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한 관치금융, 신용대란 키우는 중?
[송두한의 판을 바꾸는 금융] 대출총량 관리 실패..주담대출 급증 뒤늦은 고강도 규제, 신용대란 우려 대출총량 관리 강화하되, 실수요자 보호를 한은 금리인하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글로벌 금리정책이 고금리 주기에서 저금리 주기로 전환하면서 시장금리 역시 하락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연준은 사실상 9월 금리인하를 예고한 상태이고, 한국은행도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계부채 폭등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은행권 대출시장은 무질서한 관치 규제가 시장과 충돌하면서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금감원은 은행권이 금리를 올려 대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용인했으나, 대출총량 관리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고강도 대출규제 방안을 꺼내 들었다. 시중은행들도 대출 중단, 한도 축소 등 광범위한 대출 옥죄기에 들어간 상태다. ‘2021년 신용대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질서한 관치금융에 무너진 시장 질서
지난 7월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일제히 올려 신용팽창을 억제하려 했으나, 가계부채를 잡기는커녕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부작용만 초래했다. 금리 하락기에 대출금리를 올리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잡으라는 집값은 못 잡고 대출자의 이자부담만 늘어난 셈이다. 물론,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증가한 원인은 수도권의 집값 상승에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금융감독원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은행권의 무질서한 금리인상은 사실상 이복현 금감원장과 은행들의 합작품으로 이다. 이 금감원장은 지난 7월에 17개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 간담회에서 연간 2~3% 범위에서 가계대출에 대한 소득 조절을 주문한 바 있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속도 조절 주문에 “금리인상을 통한 대출 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후 신한은행 7차례, KB국민은행 6차례, 우리은행 6차례 등 시중은행들은 두 달 동안 20차례가 넘는 무차별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은행들이 금리인상과 같은 손쉬운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질책했지만, 은행들은 이제 와서 금융당국이 그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며 당혹해하고 있다. 은행 자율에 맡기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주담대 추이를 보면, 신용팽창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월별 주담대 증감액은 올해 3월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다 4월 4.3조원 ▲5월 5.3조원 ▲6월 5.8조원 ▲7월 7.6조원 ▲8월 8.9조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증가 속도만 보면, 가계부채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대출총량 관리 실패는 금융당국의 잘못된 진단과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보는 것이 맞다.
<5대 시중은행 주담대 월별 증감액>

상황이 다급해지다 보니 최근 정부는 고강도 대출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은행들도 일제히 대출 옥죄기에 들어갔다.
이달부터 정책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을 대상으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해 대출한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2금융권 주담대에 스트레스 금리 2단계가 적용된다. 비수도권 주담대는 0.75%p의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한도 축소를 산정하지만, 수도권 주담대는 그 수치를 1.2%p로 상향하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은행들의 대출 중단이 속출했던 ‘2021년 신용대란 사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이유다.
관치 규제가 신용대란 사태의 주범인 이유
①발목 잡힌 한은 금리인하
가계부채는 지난 10년간 부동산경기 상승과 코로나발 경기 충격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했다. 특히, 대출로 임대료를 돌려막는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개인사업자대출은 2019년 449조 원에서 2024년 1분기 703조 원이고, 코로나 대출 증분만 25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엄밀히 따지면, 개인사업자대출도 가계대출로 보는 것이 맞다.
올해 1분기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을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는 2585조 원인데, 국가GDP에 견주면 108% 수준이다.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GDP 대비 51%까지 늘어난 국가부채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가계부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금융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
유일한 부채대책은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뿐이다. 한국은행이 선제적 금리인하를 통해 대출의 보편적 금리 수준을 낮춰야만 중산층과 서민경제가 짊어진 이자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 주담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길목을 막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자율에 맡긴 대출규제가 실패함에 따라 한은의 금리인하가 지연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꾸준하게 하락해 기준금리와 동일한 3.5% 수준까지 내려왔지만, 기준금리에 막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신규대출 증가로 금리인하 시점이 늘어지고, 불어날 대로 불어난 기존대출은 이자부담을 못 이겨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금융당국의 총량관리 실패가 가져온 결과다.
<주택담보대출금리와 기준금리>

②금융실수요자 집중 타격
문제는 금융시장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엇박자를 내며 정책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는 ‘8.8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주담대 규제를 대폭 강화해 주담대 수요와 ‘영끌족’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규제책을 발표했다. 즉, 주택공급은 대규모로 늘리되 대출을 통한 주택 수요는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실수요와 투기적 영역의 금융 수요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도 없이 대출을 틀어막으면, 그 충격은 시차를 두고 금융실수요자에게 전이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대출총량 관리 책임을 개별 은행들에 맡기다 보니, 금리와 대출 한도가 은행마다 제각각이고 대출 정책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담대 대출수요가 신용대출 시장으로 몰리면서 시중은행에 따라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큰 격차를 보인다. 올해 7월 기준, 신용대출 금리는 SC제일은행이 6.8%로 가장 높고 우리은행이 5.1%로 가장 낮은데 두 은행간 금리격차가 1.7%p나 된다. 이는 주담대 금리격차(0.8%p : 하나은행 4.1% - 우리은행 3.3%)와 비교하면 2배 이상 큰 수치다. 지방은행의 경우에는 더 심각한 수준인데, 신용대출 금리격차는 시중은행보다 2배 이상 높은 3.6%p(전북은행 10.1% - 제주은행 6.5%)까지 벌어진 상태다. 이처럼 고금리 구간에서 은행에 따라 금리가격이 중구난방이다 보니, 은행의 금리산정체제를 신뢰하지 않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은행 자체의 대출규제도 마찬가지다. 은행권은 만기 축소, 다주택자 대출 제한, 생활안정자금 한도 축소 등 광범위한 대출 조이기에 들어간 상태다. KB국민은행은 다주택자 대출 제한, 수도권 주담대 만기 축소(50년에서 30년), 생활안정자금 1억원 제한 등의 대출 제한 조치를 실행했다. 우리은행도 주택 보유자의 대출을 제한하고, 전세대출도 전 세대원이 무주택자인 경우에만 내주기로 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 하향, DSR 적용범위 확대, 신용대출 한도 축소 등 추가 규제가 도입되면, 전세자금대출이나 실수요자의 주담대 문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실수요자는 예측 가능한 대출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언제든 대출 중단 충격에 노출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정책 조합 통해, 한은의 금리인하 환경 만들어야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2021년 신용대란 사태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출금리를 올려 신용팽창을 억제하면 기존대출이 부실화되고, 대출규제를 강화하면 민생경제 전반에 걸친 금융제약이 발생하는 구조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신규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부채발 경제위기가 발현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정책 조합을 통해 신용대란 사태로 번지는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첫째, 정부는 은행 자율에 맡기는 건전성 규제에서 정부 주도의 대출총량 관리로 전환해, 보편적 금리인하가 가능한 제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총량 규제의 틀 안에서 실수요와 투기적 수요를 구분하고, 차별적 대출규제를 적용하는 ‘규제이원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전세대출과 실수요자 주택대출 등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은행권 ‘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투기 목적의 2주택자나 3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대출규제를 실행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행은 즉시 금리인하 로드맵에 대한 강력한 선제적 안내를 예고하고, 선제적인 금리인하에 착수해야 한다.
대출총량이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된다면, 한국은행이 10월 금리인하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금리인하가 대출금리를 끌어내려 보편적 금리 수준이 내려가야만 민생경제를 짓누르는 이자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민생을 위한 확대재정의 역할이 축소된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인하는 최고의 민생대책이자 유일한 부채대책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