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알라(Allāh)의 축복”이라는 사우디 사람
[신승민의 기름왕국 사우디를 찾아서] 길거리에서 ‘집 방문’ 초대 받은 이야기 마치 이브라힘과 천사의 이야기 처럼
“알라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그의 손님이 될것이다” – 이슬람 율법서 [Sahih al-Bukhri] 中에서
대학생 ‘할라’가 내 가족을 위해 내온 은색의 반짝이는 접시에는 대추야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대추야자를 입속에 넣으니 진한 단맛이 순식간에 퍼져 까닭모를 긴장감을 풀어줬다. 동생 ‘무함마드’는 기다렸다는 듯 뒤이어 아랍식 커피포트에 ‘카와’라고 불리는 중동지역 커피와 한국 전통 소주잔처럼 생긴 커피잔을 들고 왔다. 아이들은 “슈크란!”이란 아랍어로 집을 방문한 내 가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무함마드는 커피잔에는 노란색 카와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카와는 아라비카 커피 원두에 생강과 카타몬 같은 향신료를 함께 넣고 끓여 만든 것. 대추야자와 같이 단맛이 강한 디저트류와 잘 어울리는 칼칼한 풍미가 목을 따라 넘어갔다.
19살의 할라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교 신입생이다. 10대 중반이상만 되어도 남성들과 함께 자리를 하지 않는 사우디 전통과 달리, 할라는 필자 건너편 소파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필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느 사춘기 고등학생처럼 여드름과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있는 16살의 무함마드도 응접실 출입구쪽에 앉아 손님 테이블에 쉬지 않고 간식을 나르며, 우리 가족이 비워내는 카와 잔에 따뜻한 카와를 연신 따라주느라 분주하다.
모두 유창한 영어로 한국에 대해, 한국인의 사우디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초대된 이방인이 불편하지 않게 극진히 대접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우디인 오마르
길거리에서 처음 본 필자의 가족을 집으로 초대한 우마르씨. 이슬람의 중심 도시인 메카 출신인 그는, 국영정유회사 아람코를 퇴사하고 얼마전 사우디 채굴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의 아내는 사우디 최고 명문대학인 KAUST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역 대학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한다. 짐작컨대 오마르씨의 가정은 일반 사우디 가정보다는 유복한 상위계층에 속한 것같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와 국제학교를 거친 아이들은 가족이 아닌 이성간의 대화도 거리낌 없었고, 최근 유행하는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등의 주제로 대화를 이어갈만큼 자유로왔다. 보수 이슬람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컸다.
마치 천사를 대접한 이브라힘 처럼
필자는 어떻게 이 가정을 방문하게 됐을까. 사우디 가정을 방문한게 된 특별한 사연은 이슬람의 전통과도 맥을 닿고 있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한낮의 더위 아래 우연히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정성스레 대접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이 천사였고 그 천사에게서 그토록 원하던 ‘자식 잉태’의 예언을 듣게된다.
낮선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이 일화는 똑같이 코란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슬람에서는 이 선지자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일화가 손님 초대의 기본 바탕이 된다. 이슬람을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도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던 나그네에게 외투를 벗어주어 그 위에 앉게 했고, 그의 방석을 나그네에게 건네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또 코란의 또다른 페이지에는 허기진 여행객들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해준 부부의 이야기도 기록되어있다.

21세기 사우디의 가장 발전된 도시중 한 곳에 살고 있는 필자도 성서나 코란에서 나올법한 경험을 했다. 한달반 전, 일주일에 한 두 번 들를 정도로 자주가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당은 매우 작아 테이블이 3개밖에 없었고 그 시간에 필자의 가족만이 피자 두 판을 주문해 절반쯤 먹었을 때였다.
뜻밖의 초대...이거 납치극 아냐?
