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이온 가속기 ‘라온’의 성공을 위해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부진한 중이온 가속기 ‘라온’ 개발 속도 고비는 넘겼고 2024년 개방될 것 남은 과제와 ‘흥행 성공’까지 가려면
약수터에 세워진 중이온 가속기
대덕연구단지에서 세종시로 가는 길 가에 ‘초정 약수’가 있다. 필자가 1987년 연구단지에 인연을 맺고 약수터를 지나면서 주변 분들을 부러워했다. 어릴 적 빵을 부풀게 하는 탄산수소나트륨(NaHCO3)을 물에 넣고 사이다를 만들다가 실패한 아쉬운 기억 때문이다. 그때 약수를 벌컥 들이키다 톡 쏘는 맛에 뱉었다. 필자는 탄산수보다는 설탕물을 기대했었던 모양이다. 반면에 아내는 꿀꺽꿀꺽 마신다.
최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초정 약수’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세종과 대전을 잇는 전용도로가 생겼고 약수터를 지나는 도로는 지방도로라 한적했다. 설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라온(Raon)’ 푯말을 마주하게 됐다. 지하수의 라돈(Radon)을 활용한 음료수 공장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라온’은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의 이름이다.
라온 현황을 파악하니 요즘 이온 빔을 인출하고 있다. 홈페이지의 적은 조회수로 미루어 라온은 주목을 못 받지만, 지난 기사에서 언론의 비난은 엄청 받았다. 2017년을 목표로 1조 5천억 원이나 투입되었지만 완공은 지연되었고 3차례 계획변경 후에도 결승지점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착수해 유사한 예산이 투입된 ‘미국 중이온 가속기(FRIB)’는 지난해 5월에 준공되었으니, 라온 개발자로선 할 말이 없게도 생겼다.
지난 2021년 외국 전문가가 포함된 자문단이 사업을 냉철하게 진단해 1, 2단계로 나눠 추진하도록 제안한 바 있다. 1단계를 2022년까지 완료하고 핵심 장치를 개발하는 R&D 단계를 거친 후에 2단계를 2025년부터 착수하라는 제안이다. 당연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40년 과학자의 눈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전문분야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라온 관련 신문기사만 믿고 있을 순 없었다.
중이온 가속기 ‘라온’
라온은 희귀 동위원소를 만드는 설비다. 동위원소는 원소기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원소이다. 예를 들어 수소(H1) 원소는 질량이 1이지만 질량이 2인 중소수(H2)도 있고 질량이 3인 삼중수소(H3)도 존재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바닷물에 존재하는 동위원소지만, 수소 말고도 우주초기나 별 폭발때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희귀 동위원소도 있었다. 라온은 폭발하는 작은 별이다. 라온으로 가속시킨 원자가 탄소 박막이나 우라늄 박막을 때리면 희귀 동위원소가 터져 나온다. 발생한 동위원소는 전하를 띄므로 이온으로 불리고 수소보다 무거워 중이온으로 불린다.
가속장치는 이온을 가속시키는 장치인데 라온 공정 지연의 주범이다. 라온에는 원형 가속장치와 선형 가속장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라온의 선형 가속장치는 저에너지 가속장치(SCL3)와 고에너지 가속장치(SCL2)로 연결되어 있다. 이온을 광속의 50% 수준인 15만 ㎞/sec까지 높이려 SCL3는 18 MV의 전압을 걸고, SCL2는 200 MV전압을 건다.

한 번에 엄청난 전압을 가하면 전하가 방전되면서 번개가 번쩍이므로 단계적으로 가한다. 즉 인접한 가속 모듈에 고전압을 순간 가하고, 순간 멈추기를 반복하여 전파를 발생시킨다. 파도에 서퍼가 이동하듯이 변하는 전압을 타고 이온이 가속한다. SCL3는 100m 구간에 54개의 가속모듈이 연결되어 있고 SCL2에는 46개의 가속모듈이 설치될 예정이다.
빠르게 극성이 변하는 전압은 열을 발생시키고 발열을 피하려면 초전도체가 선택되는데, 초전도체는 액체 헬륨의 낮은 온도에서 작동하므로 여기에 냉각장치가 붙는다. 가속되는 이온은 방사선을 발생시키므로 가속장치는 지하 터널에 설치된다. 중앙제어실은 가속장치와 부대설비를 통합적으로 제어한다.
