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 위한 평등과 경쟁의 문화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분야, 한국은 ‘응용’만 한국과학, 정치의 시녀로 전락...건전한 경쟁 약해 과학을 즐기는 진정한 과학자를 기다린다

2021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
2021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과학과 문화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전화를 받고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겸손의 표현이겠지만 과학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업적과 실적을 인식하고 있다. 제 논문의 인용 횟수를 아는 필자는 국제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지만 그래도 노벨 수상자의 연구 주제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수상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아쉽게도 올해도 한국 과학자는 호명되지 않았다. 노벨상이 과학기술의 전부는 아니라며 위안을 삼지만 번번이 기대가 무산되므로 우리 과학계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경제적 위상과 문화적 위상에 비해 우리는 왜 세계 과학을 선도하지 못할까?

역사적으로 과학이 크게 발전한 시대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기원전 6~5세기경 그리스 자연철학 시기이다. 사람들은 자연현상의 본질을 알고자 했고 철학자들은 물, 불, 공기, 흙이 본질이라며 논쟁을 벌였다.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며 현대 과학을 선취한 자연철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중 정치가 페리클레스(BC495~429)가 등장하면서 과학기술은 퇴보한다.

페리클레스는 이웃 도시국가들과 화친을 맺었고 참정권을 소시민에게까지 확대했다.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희생된 전몰군인 장례식에서 행한 연설에 군중들은 감동받아 자녀들이 정치가가 되기를 원했다. 과학보다는 수사학이 힘을 얻었고 진리보다는 설득의 기술이 대접을 받았다. 그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밀리다가 그가 죽고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에게 항복했다.

두 번째는 17~18세기이다. 중세의 신의 권력이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힘을 잃고, 교황의 권력이 종교개혁으로 위협을 받던 시대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긴 싸움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났고 논밭은 잡초로 뒤덮였다. 승자 없는 싸움을 통해 사람들은 관용을 배웠다. 지식인들은 해답 없는 종교보다는 과학기술로 눈을 돌렸다. 우주에 새겨진 자연의 법칙을 찾아낸 뉴턴을 시작으로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나타나 과학기술의 초석을 닦았다.

두 시대와 비교할 때 우리의 과학기술 분위기는 어떠한가? 우리 과학이 종교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정치에 예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연구 분위기를 단정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소의 모든 분야를 살펴보면 좋겠지만 게으른 탓에 노벨 과학상을 받은 분야로 한정하고 부족한 논거는 평생 과학기술에 몸 담은 필자의 경력으로 채웠다.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생리의학상은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공로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드 줄리어스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안에게 돌아갔다. 생물의 감각세포는 소리, 빛, 촉각, 소리, 냄새 등의 외부 자극을 검출하여 감각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한다. 사람들이 너무 평범한 공기를 잊고 살듯이 과학자들도 너무나 평범한 온도와 촉각을 잊고 산다.

그러나 두 수상자는 온도와 압력에 꽂혀 자극에 반응하여 전기신호를 만드는 ‘이온채널’을 발견했다. 이온채널은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대표적 감각 수용체 유형이므로 제대로 밝혔다는 느낌이 온다.

줄이어스 교수는 1997년도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울대 약학대학에서도 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지원 사업으로 비슷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서울대 연구는 이온 채널을 활성화시키는 새로운 물질의 발견이었다. 정부 지원을 받지만 응용 연구에 해당되므로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노벨 물리학상

노벨 물리학상은 기후 모델을 개발하고 복잡계를 연구한 미국 프린스턴대 슈쿠로 마나베,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클라우스 하셀만과 이탈리아 사피엔자대학 조르지오 파리시에게 돌아갔다. 일본인 마나베 교수는 이산화탄소와 지구 온도 상승의 기후모델을 최초로 제시하였고 하셀만 연구원은 이를 더욱 확장하여 기상모델과 기후모델을 연계시켰다. 파리시는 복잡한 자연현상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는 수학적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는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한 현상을 보이는데 파리시 표현을 빌리며 삼한사온이 복잡계 속에 숨겨진 패턴이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의 흥미로운 점은 기후모델과 복잡계 현상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도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연관성을 찾아냈다. 필자는 노르웨이에서 1년 근무한 경험이 있어 환경에 민감한 북유럽 과학자의 성향을 알고 있었지만 파니시를 본 후에 과학연구를 꿰뚫어 보는 그들의 눈을 인정했다. 하셀만은 파리시 연구결과로 지구 기후모델을 실제 유도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이렇게 개발된 기후 모델을 적용하여 약 1만 년 전 홀로세의 기후를 추정하며 과거 흔적과 비교했다. 이 연구는 기후 모델의 민감성을 검증하는 목적도 있지만, 기후 모델의 개발보다는 개발된 모델의 적용 연구에 해당되어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노벨 화학상

