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높이는 ‘민생·정책국감’ 위해
문정부 마지막 국정감사...벌써 정쟁화 민생·정책국감으로 ‘국민의 정치적 행복’ 키워야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국회가 10월 1일부터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정감사에 돌입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국정감사인 탓에 여야의 치열한 공방과 난타전이 예상된다. 특히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의혹 검증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10월1일 국정감사 돌입
지금 여야는 이른바 성남시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사건을 놓고 ‘아수라 게이트냐’ 대 ‘국힘 게이트냐’로 극한의 프레임 전쟁속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28일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겨눠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이라며 “대통령 되면 화천대유의 주인은 감옥에 갈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맞서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힘을 탈당한 곽상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및 성과급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아니라 도둑의힘”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과 민주당은 곽상도 의원 아들의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수령 사실을 계기로 대대적인 역공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민의힘은 곽 의원 아들 건 악재를 털어내려 애쓰며 실체·본질 규명을 위한 특검·국정조사를 주장하며 맞서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28일, 박용진 의원도 이재명 경기지사의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 “당시 성남시장이 이 일은 다 설계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데 대장동 땅에 어떤 공공성이 실현됐는지 첨예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 의원은 “대장동 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의 역할만 했지, 공공개발로서 모범이 됐다거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주도한 만큼 민간 개발과는 다른 어떤 공익성이 담겨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야 정쟁과 관련해서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국민들은 국회가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켜 국민통합을 어렵게 하는 정쟁의 장이 될까 우려한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여야간 정쟁이 치열해질 경우, ‘민생·정책’을 추구하는 국정감사 본연의 목적은 사라지게 된다. 대선 유불리를 놓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전선이 유지될 경우, 각 상임위의 국정감사장은 대선주자간 대리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지난 추석민심은 분명 정치권이 정쟁보다 민생을 살리는 선의의 경쟁에 앞장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은 민생보다는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에 열을 올리며 정쟁유발과 상호비방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형국이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한마디로 민망하고 씁쓸할 것이 뻔하다.
연일 늘어나는 코로나 감염자로 인한 영업제한으로 생계가 막막한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청년들의 민생을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오직 상대후보와 정당을 이기기 위해 극한대결을 보여주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은 민생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권이 네거티브와 마타도어에 열을 올리게 될수록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생·정책국감 되어야
국정감사가 시작된 만큼, 여야 정치권은 국회의 이름으로 행정부의 국정운영방식과 내용에 대해 적절하게 견제·감사하는 ‘민생·정책국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민의의 전당기관으로서 초당적 협력의 주체로 나서는 게 마땅하다.
이번 기회에 코로나로부터 민생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나서겠다던 정치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비정규직 보호 △대기업 갑질 근절 △직장내 괴롭힘 방지 △부동산 정책 등 국민적 관심사를 집중 점검해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이 보다 근본적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네거티브와 마타도어를 중단하고 선의의 정책경쟁과 숙의민주주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디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핵심적으로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설립 57년 만에 처음으로 개발도상국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서민들이 선진국임을 체감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이 되는 ‘낮은 삶의 질과 행복지수’에 대해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진단하면서 개선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세계 10위인데,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37개 나라 중 최하위권 35등이다. 건강수명이 4위로 최상위권이고 1인당 GDP도 평균 정도인데, 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는 OECD 통계를 바탕으로 원인을 3가지(근로환경과 생활환경, 노인 빈곤율)로 분석하고 하고 있다. 언뜻 보면 돈과 건강이 보장되면 행복감도 충족되어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 2018∼2020년 평균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5위로,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그리스(5.72점)와 터키(4.95점)뿐이다. 방사능 오염과 방출문제 등으로 국제적 질타를 받고 있는 일본마저 5.94점을 받아 우리나라를 앞섰다.
국민 행복 찾아주는 정치돼야
대권 후보들은 다들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치로 대동세상 열겠다’, ‘결국은 경제다’, ‘공정한 향한 뚝심’, ‘진충보국(盡忠報國)’,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전환의 정치, 시민의 시대’ 등등 표현은 달라도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는 공통적인 의미를 슬로건에 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가 발간한 ‘2021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49개 나라 중 50위이다. 1위는 북유럽의 핀란드이다. 대만(19위) 일본(40위) 몽골(45위) 태국(48위)도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높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득을 포함해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행복은 ‘기회의 평등’과 맞닿아 있다. 교육·고용·경제력을 포함해 다방면의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행복을 방해하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 역시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OECD의 ‘더 나은 삶 지표’(2015)에 따르면 한국인은 다른 사람과 신뢰 관계를 맺거나 서로 돕는 사회적 관계가 35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보통 ‘노사정 대타협’을 강조하는 북유럽 국가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다. 그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북유럽문화에 존재하는 “얀테의 법칙”에서 그 배경을 찾는다. 1933년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가 쓴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는 풍자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A Fugitive Crosses His Tracks, En flyktning krysser sitt spor)’에서 처음 얀테의 법칙을 제시하였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얀테(Jante)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 이름이며, 이 마을에서는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며, 보통사람보다 똑똑하거나 잘 생긴 사람은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보통사람들과 다른 것은 잘난 게 아니라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 살려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얀테의 법칙(일명 보통사람의 법칙)이다.
얀테의 법칙은 자기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라거나, 똑똑하다거나, 우월하다거나, 더 많이 알고 있다거나,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 잘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며, 가르치려들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얀테의 법칙’ 받아들여야
내가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자체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고, 남보다 부족하거나 못하다고 생각되면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나는 평균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대치를 낮추고, 올려보지 말고, 내려 보면서 살라는 것이다.
우리 시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얀테의 법칙’도 고려해봐야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정치참여라는 ‘정치적 행복’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정치를 외면한 대가가 너무 혹독하고 처참하기 때문이 아닐까?
플라톤이 언급한 대로, 정치를 외면하면 자기보다 못한 저질들에게 자신이 지배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 저질들 밑에서 정치참여의 자유와 공론장을 잃고 생존형 노예로 살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과 이웃을 위한 ‘공동의 자유’를 위해 정치참여속 공론장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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