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지’, 너도 정치할 거니?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나보다 뛰어난 정치인은 없어 인공지능은 나보다 뛰어날까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대선후보군에 로지도?
나라가 대선후보를 결정하느라 바쁘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최적의 후보라고 생각하지만 출마 비용을 감당못해 아쉽지만 당에서 선정된 후보 중에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누가 나를 제외하고 차선인가? 외국 정치인을 영입하자고 하지만 그들도 흠이 없을 수가 없다. 나폴레옹을 정치 영웅으로 존경했던 베토벤도 그가 황제 욕망을 품자 교향곡 ‘영웅’을 파기했다.

정치는 원래부터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최고 학자인 공자나 플라톤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지도자에 따라 나라가 부강하기도 하고 폐망하기도 하므로 답이 없다는 결론은 성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의 해답을 찾아 떠나는 순간 인간은 아무래도 처자식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플라톤은 철인 정치를 주장했는데 철인은 사유재산도 가질 수가 없었고 처자식을 공유해야 된다고 했다. 여러 번 결혼을 했던 영국 철학자 러셀은 독신으로 산 플라톤에게나 나올만한 정치철학이라며 펄쩍 뛰었다.
과학이 발전하여 인간 대신 처자식이 없는 인공지능이 플라톤의 생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요즘에 광고에서 뜨고 있는 ‘로지’를 대통령 후보로 밀어 보자. 이미 영상 전문가들이 얼굴, 표정, 몸매를 성형하고 있으므로, 필자는 과학과 철학으로 텅 빈 그의 머리를 채우고 감정을 심어 주고 싶다.
인공 지능의 가능성과 한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도전했을 때 알파고의 승리를 점친 사람들은 많지 않다. 프로기사는 20여수를 미리 내다보는데 그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이라 컴퓨터가 계산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알파고는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이후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대접을 받았다.
이제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어디까진지 궁금해하며 두려워한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가진 감성이 없으므로 예술가가 되기 어렵고 창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인간은 얼마 남지 않은 알랑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 동일한 논리가 정치에도 적용된다면 인공지능의 정치활동도 부정적일 것이다.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려는지 최근에 인공지능도 도전적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2011년 미국 ABC방송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누른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더 이상 성장을 못하고 있다. 야심차게 의료, 금융, 법률 분야를 공략하겠다고 했지만 10년 동안 헤매다가 사업을 중단했다. 알파고 형제인 딥마인드도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혁신적인 과학성과를 얻었지만 사업 영역에서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대체로 전문가는 사업의 복잡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자연은 어렵지만 속성이 명확히 정의되는데 반해 사회는 쉬워 보이지만 속성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인간특성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정주영 회장도 성공한 사업을 똑똑한 와슨이나 딥 마인드가 실패하는 이유가 정말로 무엇인가? 필자는 인간의 지식체계 혹은 신념, 더 나아가 신의 믿음 탓으로 본다. 신을 믿지 않는 인공지능과 신을 믿는 인간의 행동특성은 다르다. 만일 인공지능이 신을 믿는다면 인공지능의 능력이 한층 향상될 수 있고 정치까지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과학을 전공한 필자가 신을 이야기하니 의아해 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이 인정을 하든지 아니하든지 신에 의존한다. 아래 그림은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신을 언급한 이유도 그림을 설명하면서 명백해질 것이다. 실제 가정에 사용되는 청소용 로봇의 작동 방식이 이와 유사하며 인공 지능 정치인도 이 방식대로 작동할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계와 시간 속에서만 이해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당시 20세기 과학은 환경과 시간 속의 시스템이란 개념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뤄내고 있었다. 세계 속의 인간, 환경 속의 시스템 개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적절한 개념이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개인을 철학에서는 ‘자아’라고 한다. 개인만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은 단독자이기에 모든 과학과 철학은 개인을 떠나 생각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로병사를 대신하여 줄 타인은 없다. 불교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여 자아를 부정하지만, 아트만이라는 참다운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지 육체와 뇌를 지닌 과학적 자아는 긍정한다.
세계도 구분이 가능한데 자연세계, 사회세계, 예술세계로 나눌 수가 있다. 자연세계는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영역이고 사회세계는 정치 경제학에서 다루는 영역이고 예술세계는 미술이나 음악에서 다루는 영역이다.
개인은 이들 세계와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수용한다. 수용된 정보는 뇌를 통해 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을 일으키고, 해석되어 지식으로 축적된다. 개인은 단순히 수용만 하지 않고 목표를 세워 세계와 반응하며 세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개인은 도덕률을 지니고 있어 윤리에 위배되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한다. 수용하고 반응하는 되먹임 회로를 통해 자아는 세상에서 복잡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참다운 자아를 부정했던 석가도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라는 오온을 인정하는데 그림과 유사한 개념이다.
