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스틸컷.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스틸컷.

[송광용 에세이스트] 몸의 우아함

나와 거리가 멀어보이던 것들이 현실이 될 때가 있다. 최근에 두 가지가 그렇게 됐다. 하나는 걷기고, 또 하나는 스터디카페다.

집 주변의 산책로를 전투적으로 걷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아이들과 산책을 할 때마다, 바람막이를 입고 두 팔을 용맹하게 흔들며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들을 보며, 무슨 사명을 받았길래, 저렇게 온 몸으로 바람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었다.

9개월쯤 전, 코로나19로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축구마저 그만 둔 후로 운동을 등지고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몸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직한 반응이었다. 내 몸 안에 있는 세포의 수장이 마침내 이렇게 선고한 것 같았다.

“당신의 몸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닙니다. 땅.땅.땅!”

어떤 이는 오십 대에, 어떤 이는 삼십 대에, 어떤 이는 나처럼 사십 대에 그 선고를 받아 들 것이다. 체격과 체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몸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알람을 끄고 “5분만 더!”를 되뇌는 사람처럼 계속 해결을 미루는 사이, 내 몸은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미뤘다간, “넌 우아하게 살고 있어!”라는 자기 최면조차 효력을 잃게 될지 몰랐다.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마침내 난 집 주변 하천변을, 굴다리 밑을, 보행로를 필사적으로 걷는 사람들의 대열에 섞여 들기로 마음먹었다. 몸에 미적인 굴곡을 만들거나 상쾌한 일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그들이 알던 사람으로 인식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잠들면 밤 10시쯤 밖으로 나왔다. 숨차게 뛰다가,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걸었다. 바람막이를 입고 두 팔을 용맹하게 흔들며, 무슨 사명을 받은 사람처럼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그러다보면, 나오는 족족 바람의 저격을 받아 증발하던 땀이 드디어 바람을 이겨내고 더 이상 기화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기화되지 않은 땀은 그날 밤의 트로피다.

야간 운동 길에서
야간 운동 길에서

꽤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길에 나온 모든 길거리 선배들이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좀 더 오래 안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들이 몸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아프거나, 상심하거나, 쇠하는 일들 따위가 더 일찍 그들을 찾아올 것이고, 그들의 가장 가까운 누군가의 마음엔 비바람이 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고서 몇 달을 병원을 오간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와 아버지 병실의 다른 어르신들을 보며, 난 사람의 끝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돌볼 힘조차 미약해진 상태로 일정한 기간을 보내다가 끝을 맞이한다. 할 수만 있다면, 미미하나마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끝에 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우아함을 최대한 지키고 싶다고.

예전 같으면,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어떤 일에 열중한다는 얘길 들으면, “와 대단하다, 그 열정, 리스팩!” 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그런 이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그걸 필사적으로 이루기 위해, 당신 자신과 가족이 조금 더 오래 안심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라고.

중‧노년이 된 인간이 가장 훌륭해지는 길 중의 하나는, 스스로의 몸을 챙기고 돌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건 자신과 가족을 향한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다.

굴다리 아래를, 둘레 길을, 산책로를 걷는 어르신들이여, 길 위의 동료들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그 사명을 통해 당신들의 우아함이 오래 지켜지기를.

정신의 우아함

내가 처음 스터디카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코로나19때문이었다. 방역 지침으로 일반 카페는 10시면 문을 닫았다. 어느 순간부터 방에선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카페를 이용하게 됐는데, 이젠 폐점 시간 때문에 그마저 중간에 흐름이 끊기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더 오래 문을 여는 스터디카페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스터디카페가 뭔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어디서 스터디카페를 다닌다는 얘길 했더니, “여럿이서 스터디 모임 하는 데야?” 하는 소릴 듣기도 했다. 스터디카페의 전신은 독서실이다. 카페로 진화한 다른 장소들처럼 좀 더 개방감 있고 쾌적하게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처음엔 방역지침이 완화될 때까지 몇 번 가보자고 했었다. 그러다가, 새로 생긴 스터디카페에서 30프로 할인 행사를 한다는 얘길 듣고,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하며 셈을 해 본 후, 최면에 걸린 것처럼 100시간 권을 결재했다. 보통 내게 허락된 사적 시간의 범위(아이들을 재운 후의 시간) 안에서 움직여야 하므로,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어 번 올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근데 100시간을 끊어놓으니 전보다 자주 오게 됐다. 내게 일정한 공간이 할당되었고, 그 영역을 점유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겨서 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난 스터디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 사용이 허락된 방에 앉아 있다. 이곳은 24시간 내내 은은한 피아노곡이 흘러나오고, 그 날 기온에 따라 에어컨 바람이나 히터가 공기의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시켜준다. 적당한 백색 소음이 긴장감을 풀어준다. 마음이 조금 느슨한 상태에서 노트북을 펼 수 있다.

스터디카페에서 노트북을 열며
스터디카페에서 노트북을 열며

스터디카페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이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가족들이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저마다의 과업을 수행할 정도로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사는 집이 넓지 않으면 바깥으로 집의 공간을 확장하면 된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영역을 사수하고 싶어 한다. 잘츠부르크의 정신의학자 만프레트 슈텔치히는, “경계가 없다면 너와 나의 만남도 있을 수 없을뿐더러 사랑도, 싸움도, 거래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지키려고 하는 건 인간의 고유한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우아해지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자신만의 영역이 없어서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난 내게 허락된 이 공간에서 꽤 오래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어떤 밤은 걷고, 어떤 밤은 내 영역을 지킨다. 또 어떤 밤은 두 가지 모두를 한다. 이 일들을 통해 나의 우아함을 조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거라, 난 믿는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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