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사태의 본질은 ‘소비자 토사구팽’

[송두한의 판을 바꾸는 금융] 8330억 투자하고 5조2천억 가져간 씨티 청산절차에 ‘대출 소비자 보호’ 사라져 금융당국, 국민에게 엄격하고 외인자본에 관대한 ‘나쁜 선례’

[송두한 공정금융포럼 공동대표]

씨티은행 사태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

한국씨티은행(이하 씨티은행)이 소매금융 사업을 청산한다. 대신 기업금융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씨티은행은 미국의 씨티그룹이 2004년에 한미은행을 인수해 설립한 국내 법인이다. 이후 소매금융에 특화된 전문은행으로 차별화를 시도해 왔으나, 최근 사업환경이 악화되면서 본사 차원에서 국내 법인의 소매금융 부문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은행업을 접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체 고용의 70%에 가까운 2500명이 명퇴방식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약 20조원의 대출을 안고 있는 220만 소비자도 무장해제 당한 상태다. 그럼에도, 금융위가 “폐업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며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사업 청산이 금융위의 인가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한 것은 관치의 리스크관리 차원이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친자본 정책에 불과하다.

선험적으로, 외국계 은행은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에 융화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본디 자금의 원천이 은행자본이 아닌, 투자 목적의 시장성 자본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시기에 사서 적당한 시기에 팔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외인자본의 국내 은행업 진출은 저점 매수∙고점 매도의 원리가 작동하는 금융투자 사업의 일환일 뿐이다. 당연히 소비자 보호가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이나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폐지나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

올해 5대 금융지주는 팬데믹 위기의 역풍을 뚫고 단군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양적 팽창과 총량규제가 쏘아올린 금리급등에 힘입어 이자이익만으로도 4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눈부신 실적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은행권 전반에 걸쳐 코로나발 경기충격이 은행 폭리로 이어지는 구조적 실적 장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씨티은행이 수익성 악화로 인해 은행사업을 접는다 하니, 정말 손해를 보고 떠나는 것일까 궁금해 손익계산서를 두드려 보았다.

씨티은행, 한국진출이후 회수한 금액은

2004년에 한미은행 인수자금으로 약 8330억원을 투입했는데, 그 당시 은행업 구조조정 여파로 인해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 이후 씨티은행이 17년간 은행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순익은 약 5조 2천원으로 투자금의 6배 이상 된다.

그간 본국에 보낸 배당금은 약 2조원으로 투자금에 견줘 138%나 된다. SC제일은행은 2015년에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1500억원의 적자배당을 실시했다. 씨티은행은 2018년에 순익(3074억원)의 3배인 9341억원을 배당해 ‘304% 초고배당’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한 바 있다. 이처럼 외국계 은행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이유는 배당만으로도 원금 회수가 가능한 고수익 사업이기 때문이다.

외인자본의 행태를 보면, 진출 이후 재투자를 통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버는 족족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사업에 주력해 왔다. 외인의 ATM 머신으로 전락한 국내 법인이 시중은행과 치열하게 경쟁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씨티은행 사태는 ‘소비자 토사구팽’ 사태

씨티은행은 다른 외국계 은행의 청산 사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매각을 통한 대출자산 청산에 실패함에 따라 내국인 소비자인 대출자는 볼모로 잡히는 상황에 직면했다. 220만 금융소비자는 일순간에 관치의 사각지대에 위리안치 당해 당국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씨티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딱 2가지뿐이다. 첫 번째 방법은 시중은행에 대출자산만 분리해 매각하는 것이다. 이는 규제발 신용대란(한도축소 · 금리급등) 사태에 직면한 지금의 은행업 환경을 고려할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또다른 방법은 씨티은행이 스스로 대출 자산을 정리하는 청산 절차를 밟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청산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생존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소매금융 청산 과정에서 당국이 이용자 보호 방안 등을 제출하라고 하니, 씨티은행은 알아서 철수를 위한 이행계획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문제의 본질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소비자보호 대책’인 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고도 없이 날벼락을 맞은 고객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은행 돈을 빌린 차주들은 혹여 ‘대출상환’ 딱지가 날아올까 걱정하며 처분만 기다리는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무책임한 씨티은행이나, 작전하듯 출국 비자를 발급한 금융당국이나 ‘소비자보호’ 의무를 방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당국이 국민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외인자본에게 한없이 나약한 이유는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친자본∙친기업 DNA 때문일 것이다. 일례가 실수요자만 골라 집중 타격하는 현재의 ‘규제발 신용대란’ 사태다. 총량규제로 인한 공급충격이 금리왜곡과 금리급등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대출중단 사태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부채관리를 위해서라면 실수요자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금리폭등이 은행폭리로 이어지고 있다고 항변하자 이번에는 “은행폭리가 절대 아니”라고 항변하는 등 은행의 대변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처럼 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규제 칼날은 자본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씨티은행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금융위는 씨티은행의 청산에 인가가 필요 없다는 결론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내려졌다고 주장한다. 법률자문단, 금융위 간담회, 법령해석심의위원회 등 일련의 법률자문 절차를 통해 소매금융 매각이 “은행법 상 폐업에 이른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인가가 필요없다”는 결론을 금융위가 내렸다. 누가 참여해 누구를 위한 법률 지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울추에 소비자가 실리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선의의 피해자인 소비자는 당국이 이런 알아듣기도 힘든, 복잡한 법률절차까지 밟으며 출구를 열어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나가긴 나가는 건데 완전히 나간 거에 이른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씨티은행의 사업 철수로 220만 내국인 고객이 한 순간에 금융 사각지대로 내몰렸는데 이게 ‘철수’가 아니고 ‘축소’라고 우기면 금융당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외인자본의 이탈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본연의 임무임을 망각한 처사일 뿐이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외국계 은행의 거듭되는 배신과 이를 방치하는 금융당국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마지막 한명의 고객까지 온전하게