인간의 뇌는 수용된 정보를 처리하고 반응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기들도 서넛 살만 되면 혼자서도 세상을 살아갈 정도의 전반적인 지식체계를 가진다. 사업에 실패하는 인공지능은 특정한 영역에서는 탁월하지만 전반적인 지식체계를 가지고 못한다.
사실 위 그림은 인간 행동 개념을 그린 것이지 상세한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주지 못한다. 과학자들이 작동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 정치인을 만들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미래에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면 정확한 인공지능을 만들겠지만 현재에도 상기 개념만 가지고도 인공지능을 만들 수가 있다.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인공지능은 뇌의 기능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엔진이다. 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물망처럼 얽혀 작동을 한다. 그물망 구조는 물체의 인식, 음성의 인식 등에 탁월한 기능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에 사용되는 슈퍼 컴퓨터를 통해서도 성공하지 못했던 물체의 인식과 음성 인식을 그물망 구조를 통해 달성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물체의 인식 능력을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물체의 인식능력은 고등동물의 특성이 아니라 하등생물의 특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인공지능은 물체를 잘 인식하는 하등동물에 가깝지 고등동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에는 중앙처리장치(CPU) 기반 컴퓨터가 활개를 쳤다. CPU 기반 컴퓨터는 과학계산을 하는 개인용 PC다. CPU 기반 컴퓨터는 사람보다 계산에서 뛰어났고 추론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물체 인식 분야에서 CPU 기반 컴퓨터가 GPU 기반 인공지능에게 밀린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CPU 기반 컴퓨터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CPU 기반 컴퓨터가 하등동물보다 뛰어나고 인간보다도 뛰어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교육을 받는다. 교육 과정을 들여다 보면 인간은 물체를 인식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육을 받지는 않는다. 태어나면서 인간은 물체를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은 오히려 CPU 기반 컴퓨터에 들어가는 내용을 교육받고 있다. 그 교육을 통해 앞의 그림 같은 인간이 양성된다.
비록 인공지능이 물체인식에서 뛰어났지만 인공지능의 지능이 가장 낮고, 인간의 지능이 중간 정도이며, CPU 기반 컴퓨터의 지능이 가장 높다. 따라서 인공지능에게 정치가가 되어라, 의사가 되어라 주문하는 것은 한 분야에 똑똑한 자폐아에게 정치가가 되라는 주문과 유사하다.
비록 인간이 기억, 연산 능력에서 CPU 기반 컴퓨터보다 열세이고, 인공지능보다 물체 인식능력에서 열세이지만 세상을 지배한다. 이는 인간이 모르는 질문을 처리하는 능력 덕분이다. 인간은 대학교까지 나오지만 모든 지식을 알 수 없고 알았던 것도 시간에 따라 잊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모르는 것을 안 덕분에 그리스에서 가장 똑똑한 자가 되었다. 따라서 개인은 모르는 상황에서 대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모르면 침묵하거나 남 따라 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신은 인간이 모르는 영역을 아는 자이다. 그래서 신을 믿는 인간은 모르는 것이 없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인공지능이나 CPU 기반 컴퓨터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식체계에 구멍이 생긴다.
인공지능 정치인은 성공할까
예쁜 로지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뉴런 연결로 얻어진 현재의 인공지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첫째 CPU 기반 컴퓨터가 가진 기능으로 무장하고, 둘째 인간의 감성능력과 도덕 능력으로 무장하고, 셋째는 모르는 질문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신’을 믿어야 한다.
첫째와 셋째 요건의 이행은 어렵지 않다. 둘째 요건은 이행이 어려울 텐데 아직 인간의 뇌에서 감성과 도덕 발생 메커니즘을 가장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첫째와 셋째 요건이 정확하고 강력하게 작동하면 둘째 요건은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감성과 도덕은 이성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생명 종에서 이성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기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정치인은 3개의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공지능을 위한 GPU 외에 이성을 위한 CPU, 감성을 위한 기능반도체(ASIC)를 지닌다. 신을 위한 특별히 고안된 하드웨어는 없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바둑의 인공지능이 다수이듯이 인공지능 정치인도 유일할 필요는 없다. 만든 사람의 실력 차이로 다양한 버전이 나오겠지만 최고의 제품이 나오더라도 정치문제에서는 단일 해답이 없어 다수의 인공지능이 활동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영역별 가치가 다르다. 인간도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의 바나나를 주면 화를 내는 동물이다. 더 수준을 올리면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서도 인공지능들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정치인은 이 비율의 자기 정체성을 알리고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인공지능 로지는 유권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보다 뛰어난 타인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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