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강국’이 될 순 없을까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놀이로 세계와 만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놀이·산책 효과 매우 커 오키나와에 ‘놀이터 투어’ 있을 정도 동네마다 개성넘치는 놀이터 만들자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한 장면.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한 장면.

“오늘도 산책을 나가자.”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곤 했다. 작년에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을 맡으면서 학급 경영의 큰 기둥 몇 가지를 세웠었다. 그 중 하나가, “여건이 된다면 매일 아이들에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놀게 하자”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 그 계획을 꽤 성실하게 지켰던 것 같다.

‘산책’이라고 명명한 우리의 일은, 몇 가지의 활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내가 산책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먼저 줄넘기를 챙기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이들은 약속된 장소에 줄을 서서 친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미 마음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갔을 아이들은 기대와 흥분을 잠시 진정시키고, 최소한의 질서가 안전과 직결된다는 걸 체득하며 친구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다 모이면 선생님을 따라서 운동장 둘레에 조성된 학교 산책로를 따라 운동장 반대편, 놀이터와 큰 나무가 있는 작은 광장으로 이동한다. 사전에 약속된 대로, 아이들은 각자 줄넘기 50번을 한다. 줄넘기를 마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논다.

말은 산책이지만 그 내용은 ‘신체 활동’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신체 활동은 아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각각의 놀이기구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고안한 놀이를 ‘함께’ 즐긴다. 그 지점이 중요하다. 필자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자유 놀이가 아이들에게 주는 유익을 한 해 동안 실감했다.

학기 초에,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있었다. 또 친구들과 관계 맺는 것이 더디고 미숙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겐 일상이 지뢰밭이었다. 여기저기서 갈등이 팡팡 터지고, 마음이 상하고, 씩씩거리고 다투는 게 일이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의 친구 관계에 개입하고, 갈등을 조정했지만 그런 인위적인 개입은 약효가 오래 가지 못했다.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노는’ 산책 시간은 천천히 체질을 개선하는 자연식 같은 역할을 했다.

놀이터에서 함께 어울리며 노는 시간은, 교사의 큰 손이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 사이의 작은 틈새에 스며들어 그들 사이를 이어주었다. 친구와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서로를 피해 이동하며, 놀이터 기구에 함께 매달린 모습은 흡사 포도 알갱이가 올올이 모여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교실에서 과제 수행이 느려서 다른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던 아이가 놀이터에만 오면 포도 알갱이처럼 다른 아이들 사이에 찰싹 붙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은 교육과정 외의 활동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기 전 20~30분 정도 소요되는 이런 활동을 하려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거의 매일 산책을 하고도, 수업 진도가 뒤처지지 않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가면서 굳이 이 활동을 시작한 동기는 단순했다. 비슷한 또래인 우리 딸이 학교에서 어떤 걸 많이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공부도 좋고, 실내에서 멋진 프로그램을 많이 할 수 있지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바깥 활동이다. 그것도 친구들과 포도 알갱이처럼 모여서 거의 매일 놀 수 있다면 아이는 학교를 오고 싶은 장소로 여길 것이다.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학부모 상담이나 교원평가 의견에서 바깥 활동을 많이 해서 아이가 좋아한다는 의견을 많이 주셨다.

건물과 바깥을 경계 짓는 문턱을 낮출수록,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저항감이 낮아질 것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저학년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놀이 공간이 많을수록, 이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감이나 불안, 두려움 따위가 낮아질 거라고 믿는다.

놀이하는 인간을 위한 곳, 가장 부러웠던 투어

코로나19 이전에, 아이들과 오키나와 여행을 갔었다. 오키나와 여행을 가봤거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검색해 본 사람들은 오키나와에 유명한 투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건 바로 ‘오키나와 놀이터 투어’다.

오키나와에는 특색 있는 놀이터들이 많다. 매일 아이들과 투어를 다닐 정도로 규모도 크고 개성 넘치는 놀이터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생각만 해도 뭔가 든든한 느낌이 차오를 것이다.

필자가 아이들과 갔던 놀이터는 ‘나카구스쿠 공원의 놀이터’였다. 먼저 놀이터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놀이터 주변엔 초록의 잔디가 깔린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놀이터엔 긴 오솔길이 요리조리 이어진 구조물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미끄럼틀이 마치 곤충의 다리처럼 바닥까지 이어진다. 개성이 넘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이라도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키나와의 놀이터가 투어 장소가 된 건, 지역의 문화와 특색을 반영해서 제각기 ‘다르게’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구스쿠로드 공원의 놀이터엔 비탈진 잔디밭을 따라 내려오는 긴 미끄럼틀이 혓바닥처럼 이어져 있다.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 내 놀이터는 ‘생명의 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생명의 시작인 알과 바다를 형상화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아라하비치 해변엔 해적선 모양의 놀이터가 있다. 그 외에도 각기 특별한 놀이터들이 산재해있다.

오키나와의 나카구스쿠 공원 놀이터 풍경. 사진=오키나와현서울사무소 블로그
오키나와의 나카구스쿠 공원 놀이터 풍경. 사진=오키나와현서울사무소 블로그

오키나와를 다녀오면서, 그곳과 우리의 현실이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특색 있는 놀이터들이 있다. 요즘은 중요성을 깨닫고 생태, 모험을 주제로 한 다양한 놀이터가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놀이터는 획일화 되고 정형화 되어 있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의 삼총사가 자리 잡고 있는 놀이터들. 한 신문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놀이터가 획일화된 이유를 알아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가 곳곳에 마련됐다. 1973년에는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으로 ‘어린이 놀이터는 최소한 그네, 미끄럼틀, 철봉, 모래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새겨 넣었다. 놀이터가 정형화됐다. (중략) 전문가들은 놀이터가 놀이시설을 공급하는 업체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이 놀 공간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네·미끄럼틀 없는 놀이터? 아이들은 더 신났다(한국일보 2018년 9월 5일자 기사)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 칭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놀이하는 것 자체를 추구하고, 사회적 기능으로서 놀이를 수행하는 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인류 문명이 놀이 속에서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견해도 밝혔다. 놀이가 이토록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어린 시절, 어쩌면 세계를 판단할 기준이 되는 공간인 놀이터에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가 놀이터 투어를 할 가치가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동네마다 저마다의 문화, 생태가 반영된 개성 넘치는 놀이터가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생겨났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놀이터 강국’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은 이 동네, 내일은 어느 동네 놀이터를 가볼까’ 아이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식물의 광합성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계를 배우고 서로를 배우고 자신을 알아간다. 어른들의 할 일은 뚜렷하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권하는 것. 아이들을 위해 놀이할 시간을 찾아주고, 멋진 놀이 공간으로 이 세계를 채워가는 것이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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