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크리스마스의 추억(Blue Christmas story)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고2 겨울, 어떤 설렘으로 밤거리를 헤맸을까

흐릿한 기대와 실체 없는 설렘이 어린 시절에 가질 수 있는 좋은 것 중 하나다.
흐릿한 기대와 실체 없는 설렘이 어린 시절에 가질 수 있는 좋은 것 중 하나다.

설렘의 실체를 찾아서

고 2때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교회의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 갔다. 저녁 8시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최고조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고등부 아이들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교회로 모여들었다. 고등부 친구들이 준비한 연극을 보는 일이 행사의 첫 순서였다. 제목이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아는 애들이 무대 위에 있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연극 다음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이어질 것이었다. 고등부 친구들은 교회에서 쭉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지새우곤 새벽 송을 나갈 계획이었다. 나와 내 절친 ‘장’은 교회에서 아웃사이더였고, 우린 둘 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더 특별한 뭔가가 있길 바랐다. 그래서 우린, 연극을 보고나서 큰 고민 없이 밖으로 나왔다.

숨 쉴 때마다 검은 대기에 하얀 입김이 퍼졌다. 우리는 옷깃을 여미며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불과 한 시간 전쯤 집을 나서며 느꼈던 설렘과 희열은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그래도 우리는 특별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중심가 거리에 가까워지자, 거의 모든 가게에서 알전구 조명이 깜빡였다. 상점의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며 걸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길을 되돌아와 우리들의 동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뿜어내며 우리 곁을 스쳐갔지만, 주변 풍경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우리를 들뜨게 했던 것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프랜차이즈를 흉내 낸 것이 분명한, ‘맛데리아’라는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우리가 평소 자주 가던 가게였다. 그곳엔 우리뿐이었고 벽 한쪽을 차지한 크리스마스 전구엔 먼지가 잔뜩 껴있었다. 그 때문인지 전구의 반짝임은 힘이 없었다. 우린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친구 얼굴은 실망감이 가득했다. 친구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오기 직전까지 길게 돋아나 반짝였던 설렘은 이제 눈 녹 듯 사라졌다.

우리는 사람 없는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햄버거 가게를 나와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까지 오는 길에 들었던 거리의 캐럴은 예수 탄생의 기쁨보다 구세주의 예견된 죽음을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포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TV의 성탄 특선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그 날, 우리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던 걸까. 나이를 먹고 보니 흐릿한 설렘과 실체 없는 기대감, 바로 그것들이, 그 시절에 가질 수 있는 좋은 것 중 하나가 아니었나싶다. 어른이 되면 인과 관계가 불명확한 설렘은 갖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일 년 후, 고3이 된 나와 장은 성탄 전야에 연극 무대 위에 있었다. 그 해 우린 고등부 연극부에 들어갔다. 난 크리스마스 연극을 위한 희곡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를 희곡으로 각색했다. 대본을 쓴 사람이 극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연극부장 친구의 주장에 따라 내가 주연도 맡았다.

연극의 주인공은 젊은 시절 아내와 자식을 잃고 신을 원망하며, 무심하게 살아가다 회심하는 마틴이었다. 마틴은 회심한 후 새로운 기쁨으로 주변 사람들을 돕는다. 크리스마스에 그가 도와준 아이 엄마, 할아버지, 도둑질하는 아이, 이 모두가 실은 예수님이셨다는 내용이다. 난 무대에서 연극에 푹 빠져있었다. 드디어 연극이 끝났고,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무대 위에 함께 서 있던 친구들과 후배들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 감정은 일 년 전 거리에서 찾아 헤맸던 설렘의 실체에 가까운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난, 서로 손을 내밀고 잡을 수 있는 연대에 속해서 모험 하나를 이제 막 마친 참이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북돋우고, 일으키고, 마침내 그 끝을 보았던 것이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한 모험은, 언제까지고 기억에 남는다. 일 년 전 거리를 배회했던 나와 장은, 연극이 끝난 후에도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둡고 딱딱한 지하 예배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함께 성탄의 아침을 맞이했다.

추억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케빈은 열두 살>로 방영된, <The Wonder years> 시리즈에도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케빈은 이야기 초반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들뜨게 만들었던 모든 위시리스트를 하나씩 잃는다. 저녁 만찬을 즐기려던 가족들도 다툼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쓸쓸하게 밤거리를 걷고 있던 케빈에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족들을 만난 것이다. 엄마, 아빠, 누나, 형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케빈도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가족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고 나서 케빈은 나레이션으로 조용히 말한다. ‘추억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TV시리즈 '케빈은 열두 살'의 한 장면. 우리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설렘의 실체였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곤 한다.
TV시리즈 ‘케빈은 열두 살’의 한 장면. 우리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설렘의 실체였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곤 한다.

난 고2때 친구와 거리를 헤매던 일과, 고3때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에 오른 일을 회상하며 케빈이 한 말을 생각했다. 그때 그 거리에서 설렘의 실체를 찾진 못했지만, 내 곁엔 친구 장이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 위에도 함께 이야기를 형상화해낸 친구들이 있었다. 우린 설렘을 규명하려고, 혹은 설렘을 누리기 위해 길을 나서지만, 결국 찾게 되는 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추억은 설렘보다, 사람들을 더 또렷이 보여준다. 우린 기억 속 이야기들을 재생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쭉 지켜갈 것이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시길,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반짝이가 어땠는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추억에 대한 것만 남아있을 뿐이다. 처음엔 실망했었다. 그런 추억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법이란 걸 깨닫기 전까진. 나의 정체성이며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란 걸.

그리고 난 위니에게서 배웠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서로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빌어주는 것이다. 행운을 말이다.” -<케빈은 열두 살> 시즌2 ‘Christmas’ 중, 케빈의 나레이션.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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