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정책이 ‘연장 근로시간’을 유발한다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인간 생체리듬은 기업 리듬과 달라 근로조건 후퇴, 선진국되길 포기하는것 연장근로 절감이 오히려 생산성 올려

연장근로를 생산성으로 착각하는 사회가 되어선 안된다. 그림출처=한국건강관리협회 블로그
연장근로를 생산성으로 착각하는 사회가 되어선 안된다. 그림출처=한국건강관리협회 블로그
'일하지 않는 자여,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사진=픽사베이
‘일하지 않는 자여,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사진=픽사베이

날은 어두운데 물은 나오지 않고

아내는 하루 2시간 물을 주며 정원을 가꾸고 있다. 이웃집 농부가 안쓰럽게 바라보며 점적 호스를 설치하라고 귀띔했다. 머슴인 필자는 바로 철물점으로 달려가 부동전(수도배관과 수도꼭지)을 구하고 땅을 파 묻었다. 어둠이 밀려오니 손길은 빨라졌다. 드디어 배관을 연결하고 꼭지를 틀었다. 흙탕물이 나오더니 바로 멈췄다. 주위는 이미 캄캄해졌고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어 집으로 왔다. ‘여유를 두고 다음 날에 마무리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 일을 끝내겠다며 연장근무를 하는 바람에 사고를 친 것이다. 필자가 멍청한 작업을 고백하는 이유는 최근에 개정하려는 근로시간 연장 우려 때문이다.

필자는 발전소의 사건사고를 제법 조사했고 사고를 유발하는 인자를 사전에 제거하려 발전소를 제법 드나들었다. 미흡한 설계, 철 지난 문서, 자리를 떠난 감독 등의 인자뿐만 아니라 근로시간도 중요한 사고유발 인자이다. 우리는 큰 사고를 접하면 사고 당시 책임자가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다. 미국 원자력규제기관은 10CFR26이라는 직무적합성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을 정도로 근무 조건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장거리 여객기에는 조종사 2조가 탑승하여 교대로 운전대를 잡아 8시간 근무시간을 준수한다. 팀장은 아프거나 음주한 팀원의 얼굴을 보고 귀가시키지만 안색이 근무시간만큼 객관적일 수 없다.

안전공학이 피로와 관련이 있는 근로시간을 다루니, 자연과학이 더 깊게 근로시간을 파헤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피로를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과학적 설명은 바로 한계를 드러낸다. 근육의 피로는 누적된 젖산 탓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최신 연구결과는 젖산을 처분하는 수소 이온 등도 관여하는 등 기제가 단순하지 않다.

정신적 피로를 뇌의 피로로 간주하면 정신적 피로는 수면으로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생화학은 수면의 원인이나 수면의 영향을 밝히고자 했지만 완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수 많은 세포와 효소가 작동하므로 고려할 인자들이 많다. 생화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보면 수면 기제가 멀지 않은 시간에 밝혀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로시간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근로시간은 일차적으로 피로와 관련이 있지만 삶의 목표, 사회생활, 경제생활 등과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개정안의 어설픈 의도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에 유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회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계절별 상황에 따른 주당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근로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유연성이 과도하게 행사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은 연장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예외 없는 법이 없듯이 운송업계 등 특수한 일부 산업계와 천재지변 등 특별상황에서는 52시간 이상도 근무 가능하다.

주 최대 52시간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영세기업에게는 추가로 8시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경과조치를 두었다. 다시 말해 주당 60시간까지 근로시간이 허용되었다. 영세 기업들은 이 경과 조치가 영구 법조항이 되길 원했고 일부 중소기업들도 여기에 편승하여 연장 근로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듯하다. 일부 노동자들도 유럽처럼 한 달간 여름휴가를 위해 연장 근무를 통해 연차를 쌓아두고 싶어했다. 우리나라에는 원청 근로자와 하청 근로자의 임금 양극화라는 고질적 문제도 있다.

