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초등교사의 죽음에 부치는 글

교사들이 애도하고 분노하는 이유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 젊은 초등교사의 죽음에 전국의 교사들이 한마음으로 애도하고, 참담해하고, 분노하고 있다.

나는 애도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으며, 아이들의 삶에 작은 희망이나마 주고자 했던 새내기 교사의 오랜 꿈이 이렇게 일찍 무너졌기에.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참담하다.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 새로운 일이 아니어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직접 겪기도, 주변에서 보기도, 듣기도 한 일이어서. 누군가는 지금도 그런 일을 겪고 있기에, 그건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다. 나와 다른 교사들이 그 굴레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할 것 같아서 한숨을 쉰다.

나는 분노한다.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지만, 가르침과 강압과 학대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지워버린 구조적 모순에. 법을 무기 삼아 감정을 배설하고, 교사의 손발을 묶어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우격다짐이 가능하진 불공정한 현실에 주먹을 쥔다.

젊은 초등교사의 죽음을 되짚는 수많은 기사들,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점에, 내 글 하나 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어쩌면 지금은, 한 사람의 애도, 한 사람의 성찰,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야 할 때라 생각하고 글을 쓴다.

동료들의 이야기

몇 해 전, 함께 근무하다가 학교를 옮긴 P선생님께서 옮긴 학교에서 갑자기 명예퇴직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P선생님은 당시 50대 중반을 막 넘어가는 나이셨지만, 업무도 학급 경영도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하시는 분이셨다. 함께 근무하던 젊은 동료 선생님들은, 선생님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했고, 반 아이들도 엄마보다 훨씬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을 잘 따랐다. 처음에는, 이제 삶의 여유를 찾으시려고 명예퇴직을 결심하셨나보다 했다. 선생님의 명예퇴직을 앞두고 P선생님과 동료들 몇몇이 함께 식사를 했다. 명예퇴직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생님은 옮긴 학교에서 담임한 학급의 몇몇 아이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받으셨다고 했다. 처음엔 몇 명의 남학생들이 학급에서 욕을 하는 건 기본이고, 싸우기를 반복하여 지도에 나서셨다. 아이들은 타이르고 꾸짖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건 물론이고, 시간이 좀 지나자 선생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침 독서 시간에 선생님이 보란 듯이 일부러 문을 꽝꽝 닫고 열기를 반복했다. 선생님의 지도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방해하는 건 예사였고, 싸움을 말리는 선생님의 머리채를 움켜쥐기도 했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학생들의 악의적인 괴롭힘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선생님은, 이를 관리자에게 전했으나 관리자는 학부모의 눈치를 보며 일체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권 보호에 관한 최소한 장치나 절차를 안내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교실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무능한 교사로 보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병가를 내려고 하셨지만, 그것마저 당시 교감 선생님은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고, 겨우겨우 사정해서 3일의 병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P선생님은 더 이상 교단에서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셨다. 선생님은 온전한 무력감을 느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동안 나름 성공적인 학급 경영을 해왔다고 자부했던 선생님은,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과 무능인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지내오셨던 선생님이,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았고, 설령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동료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진=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사진=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선생님의 얘길 들으면서, 이 선생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동료 선생님이, 또 수많은 교권 침해의 사례를 들어온 모든 선생님들이 같은 위기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난 주변에서 그런 비슷한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런 일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아이나 학부모를 잘못 만나면 언제든 옷 벗게 될 수도 있다고, 교사는 이제 임시직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주고받곤 한다.

한 동료 선생님은 문제 행동을 보여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를 지도하려고 연구실로 따로 불렀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이를 꾸짖으면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기에 따로 상담을 시도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자리에 앉아보라고 하자, 아이는 선생님을 비웃듯 싫은데요,를 반복했다. 손으론 체인 같은 걸 돌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직이 몇 번을 앉아봐, 라고 하다가, 앉아! 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아이가 앉았고 선생님이 좋게 타이르고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날 그 아이의 학부모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왜 아이에게 큰 소리를 냈냐고 항의하더란다. 학부모는 아이의 잘못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동료 선생님의 교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현실이다.

교사가 열정과 사명감을 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최근 몇 년 동안, 난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숱하게 들어왔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이런 일들이 부각 되고 있지만, 이미 선생님들의 권위는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의 감정과 기분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가, 학부모가 이렇다고 일반화해선 안 된다. 선생님을 존중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와 학부모가 훨씬 많다. 그런 아이와 학부모 역시 질서와 신뢰가 붕괴된 교실의 또 다른 피해자다.

갑질하는 학부모나,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교권의 추락이 학생 인권을 강조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인권은 어느 한쪽의 것을 떼서, 다른 한쪽에 붙여야 지켜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비극적인 사건이 있기 전부터, 교사들은 현장을 봐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 교사가 일부 학부모의 위협이 두려워 교사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법적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달라고 숱하게 지적하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동안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절규에 귀를 막았다.

사진=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사진=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많은 선생님이 학부모로부터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할까 두려워서, 문제 행동을 반복하고 지도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지 못한다. 교권 침해 절차를 밟기라도 하면, 해당 학부모가 아동 학대로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 아동 학대 방지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보다, 아동 학대 방지의 본연의 목적이 아니라, 자기 아이의 책임을 면하거나, 선생님을 공격하기 위해 휘두르는 무기로 악용하는 것이 문제다. 학생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뭔가 피해를 봤다고, 선생님을 신고하는 게 진짜 아동을 보호하는 일일까. 그렇게 되면, 법의 취지와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온다. 아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동의 내면과 선생님의 사명감을 망가뜨리는 망치로 쓰이는 것이다.

애도와 분노, 그 이후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를 배우는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선 권리를 지키고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 공동체 대한 책임도 함께 배워야 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면 그 사회엔 이기심만 남게 될 것이다. 학교 사회에선 교사나 학생, 학부모 모두의 권리도 중요하고, 그것만큼 책임지는 자세도 중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아울러 책임지는 일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악성 민원, 갑질,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 방지를 위한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력 및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애도와 분노의 시간이 지나면, 붕괴된 교실과, 민원 부담에 무색무취의 언행에 익숙해지고 있는 교사와,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해결책 모색의 시간이 오길 희망한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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