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여아 사건, 어찌 과학은 속지 않았을까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손녀는 친모보다 조모를 닮을 수는 없는가? 더 닮을 순 있지만 유전자를 속일 순 없어 피고인 석씨 친자관계 바뀔 가능성 ‘희박’

[정연섭 ‘크로의 과학 사냥’ 저자] 자녀를 손자와 바꿔치기했는가?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모 씨에게 징역 8년의 선고가 내려졌다. 사람들은 석씨의 딸인 김모 씨가 아기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친인척 관계가 얽혀 있을 줄은 몰랐다. 유전자 검사에서 김씨와 여아 사이에 친자관계가 발견되지 않아 검사 대상을 확대했는데 놀랍게도 석씨가 아기의 생모로 밝혀졌다. 검찰은 석씨가 아기를 바꿔치기했다고 기소를 했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필자도 유전자 분석은 아니지만 물질 분석 경험이 있어 사건 진행에 관심을 가졌다. 물질 분석도 하나의 증거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양한 증거를 통해 물질을 규명한다. 석씨는 출산을 부인했고 남편은 임신 징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사건을 신고했으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필자는 유전자 검사를 일단 의심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손녀가 엄마보다 조모를 닮는 경우도 빈번히 관찰되는데 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멘델의 유전법칙에서도 증명된다. 멘델은 둥근 완두콩과 주름진 완두콩을 교배하여 자식으로 모두 둥근 완두콩을 얻었으나 손자 세대에 다시 주름진 완두콩이 얻었다. 자식보다는 오히려 손자에서 조모와 유사한 주름진 완두콩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유전자 분석만으로 친자관계 증명에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유전자 검사의 한계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사법부는 검찰의 주장을 인용했다. 모두가 수용하는 분위기지만 과학적인 원칙 때문에 피해를 보는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유전자 검사를 직접 검토하여 보았다.

단순한 유전 원리가 다양한 자손을 만든다.

개인의 특성은 염색체를 통해서 유전된다. 인간은 성염색체를 포함하여 짝을 이룬 46개의 염색체가 있다. 아래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마다 한 쌍의 염색체만 간략히 그렸다. 하나의 염색체에는 유전정보를 지닌 부분과 유전 정보를 지니지 않은 부분으로 양분된다.

유전정보를 지닌 부분은 염색체 1~2% 수준에 불과하지만 개체의 특성을 결정한다. 유전자는 기호로 R 혹은 r로 표시되는데 대문자는 우성을 나타내고 소문자는 열성을 나타낸다. 멘델은 완두콩의 둥글거나 주름진 성질을 각각 우성과 열성으로 나타냈고 우성과 열성을 모두 지닌 염색체(Rr)에서 열성인자는 발현되지 않는다는 유전 법칙을 발견했다.

유전자와 단편연쇄반복(STR)의 유전과정: 조부모, 부모, 자녀간에 유전자와 STD가 동일하게 전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만 멘델의 법칙의 적용을 받는 유전자는 발현되는 양상이 조금 다를 뿐이다.
유전자와 단편연쇄반복(STR)의 유전과정: 조부모, 부모, 자녀간에 유전자와 STD가 동일하게 전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만 멘델의 법칙의 적용을 받는 유전자는 발현되는 양상이 조금 다를 뿐이다.

유전정보를 지니지 않은 부분이 염색체 대부분을 차지하며 ‘단편연쇄반복(STR: Short Tandem Repeats)’을 보여준다. STR은 동일한 성분이 10~20번 반복되는 형태인데 반복 횟수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11번 반복하고 어떤 사람은 20번 반복한다.

손가락 지문이 개인마다 다르듯이 STR도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이 반복 횟수를 계수하면 개인을 구별할 수 있다. 한 종류의 STR만 사용하면 11번 반복하는 사람이 다수겠지만 여러 종류의 STR를 혼합하여 사용하면 오직 한 사람만을 특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과수에서는 약 15 종류의 STR를 사용한다.

손발의 지문처럼 STR이 범인을 찾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친족관계까지 알려준다. STR이 비록 개인마다 다르지만 염색체로 부모에서 자녀로 유전되기 때문이다. STR의 반복 횟수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자녀 유전자는 부(父)로부터 절반 오고 모(母)로부터 절반 오므로 자녀 STR는 부모의 STR과 동일하지는 않다. 자녀 STR는 적어도 친모와 50% 수준에서 일치한다.

이 그림은 염색체가 조모, 모, 자녀 사이에 유전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염색체는 앞의 설명처럼 유전자와 STR로 양분되어 있다. 염색체는 짝을 이루고 있지만 교배를 통해 한 염색체만 선택되어 자식에게 전달된다. 교배 과정에 한 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자나 STR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색체 쌍을 살펴보면 자녀는 부모와 다른 염색체 쌍을 지닌다. 부모로부터 하나의 염색체가 선택되는 유전 원리는 단순하지만 부모 염색체 조합에 따라 자식은 다양해질 수 있다. 염색체 아래의 화살표는 선택된 염색체를 지시한다.

손녀는 조모 얼굴을 닮지만 STR에서 닮지 않는다

유전인자나 STR이 동일한 방법으로 부모에서 자녀로 전달되는데 유전인자와 STR이 다른 특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유전인자에서는 손녀는 부모보다 조모를 더 닮지만, STR에서 손녀는 조모보다 부모를 더 닮는다.

이제 우리는 염색체 지식으로 무장했으니 이 현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하여 보자. 먼저 유전인자에는 우성/열성 구분이 있지만 STR에는 우성/열성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우성과 열성을 지닌 자식(Rr)은 조모를 닮지 않지만, 열성이 짝을 이룬 손녀(rr)는 조모를 닮게 된다. 즉 발현된 현상을 보면 자녀보다 손녀가 조모를 더 닮지만 자식은 물려받은 부모 유전자를 정확히 지니고 있다. 이는 유전인자나 STR에서나 차이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유전인자가 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비해 STR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완두콩의 유전인자는 R과 r로 2종류만 있고 성별의 유전 인자는 남/녀의 2종류만 있고 혈액형은 A/B/O의 3종류만 있다. 즉 유전인자는 경우의 수가 적다. 반면에 STR의 반복 횟수는 10,11,12,13,14,15,16,17,18,19,20으로 11가지 경우가 있다.

더구나 후손의 형질은 모(母)의 유전자뿐만 아니라 부(父)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경우의 수가 적은 유전 인자에 의해 결정되는 후손은 몇 세대를 지나면 선조를 닮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경우의 수가 많은 STR에서는 후손이 몇 세대를 지나도 선조를 닮기 어렵다.

46개 염색체에 산재된 약 15종류의 STR을 모두 고려하면, 자식, 손자, 증손자가 부모를 닮는 확률은 각각 50%, 25%, 12.5% 순으로 감소한다. 따라서 STR을 사용한 유전자 검사에서 손녀가 친모보다 조모를 더 닮을 수는 없다.

경험적 진리보다 강력한 연역적 진리

이상의 유전법칙은 피고인 석씨가 구미 3세 여아의 친모임을 알려주고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와 친자 관계가 바뀔 수가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구 자전 방향으로 일출 방위를 알듯이 유전학에 의거하여 생모를 추론했으므로 친자 관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중이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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