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뒷것 인생’이 주는 성찰의 향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챙기지 않았던 삶 “예술은 예술로서만”... 세월호 작곡도 거절 선생의 삶, 사회에 큰 울림과 메시지 던져 정치권, 관종·우상숭배·복수정치 반성하자

젊은 시절의 김민기.
젊은 시절의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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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의 반향

서울방송(SBS)이 3부작으로 만든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SBS는 유신정권의 탄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저항적 지식인, 나아가 엄혹한 시대에 음악으로 민중을 위로했던 천재 뮤지션, 소극장 ‘학전’을 설립한 대표이고 ‘아침이슬’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민기 선생의 인생역정을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다뤘다.

시청자들은 억압과 탄압의 시대에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찾고 시대적 소명을 다하면서 민중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준 선생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뒷것’인생이란 틀로 들여다보면서 진한 감동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방송을 봤다고 해서 왜, 어떠한 이유로 김민기 선생이 ‘뒷것’ 인생을 선택하며 살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큐의 연출을 맡은 이동원 PD는 방송을 제작하면서 본인의 업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꺼리신 것을 두고 김민기 선생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선생의 성정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나는 뒤에, 너희들은 앞에”

방송은 많은 증언자를 통해 선생이 평소 배우들에게 “늘 너희들은 ‘앞것’이고 나는 ‘뒷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너희들, 배우들은 앞에서 무대에 서서 너희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나는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받쳐주겠다”는 의미이다.

가수 양희은은 1970년대 김민기 선생을 처음 봤을 때 그의 ‘뒷것’ 인생을 알아보고 ‘석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석구는 ‘구석’을 뒤집은 말이다. 김민기 선생은 한사코 빛나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를 빛나게 하는 자리, 구석에 있었다.

선생은 화려한 학벌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시대의 ‘뒷것’으로 사셨다. 음악으로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위로했다. 본인을 드러내거나 본인의 몫을 챙기지 않은 채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헌신하셨다.

‘운동권의 대부’라는 오해

이번 방송은 무엇보다 선생에 대한 지독한 오해가 풀리는 계기가 됐다. 우리들이 김민기 선생에 대해 오해한 것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운동권의 대부’라는 칭호이다. 그는 자신의 서정적인 노래가 운동권 노래로 불리고 자신이 운동권의 대부로 칭송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침이슬’을 비롯해 ‘상록수’, ‘친구’, ‘봉우리’ 등의 주옥같은 노래들도 모두 운동권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과거 운동권 대부 따위의 정치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오히려 ‘그냥 뮤지션’ 또는 ‘공연기획자’ 등의 칭호를 더 좋아했다.

그의 서정적인 노래들은 정치적 이념이나 운동권 좌파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아침이슬’ 노래에 나오는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부분 역시, 전혀 정치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자취방 근처에 작은 묘지들이 몇 개 있었다고 한다. 붉은 태양이 빨갱이를 나타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순수한 노래 ‘아침이슬’을 당시 운동권에서 자신의 허락도 없이 가져다 쓰는 바람에, 자신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운동권 저항 가요의 대부로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운동권 집회에 흘러나온 ‘아침이슬’은, 좌파 운동권이 작곡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치적 선동을 위해 틀어놓고 불렀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좌파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규정했고, 이로 인한 탄압은 선생의 젊은 시절을 힘들게 했다. 결국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좌파 운동권이 자신의 노래를 갖다 쓰는 바람에 정부에게 불온한 좌파 작곡가와 운동권 대부로 찍혔다. 그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창남은 “김민기의 음악엔 정치적 구호가 없다. 부정을 규탄하는 세찬 목청도 없다. 들리는 것은 그저 삶의 절박한 신음이고 영혼의 애처로운 속삭임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민주-독재, 체제-반체제 같은 도식으로 가둘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말과 곡조가 그 안에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음악을 ‘저항’의 자장 안에 가두는 건 온당한 평가라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선생은 훗날 세월호 관련 노래를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알려져서 충격을 주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작곡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한 선생은 2018년 JTBC의 손석희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좌파 운동권 가요의 대부쯤으로 여겨지게 된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였다.

이런 선생의 성향과 태도를 보면, 음악과 예술을 정치에 이용하고, 선동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는 세력들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좌우 정치적인 성향에 관계없이, 예술은 예술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그의 견해를 보면서 선생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보다 민중의 삶 그자체

물론 선생의 탈(脫)이념적이고 탈(脫)진영적 태도는 그가 추구했던 ‘민중들의 삶의 현장성’과는 별개이다. 그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앞서서 척박한 환경속에서 거칠게 살아갔던 민중들의 삶의 현장을 담백하게 담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민중들이 살아가는 거친 삶의 현실을 보여 주는 현장성이 그에겐 제일 중요했다. 현장성을 우선하고 있는 그의 노래는 공감을 받았다.

또한 선생은 1991년 예술의 다양성을 위해 학전(學田)이란 극단을 만들었다. 예술의 밭을 갈고자 학전이란 이름을 지었다. 학전은 700여명의 배우와 가수를 키워낸 우리 시대의 모판이었다. 그는 기꺼이 배우인 ‘앞것’을 위해, 스탭으로서 ‘뒷것’의 역할을 묵묵히 해 왔다. 학전은 33년간 쉬지 않고 달리다가 지난 3월 15일 문을 닫았다.

학전은 돈 많은 대기업과 부자들의 후원을 일체 거절하고, 공연 수입으로만 운영하다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종언을 맞았다. 늘 뒷짐을 지고 땅만 보고 걷는 선생은 낮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선생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 척박한 땅에서 더불어 살면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몸부림 쳤던 것이 아니겠는가.

'학전'을 상징하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김민기. 사진=연합뉴스
‘학전’을 상징하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김민기.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이 반성해야할 것들

‘뒷것’으로 사신 선생의 삶이 우리 사회에 주는 울림과 메시지는 매우 크다.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다. 타인의 공감이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인 주장이나 과도한 행동으로 자기애에 빠져 ‘관종정치’를 펼치는 것을 반성케 한다. 또한 자기 실력을 키우기보다는 고인들에 대한 명성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우상숭배정치’를 반성케 한다. 그리고 정치공간을 공공성의 실현보다는 자신의 사적인 억울함을 풀고 복수극을 펼치려는 ‘복수정치’를 반성케 한다.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경력과 업적을 자극적으로 포장하고 알려야 한다고 믿는 세대와는 대조적으로 선생은 드러나지 않게 ‘뒷것’으로 살았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뒷것’인생으로 53년간 한 우물을 깊게 팠다. 한 우물만 좁고 깊게 파는 ‘뒷것’인생은 ‘얇고 넓은 지식’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찔러대며 기회를 쫓고 줄을 대는 삶과 다르다.

선생은 독재정권의 탄압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복수극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앞세워서 장관 자리나 국회의원 자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민중의 삶의 현장을 묵묵히 돌보는 ‘뒷것’인생은 ‘시민적 덕성’의 전형이다.

오늘날 공공성의 실현 없이 극단적인 진영대결과 끝 모를 정쟁으로 민생정치를 외면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기득권자들과 다르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패거리를 짓고 협치와 민생을 외면하면서 권력 장악에만 몰두하는 불나방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 자성과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글쓴이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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