노벨 화학상은 비대칭성 유기 촉매를 개발한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벤야민 리스트와 프린스턴대학 데이비드 맥밀런에게 돌아갔다. 촉매는 화학반응을 가속시키는 물질로 전자를 잘 내어 놓거나 잘 빼앗아 가는 성질이 있다. 촉매는 화학공장에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생명 세포 속에서도 빠짐없이 존재하는 약방의 감초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촉매의 종류는 금속이거나 단백질이다. 단백질 촉매는 효소라고 하며 거대 분자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는 금속도 아니고 거대한 단백질도 아닌 조그만 유기 촉매를 개발했다. 유기 촉매는 질소와 탄소 원자를 적절히 배치한 유기 분자이다. 유기 분자도 전자를 잘 제공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 결국 일을 냈다.

필자가 30년 전에 다녔던 LG화학연구소에서도 메탈로센이라는 유기금속 촉매를 개발한 적이 있다. 이 촉매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합성할 때 사용되는데 금속 주위를 유기 원자가 포위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처럼 유기 촉매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는 없다. 성균관대에서 유기 촉매를 사용해 향료를 합성하였지만 이는 유기 촉매 개발보다는 유기 촉매 응용기술이다.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인 독일 과학자 베냐민 리스트.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촉매·접촉분야 연구소에서 동료들의 축하 속에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인 독일 과학자 베냐민 리스트.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촉매·접촉분야 연구소에서 동료들의 축하 속에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평등과 경쟁 사회

이번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2명의 노벨상을 배출했다. 산업화의 후발국인 독일은 나폴레옹 지배하에 괴테 피히테 등의 지식인들이 자성하여 베를린 대학을 세우고 교육제도를 정비했다. 이후 독일은 통일을 이루고 세계무대에서 문명을 이끌었다.

독일은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편다. 독일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의 제창자 마르크스와 시민 눈높이 정치를 펼친 메르켈을 보면 독일의 사회주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평등이 전문가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전문가와 우수한 인재를 존중한다. 전문가의 혁신이 문명 발달의 원동력임을 안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평등주의 요구가 강하다. 지원자의 학력과 경력을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이 나타나고 한번 채용되면 경쟁을 거부한다. 한 시대만의 현상이 아니라 속담으로 고착된 진리이다.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모난 돌은 정을 맞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늘 평등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은 제 잘난 맛에 산다. 조직을 평등으로 묶은 자들도 사적으로 부동산을 게걸스럽게 사 모으고 자식을 명문학교에 입학시켜 평등을 깨트린다. 재산의 축적은 개인에게 만족을 주나 불평등을 야기하고, 학문의 축적은 인류의 행복과 평등에 모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번 노벨상에서 보았듯이 국내 과학자들은 해외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나 돌려 검증 자료나 만들었다. 새로운 도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약하다. 과학자들이 세속화되고 미지 세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정치권력에 기웃거린다. 학문적 성취를 맛보지 못한 자가 기관의 장이 되면 소속 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가 없다. 연구보다는 조직과 제도만 바꾸면서 임기를 보낸다.

그리스의 과학은 정치가 힘을 얻을 때 쇠퇴하였고 근대 과학은 종교가 힘을 잃을 때 번창하였다.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은 그리스의 정치보다 강한 블랙홀이다. 모든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고 줄을 세운다. 과학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했다.

과학자의 자세

과학의 미개척 분야는 많다. 어느 분야든지 노벨상의 후보지이다. 눈에 보이는 물리, 생리의학, 화학의 3개 줄기에만 상을 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 기술에도 수상자는 나온다. 현재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에 깊숙이 파고들면 노벨상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무작정 파고 한없이 기다린다고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다. 노벨상 후보가 될 정도의 과학자는 적어도 해당 분야 우수 과학자이다. 우수 과학자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합리적 방법을 찾고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 전 세계 우수한 과학자들이 서로 경쟁하므로 노벨상을 받기까지 오래 걸린다. 세속 과학자들은 기다림을 멋대로 해석하여 연구 자율권만 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을 즐기는 진정한 과학자가 기다려진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중이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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