 것이고, 대륙/토양 모델은 태양의 반사, 수분함량에 따른 온도 상승 등을 표현했을 것이다.
필자가 기상학자가 아니고 독자도 기상 전문가가 아니므로 상세한 식을 제시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실험실에서 유도된 수많은 경험식들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기상 모델로 이름을 알린 국가는 3개국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식들은 다양한 국적을 지닌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따라서 한국 과학자도 지구 기상 모델에 기여했고,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기상 모델에 따른 결산 결과는 실시간으로 발표되지 않으며 하루에 4번 발표된다. 가로, 세로 약 70㎞인 모든 격자에 대해 상공 70층까지 계산을 해야 하고 그것도 지금뿐만 아니라 약 10일간 1시간 단위로 끊어 계산하므로 막대한 시간과 우수한 성능의 컴퓨터가 요구된다. 계산된 방대한 자료는 클라우드 컴퓨터에 저장되고 요청한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보내진다.
지역 기상 모델의 세밀성
70㎞ 격자는 지구의 전반적인 대류를 예측하는데 유용하지만, 한 나라나 한 지역의 일기를 예보하는데는 불충분하다. 일기는 산 하나를 두고도 차이가 나는데 70Km 격자에서 산은 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산에 의한 기상의 영향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격자를 더 작게 쪼개야 한다. GFS 설명에 의하면 바다와 구분 짓는 해안선의 개념도 지구 기상 모델에는 없다고 한다.
지역 기상 모델은 지상에 한층 많은 관측소를 둘 수 있으므로 실시간 측정 자료가 풍부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관측 자료가 많을수록 미래 예측은 더 정확하다. 특히 번개와 천둥은 지형적 특성에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지역 기상 모델이 정확하게 예측한다.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면 발생 반경이 좁은 토네이도도 지역 기상 모델이 정확히 예측하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지역 기상 모델은 지역 자료만으로 예측을 할 수가 없다. 한 지역은 다른 지역의 영향을 받는데, 이는 다른 말로 지역 기상 모델은 지구 기상 모델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문장도 전체의 맥락 하에서만 정확히 해석되듯이 한 지역의 기상도 지구의 기상하에서 정확히 예측된다.
지역 기상 모델은 작은 격자를 쓰고 지역에 알맞은 측정값을 사용하지만 지구 기상 모델에서 나온 값도 활용한다. 방법적으로는 지역 기상 모델은 지구 모델의 70㎞의 격자와 1시간 간격의 예측을 더 세분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 기상 모델은 격자와 예측 간격을 좁히지만 전 지구 대신 한 지역으로 한정되었으니 컴퓨터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지역 기상 모델은 전 지구적 예측모델에서 나온 값을 기준으로 ‘내삽’(중간값의 추정치-편집자주)한다고 표현될 수 있다. 앙상블에 의한 태풍 예측이라는 기상청의 설명도 다양한 ‘내삽’을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지구 기상 모델이나 지역 기상 모델이나 기상을 좌우하는 기상 원리는 이론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러나 지역이 한정되는 이점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한층 정교한 식을 지역 기상 모델은 사용할 수 있다. 지역 기상 모델의 개발은 특성상 해당 국가에서 수행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우리 기상청에서 하는 역할이다. 한국에 대한 관측자료는 우리 기상청이 더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니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태풍 예측은 더 정확할 수밖에 없다.

태풍의 대비는 우리의 몫
20세기 태풍의 진로 예측은 혼돈이론을 탄생시켰다. 북경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지만 지금도 5일 이후의 예측은 이 혼돈 이론이 적용되어 불확실성이 많다. 그렇지만 21세기 기술의 발전에 의해 태풍의 단기 진로는 정확해졌다. 이 정도의 예측은 우리에게 사전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준다. 대비가 덜 된 이유는 태만이거나 태풍을 고려하지 하지 않고 건축된 시설 탓이다.
태풍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태풍의 경로를 바꾸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태풍 경로 변경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어 조정이 어렵기도 하지만 태풍이 적도의 뜨거운 열을 북극으로 실어 나르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상학자들이 할 일은 남아 있지만, 이젠 시민들이 태풍의 실제 경로가 예상 경로와 달랐다고 학자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됐다. 그 만큼 태풍 예측의 정확성이 높아졌다.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태풍이 강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국가가 태풍을 고려해 튼튼하게 건축을 하도록 기준을 강화해야 하고 하천과 배수시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환경친화적인 삶을 생각하며 먹다버린 쓰레기로 취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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