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클린턴, 그리고 이재명과 윤석열

[송종운의 따뜻한 경제이야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눈길 끌었던 빌 클린턴 이재명· 윤석열 슬로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0일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언론사 행사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0일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언론사 행사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송종운 울산과학기술원 사이언스월든 연구원] 지난 달 10월 10일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민주당 제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그리고 한 달 남짓 후인 11월 8일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모두 결정됨에 따라 대통령을 뽑는 내년 3월9일까지의 긴 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선거일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 국민적 관심이 역대 어느 대선보다 높은데 이는 이미 작년부터 여당과 야당의 후보가 계속 국민적 이슈의 중심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대선 레이스가 1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숱한 사건들이 발생했다가 사라졌고, 훨씬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필자는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는 사건들에 말을 보태기보다 두 후보의 정책들을 짚고 헤아려 보려 한다.

두 후보의 정책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필자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가 내세웠던 세 가지 슬로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보겠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았고, 그 여파는 컸다. 지금도 경제 문제를 선거의제로 삼고자 하는 정치인은 이 슬로건을 소환하곤 한다.

그러나 클린턴은 경제 슬로건 말고도 복지와 정권교체라는 두 슬로건을 더 제시했었다. “복지(건강보험제도 개편)를 잊지 말자”와 “같은 사람에게 또 맡기지 말자”가 바로 그것이다.

1992년 미국 대선 토론회. 왼쪽부터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 무소속 로스 페로 후보, 공화당 조지 H.W. 부시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92년 미국 대선 토론회. 왼쪽부터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 무소속 로스 페로 후보, 공화당 조지 H.W. 부시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첫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양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연설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단어가 있다. 바로 “카르텔”이다.

이재명은 “사회 곳곳에 퍼진 불공정과 불평등, 소수의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기회가 넘치고, 공정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했고 윤석열은 “사회 구석구석 만연한 특권과 반칙을 바로 잡으라는 명령입니다. 대장동 게이트에서 보듯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뿌리 뽑고 기성 정치권의 개혁을 하라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현재를 무언가 확실히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인식의 줄기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인식 아래 무엇을 이루겠다고 제시한 약속에는 상반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재명은 대선 1번 공약으로 삼은 ‘전환적 공정 성장’을 통해 이 문제를 풀겠다고 한 반면 윤석열은 정권교체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두 사람의 약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재명은 현재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기득권의 카르텔을 공정한 경제성장으로 바꾸겠다는 한 것으로 읽힌다. 이와 달리 윤석열은 정권교체를 통해 우리사회가 직면한 경제와 사회 그리고 권력의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보다시피 윤석열의 해법은 정치권력의 구조를 바꿔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집단의 부를 빼앗아 권력구조를 해체시키면 불공정이나 불평등 그리고 부패 카르텔이 자연스레 뿌리 뽑힌다고 본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같은 주장은 1950년대나 1960년대 저개발국의 정치에서 흔히 보였던 해법이어서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만 현재 레이스가 막 시작하는 단계고 또 윤석열의 경제정책이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지 않은 상태라서 지금까지의 언급들만 가지고 재단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이재명의 경제정책 공약이 제시하는 색깔은 비교적 선명한데, 필자가 보기에 전환적 공정 성장론은 마치 “바보야, 문제는 가난한 국민을 일으켜 세우는 거야”라고 외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재명 역시 공약의 전체적인 윤곽이 나와야 알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기본소득 대신 성장론을 택한 것을 보면 무언가 큰 공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같아 보인다.

특히 지난 10월 10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한 연설 중 1호 공약을 설명하는 와중에 언급되었던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신속한 국가투자에 나서겠다”는 말로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린 상태다.

둘째, “복지를 잊지 말자”

문재인 정부 복지정책의 특징을 한 낱말로 간추리면 “선별”이다. “선별”은 긴급재난지원의 대상을 놓고 벌어졌던 논쟁을 통해 익숙한 말이지만 훨씬 더 오래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1990년대 (구)소련사회의 붕괴 이후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은 그동안의 계급운동에서 시민운동과 부문운동으로 전환했다. 사회의 개별적 모순과 약자를 지원하고 돕는 방향으로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의 흐름이 변화한 것으로 필자는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은 역대 어느 정권과 비교해 보아도 소외받는 계층과 세대에 가장 집중했던 정부라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보편”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선별과 보편은 긴급재난지원 대상의 선정에 관련된 것이라 보다는, 복지의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의 보편적 복지는 그동안 선별 복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와중에 틈새에 놓인 여러 계층과 세대를 아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20대, 30대 남성이다. 차기정부를 결정하는 대선에서 20, 30대 남성의 표심이 과연 누구를 향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단 이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현 정부에 등 돌린 이들은 국민의힘 경선과정에서 홍준표 후보를 대거 지지했다가 윤석열로 대선 주자가 결정되자 탈당러시를 보여주었다. 아직 가늠하기에는 시기상조지만 지금 봐서는 20대, 30대 남성이 윤석열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윤석열의 정책이 늘 그랬듯이 복지정책 역시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고 정권교체를 해법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약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방향을 강조한다. 이른바 그때그때 다른 발언을 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복지정책을 강조하고 있긴 하다.