인출시험의 성공을 기대하며
부지가 조성되고 콘크리트 건물도 올라갔고 장비들도 공정대로 설치됐다. 이제는 배관에 물이 나오듯이 SCL3에 이온이 나오는지 차례차례 확인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SCL3의 5번째 가속모듈에서, 올해 초에 24번째 가속 모듈에서 이온빔을 인출했다. 오는 3월에는 SCL3의 전구간을 통과한 이온을 인출할 예정이다. 뒤쪽 모듈로 갈수록 이온 속도가 빨라지므로 작업 난이도는 높지만, 단위 가속모듈의 품질이 이미 확보되었으니 SCL3 목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SCL3의 이온빔 인출이 성공하면 이후에 점검용 아르곤(Ar) 이온 대신 생성된 희귀 동위 원소들로 비슷한 실험을 반복한다. 이 고개를 넘으며 2024년 아쉬우나마 라온을 사용자에게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위원소 두 가지 생성방식
광속 50% 수준의 가속은 SCL2가 완성되어야 가능하다. 속도 붙은 봅슬레이 선수가 이탈하지 않도록 눈썰매 궤도를 제작하듯이 SCL2의 경로는 더욱 정밀하게 표면처리 되고 정확하게 전압이 가해져야 한다.
SCL3를 통해서 라온을 활용할 수 있는데, 굳이 SCL2까지 만들까? 이것은 라온에만 있는 동위원소를 만드는 참신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중이온 가속기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온을 만드는데, 라온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이온을 만드는 방법에는 ‘온라인동위원소 분리(ISOL)’법과 ‘비행 중 쪼개짐(IF)’법이 있다. ISOL 방법은 가벼운 이온을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켜 동위원소를 얻는 방식이고, IF 방법은 무거운 이온을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켜 동위원소를 얻는 방식이다. 아래 그림의 전반부는 ISOL 방식이고 후반부는 IF 방식을 설명한다.
ISOL에 의해 생성된 동위원소는 SCL3에 의해 분리되고 가속된다. 일부 동위원소는 SCL3에 연결된 출구로 인출되어 활용되고 나머지는 SCL2에 의해 추가 가속되어 IF에 입사된다. 라온은 ISOL과 IF방식을 모두 지원하므로 한층 다양한 종류의 희귀 동위원소를 생성시킬 수 있다.

성공하려면?
외부 자문자들은 미국의 FRIB 대비해 라온은 5년 기술격차가 있다고 진단했다. 틀린 진단은 아니지만 ‘기술격차’라는 최면에서 헤어나야 한다. 선발주자들은 후발주자를 ‘기술격차’라는 주문으로 걸어 자신들의 궤적을 따르게 하고 추월을 방해한다. 현명한 후발주자는 차별화 전략을 통해 추월경로를 연다. 혁신은 기술격차와 상관없이 우수 과학자에 의해 일어난다. 한국은 중국을 기술격차의 틀 속에 가두고자 했지만, 현명한 중국은 차별화 전략으로 한국을 뛰어넘었다. 라온을 기술격차로 보지 말고 ISOL과 IF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바라봐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에 불구하고 구현하지 못한 사업관리는 아쉽다. 초기에는 가속기 개발 경험이 있는 과학자들이 제품을 일정대로 내어 놓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공정을 맞추지 못했다. 최근에 가속기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는 늦은 감이 있다. 가속기 장비에서 기술적 어려움에 봉착했으면 새롭고 뛰어난 인재를 영입해야 했었다. 특히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책임자는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어려운 과제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난해한 문제로 풍파를 일으키길 원하지 않거나 타인의 기술에 편승하겠다는 의도를 지닌 경우다. 과학적 과제는 가장 어려운 분야부터 먼저 풀어야 하고 그런 자가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라온에서도 선형 가속장치가 핵심 역무로 선정되어 초기부터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했다. 욕을 먹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도전적 과제는 전문기업을 육성함으로써 해결된다. 기업은 영속성이 있고 인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도전적 과제일수록 기업 참여가 필수적이다. 최근에 양성자 가속기, 방사선 가속기가 국내에 설치되었지만 가속기 전문 기업은 떠오르지 않는다. 필자가 몸담았던 분석에서도 국내 분석장비 업체는 거의 없었다. 라온을 개발하면서 확보된 기술은 휴대용 의료기기나 분석기기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장하면 TV산업은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국내는 첨단 기술장비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라온의 활용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홍보자료에는 라온 활용 분야로 원자생성 이론, 육종개발, 신소재 개발, 암치료 등을 제시하나 설명이 미흡하다. 연구소가 제시한 홍보자료 외에 외부 사용자의 활용 제안을 수시로 게시하여 라온을 흥행시켜야 한다.
라온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는 라온 개발의 동력이 되고 비난을 응원으로 승화시킨다. 미국 사례를 보자. FRIB의 이온 출력이 약해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미래의 희망으로 묘사되었다. 라온도 사용자를 끌어들일 때 우군도 많아질 것이다.
라온이 위치한 지역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지정되으니 이제는 이전 약수터로 되돌아갈 수 없다. SCL3를 개발했으니 SCL2를 개발 못할 이유가 없고 개발 사례가 FRIB에도 있으니 실패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분야를 열어젖힌 라온은 투자대비 결실을 맺을 장비이고 타 분야가 자랄 밑거름이다. 땀 흘리는 개발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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