갑자기 필자 앞에 10대로 보이는 사우디 아이(앞에 언급한 무함마드)가 불쑥 나타나더니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왔다. 영문을 물어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필자를 ‘알고 싶다’는 거였다. ‘이게 뭐야. 신종 사기, 사우디식 납치범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오랜 기간 격투기를 수련한 필자는 두 세 명의 사우디 남자라면 충분히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식당밖 도로가까지 그 어린 친구를 따라나섰다.
도로가에 정차된 미국산 차량 캐딜락 창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사우디 남성이 “코리안?“이라고 묻는다. 이내 그는 운전석에서 내려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이 악수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식사하는데 밖으로 불러내서 너무 미안하다며, 운전하고 지나다가 식당 안에 있는 우리 가족을 보고 꼭한번 인사하고 싶었다 했다. 자신을 ‘오마르’라 소개한 그는 메카 출신으로 메카에서는 길가의 이방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하는 게 전통이라며 꼭 자신의 집에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고, 필자는 그가 무안하지 않게 한달 후쯤에나 가능하겠다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는 자기 연락처를 주고 필자의 번호를 받아갔다. 여러분들이라면 이 초대에 기꺼이 응해서 그가 남긴 집 주소로 가족들과 함께 갈 수 있겠는가?
필자의 한국인 지인 모두가 “절대 가지마라”라며 강하게 만류했고, 사우디 학생들에게도 물어보니 학생들도 “가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중 메카에서 온 학생은 “메카에서는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을 초대하는 전통 같은 건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호기심이 발동해 ‘한번쯤 가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마저 단호히 반대했다. 진심으로 초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낯선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는 태도였다.
필자 또한 망설임 없이 그의 메세지와 연락처를 삭제한 뒤 아예 잊고 지내는데 정확히 한달반이 지났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주에 가능하겠어?” 필자는 이 정체모를 사우디인의 호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연락 온 다음주로 저녁 약속을 잡고 말았다.
화원에 들러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빨간색 꽃화분을 하나 사서 필자의 집에서 20여분 정도 거리인 그의 집을 찾았다. 4년 여의 사우디 생활동안 사우디인의 집에 초대 받아 가본 적은 한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경우는 참으로 황당한 초대였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2층집 앞에 전에 봤던 캐딜락이 주차되어 있었다. 내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납치라도 당하거나 하면 어쩌나.”
환대의 시작... “난 천사가 아닌데”
열려있는 대문 사이로 우마르씨와 그의 아들이 나와서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간신히 그의 집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넓다란 응접실 2개를 지나니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식당이 보였고 그 식당 뒤 또다른 응접실에는 부인과 딸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닭고기와 쌀, 토마토등을 함께 쪄서 만든 ‘부카리’라는 음식과 양고기 만두, 각종 샐러드, 여러 야채가 들어간 스프를 접하곤 아내는 “이거 너무 맛있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쳇! 안간다고 할땐 언제고”

식사를 마치자 녹차와 초콜렛이 후식으로 나왔다. 필자는 우마르씨에게 왜 우리 가족을 초대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주변에서, 특히 사우디 학생들조차도 절대 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이야기도 전하면서.
우마르 씨는 필자와 마주쳤던 그날 이야기를 다시 했다. 여느 때처럼 아들과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로컬 식당에서 앉아있는 필자의 모습에 왠지 모를 끌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의식의 흐름에 이끌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아들을 시켜 필자에게 말을 건네고 식사 초대를 한 것이라 했다.
우마르는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메카로 성지 순례 오는 각양각색의 이방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그들과 대화를 하셨다한다. 그날 저녁 자신의 집 근처 식당에 앉아 있는 우리 이방인 가족에게 강한 끌림을 받아 마치 선지자 이브라힘이 했던 것처럼 집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해주고 싶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아쉽지만 난 천사는 아니”라고 하니,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필자는 코란의 가르침대로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착하고 순수한 사우디 가정을 동화처럼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이렇게 마음의 빛을 지게 되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저녁 자리였고, 그의 2층 집과 멋진 응접실은 마치 수 천년 전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했던 ‘마므레’ 상수리 나무밑 시원한 그늘이었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 여러분 곁의 천사를 찾아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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