윤석열은 “성장을 해야 복지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 대해선 거리를 둔다“면서도 “복지라는 것도 재정이 있어야 집행될 수 있다”라며 성장과 복지 중 어느 것도 편향적으로 택하지 않겠다는 중용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어느 것도 선명하게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에게 정책이란 정권교체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후보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그때그때 정치사정을 봐가며 활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에 비해 이재명의 복지정책에 대한 태도는 분명하다 못해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재명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계부채비율은 매우 높고, 국가채무비율(정부부채비율)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국가의 공적 이전소득, 즉 국가의 가계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라도 국가가 가계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보다는 시대정신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같은 사람에게 또 맡기지 말자”

정권교체에 대해서 윤석열 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윤석열은 정권교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경험을 공직선거를 통해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 내심 불편한 국민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국민 또한 상당한 수를 이룬다.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윤석열의 경선TV토론을 지켜본 국민들은 대부분 공감하는 것이지만 같은 당 경선후보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맥없이 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지율은 꺾이지 않았다.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자신을 향해 “윤석열은 이제 한 개인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의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라고 했다. 이는 마치 정권교체가 국민모두의 오래된 숙원이며, 그 한가운데 본인이 상징처럼 서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일은 환호와 갈채 말고 더 이상은 없다. 왜냐하면 후보 자신이 국민의 염원이 된 후 정권교체의 주체가 되었으니 말이다.

윤석열이 국민에게 바라는 것은 “(국민께서) 저를 지켜주실 것”일 뿐이다. 후보가 자신을 주체로, 그리고 유권자를 정권교체의 상징인 자신의 수호자로 만들어버리는 순간이라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윤석열의 발언을 듣다 보면 국민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간혹 들 때가 있다.

윤석열이 약속한 대한민국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지역, 계층, 성별,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화합할 때 안정적 국가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정권교체를 통해서 이루겠다는 화합의 공간에 굳이 “자유민주주의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함께 하겠다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반면 이재명의 정권교체는 여러모로 복잡하다. 일단 이재명 후보 자체가 민주당 정부를 계승하겠다고 했으니 권력교체는 이룰지 몰라도 정권교체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이재명의 이력을 보면 다른 가능성도 열려있다.

일단 이재명은 국회의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직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여기까지 왔다. 또한 민주당의 계파를 이룬 바 없고 굳이 말하자면 성남과 경기도 인맥이 있을 뿐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이후에 예정되어 있는 중요한 정치일정은 6월 지방선거와 그 다음해 있을 국회의원 선거인데, 대통령이 된다면 그때는 공천에 나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이재명의 속내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재명은 새로운 민주당의 권력구조를 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과 전남지역에서 탈당해 복당하지 못한 구민주당원에 대한 대응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더 많은 국민이 민주당에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며 복당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월 31일 여권대통합과 당내 사면 카드를 들면서 “여권의 정치적 대통합이 필요하다. 일종의 정치적인 대사면을 해서 최대한 통합하고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당내 대사면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민주당의 구성 자체가 크게 변화할 수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재명의 제안은 현실화되고. 민주당은 2~3년 내로 일대 쇄신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추가로 만일 이재명 정부가 실현된다면, 정부의 구성과 직제도 큰 폭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우선 지금 기재부가 독점하고 있는 예산권이 청와대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 흔히 ‘모피아 권력’이라고 불리는 관료지배는 돈(예산)과 승진에서 나온다. 따라서 청와대가 기재부로부터 예산권을 가져와 행사하게 되면, 현재 홍남기 기재부 장관과 매번 불거지고 있는 마찰도 과거 일이 될 수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이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예산권을 직접 챙기라는 ‘브라운로 보고서(Brownlow Committee Report)’ 덕분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제 막 레이스를 시작한 국면이기도 하고 또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이 나오지 않는 상태라 딱 잘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두 후보가 내년 대선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겠다는 태도는 나와 있는 상태다.

내년 대선은 ‘작게 시작해서 크게, 그리고 가난한 국민을 구제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와 ‘정권교체로 자유민주주의 법질서 확립’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윤석열 후보간의 한 판 레이스다.

글쓴이

송종운 박사

송종운 경제학 박사는 울산과학기술원 사이언스월든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백석예술대학교 초빙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사)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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