이에 대한 반론으로 금융위는 이미 ‘조치 명령’을 발동해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 조치 명령이란 게 관치의 눈으로 보면 대책으로 보이겠지만 소비자의 눈으로 보면 그냥 ‘통지문’에 불과하다. 대부분 구체성이 결여된 원론적인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해당 은행이 자발적으로 이행계획을 작성해 제출하면, 금감원이 이를 검토해 보겠다는 것이 전부다. 씨티은행이 적당히 제출하면 당국이 적당히 마무리할 공산이 크다. 자칫 출구를 열어주는 ‘사면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바람직한 조치 명령은 “마지막 한명의 고객까지 온전하게 하차해야 이륙이 가능하다”는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출자산 정리를 예로 들어보자. 단계적 폐지계획은 “각 상품∙서비스 중지내용 및 시기, 만기시 처리과정 등 사전안내 및 설명계획”이 골자다. 기준이 없으니 스스로 만든 대출상품 정리계획을 당국에 설명하라는 것이다. 즉 적법하게 만기를 연장하지 않아도 조치 명령에 위배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의 귀책 사유가 씨티은행에 있는 만큼, 대출을 상환하거나 갈아타야할 책임 역시 해당은행에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씨티은행은 20조원 규모의 개인대출을 보유하고 있는데 1년마다 만기가 도래하는 신용대출이 대부분이다. 총량규제로 앞문 뒷문 다 막혔는데, 만기시 상환하라하면 소비자는 사(私)금융을 전전하다 신불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 씨티은행이 1년 정도 만기를 연장해 준다 해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은행이 스스로 사업을 철수할 경우에는 기존대출의 상환 만기는 은행이나 당국이 아닌 소비자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제대로 된 씨티은행 소비자보호 조치는?

지금처럼 금융위가 기한이 없는 자발적인 조치 명령을 내리고, 해당은행이 스스로 빈칸을 채워서 낸다면, 참여 주체인 소비자가 낄 공간이 없다. 금융위가 주관식 문제를 내고 가해자가 답안을 임의로 작성해 금감원에 제출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금융위가 구체적인 이행 조치를 수치로 확정해 적시하고 이에 맞춘 답안을 금감원이 심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기존 대출의 경우 소비자에게 최소한 10년의 상환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을 조치 사항으로 포함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제출할 이행계획을 심사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보호의 대원칙”은 차주가 상환할 수 있는 충분한 기한을 허용하고, 기간 내 자발적인 상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가정경제는 10년 정도의 재무계획을 세우고 1년마다 갱신하는 신용대출을 받는다. 부채경영 차원에서도 10년의 상환기간이 적당한 이유는 매년 10% 원금을 덜어낸다 해도 대출을 정리하는데 최소한 10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통상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만기를 최장 10년까지 연장해 운영하는 이치도 이와 같다. 씨티은행이 철수한다 해도 최소한 10년의 대출상환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다른 은행으로 대출 갈아타기를 권유할 경우, 귀책 사유가 있는 씨티은행이 직접 대환대출을 주선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 책임을 피해자인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신용대란 사태로 기존 대출도 상환해야 할 판에 다른 은행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대환대출이 불가피하다면 씨티은행이 동일한 조건으로 대환대출을 직접 주선하고 이로 파생되는 일체의 부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씨티은행은 대출자산 정리를 위한 “소매금융 영업점포”를 지정하고 최소 10년간 운영하는 조치 명령을 발동해야 한다. 즉, 10년의 기간 내에서 기존 고객이 순리에 따라 자연 소멸될 때까지 동일한 수준의 대출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마지막 한명까지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외국계 은행의 ‘먹튀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함에도, 금융당국은 이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겨 달아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사건은 아직도 국민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HSBC의 한국시장 철수는 소비자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씨티은행 사태가 주는 교훈은 금융당국이 너무나도 성급하게 폐업을 허락해 주는 바람에 소비자보호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다. 씨티은행 사태가 좋지 않은 선례로 남는다면 SC제일은행도 유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씨티은행 사태가 소비자보호 원칙이 바로 서는 첫 번째 사례로 남아야하는 이유다.

글쓴이

송두한 공정금융포럼 공동대표

송두한 공정금융포럼 공동대표는 NH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장을 지냈다. 미 오토바인 대학교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를 했다. 저서는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향후 파급효과 진단'(2007),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2012),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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