생산량을 높이려는 이 정부는 이런 불만을 기회로 주 최대 52시간제를 손보았다. 현행법은 52시간이라 주단위 한계를 제시하지만 개정안은 월단위, 분기단위, 년단위로 한계를 정해 현행 주단위의 한계를 완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면 한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다. 주 5일 근무가 도입되기 전에 우리나라 근로자는 68시간까지 근무를 했으니 이전 근로 방식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로시간 개정을 권고하는 미래노동연구회는 주 최대 52시간 근무 기조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사실 1년 총 근로시간으로 보면 할인혜택이 있어 현행 법보다 개정안이 유리하다. 또한 연구회는 바쁠 때 연장 근로한 시간을 적재하여 노동자는 장기 휴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피로와 관리 단위라는 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서 인간 행동의 패턴은 일단위, 주단위, 월단위, 계절단위, 년단위가 있다. 겨울에 나무를 심을 수 없고 여름에 두툼한 옷을 팔 수가 없다. 기업은 사회의 패턴에 따라 대응하지만 바쁠 때를 대비하여 한가한 때에 미래를 준비하는 완충 전략도 구사한다. 그런데 인간의 생활리듬은 기본적으로 일단위와 주단위로 이루어져 낮에 일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거나 주중에는 회사에 나가고 주말에 집에서 머문다. 따라서 근로시간은 하루 근로시간과 일주간의 근로시간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월단위나 년단위는 참조만 될 뿐이다. 일단위에서 노동의 피로는 해소되어야 하고 주단위에서 주중의 여독은 주말에 해소되어야 한다. 주말에 누적된 피로를 해소했다는 사람은 보았어도 월말에 피로를 해소했다는 사람은 적다.

미래노동연구회는 하루의 피로를 하루에 풀라며 일과 후에 11시간의 휴게 시간을 주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현행법에서도 명시된 내용이다. 11시간은 평균 수면인 7시간을 고려하면 부족하지는 않지만 출퇴근시간, 식사시간을 빼고 나면 근로자는 일하거나 자는 두 가지 모드를 오가는 기계를 닮아간다.

재해율과 노동효율이라는 과학적 잣대는

근로시간이 길어지면 재해율이 올라간다. 집단을 대상으로 법칙을 찾아낸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지만 산업안전을 다루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은 2005년도 주당 근로시간이 높으면 사고발생률이 높다는 분석보고서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변경되는 시기였으니 기관의 의도가 가미될 수도 있지만 설문조사가 아니라 발생한 산업재해를 기반했으니 엉터리로 보기는 어렵다. 인류가 밤에 자고 낮에 일하는 리듬에 익숙하고 대부분 근로자가 퇴근이 빠른 직업을 선호하므로 보고서의 결론은 오히려 상식적이다.

과거 우리나라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고 지금도 선진 국가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이전에는 승진에 목멘 사람들은 연장 근로를 하여 회사에 충성심을 보였고 승진하여 관리자가 된 다음에는 직원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닦달했다. 낮시간에는 잡담하다가 저녁식사 후에 회의를 잡고 사람들을 잡아두었다. 노동 생산성을 근로시간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는 능력 있는 작업자는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고 신입 사원도 들어오기 어렵다.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므로 작업량은 떨어졌고 이를 메우려 더 오래 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근로시간을 1% 줄이면 생산성은 0.7% 향상된다는 통계가 있다. 아마 연장 근로시간의 1% 절감은 0.7% 이상의 생산성을 올릴 것이다.

‘잘 쉬는 것이 잘 일하는’ 비결

필자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통상적으로 출근하고 통상적으로 퇴근하지만 1주일 60시간 이상을 노동한다고 생각된다. 집에서는 회사일을 직접 하지 않지만 관련 기술들을 늘 찾아본다. 모든 행위는 내가 좋아서 한다. 은퇴한 지금까지 나의 근로 조건이나 근로 시간을 깊게 따진 적이 없다. 회사가 필요하면 도왔고 내 업무를 완료하지 못해 타인에게 피해가 되면 조금 늦게까지 남았다. 지각하여 한두 번 확인서를 썼으니 필자도 모범직원은 아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 부동전을 곰곰이 생각했다. 초기에 흙탕물이 나왔으니 부동전이 불량일 가능성은 낮았다. 부동전 하단에 모래를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지만 작업도중에 들어간 수도관의 모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수도를 틀면 빠져나올 거라며 지레 짐작했었다. 밤새도록 ‘내일은 수도관에 남아 있을 모래부터 씻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진단은 정확했고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 3만 원짜리 부동전을 건졌다.

회사 일은 근무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시간을 벗어나서도 한다. 우리나라 근로자도 비슷하다. 퇴근 후에 회사 관련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을 수도 있다. 회사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공부를 할 수 있으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 어쩌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기업은 연장근로를 통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지만 개인은 연장근로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국가에서 보면 둘 다 중요하다. 연장 근로로 생계를 연명하는 근로자는 회사를 벗어날 때 오히려 소득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기업들은 연장근로 통해 근로자를 붙잡아 생산량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근로자도 연장근로의 임금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노동 임금이 낮으면 연장근로로 이를 보충하고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과학기술자인 필자는 무엇을 했는지 회의가 든다.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 과학자도 이럴진대 한계 상황을 직접 듣는 정책입안자는 어떻겠는가? 그래도 근로조건 후퇴는 선진 국가로의 진로에서 스스로 포기하는 태도이다. 어려울수록 기술과 창의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을 새로 맡았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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