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나 투쟁으로 얻을 수 없는 것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한 친구를 독점하고 싶은 초등 4학년 싸우지 않고도 마음을 얻는 방법은? 투쟁으로 사랑을, 관심을 얻을 순 없어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아이들의 우정은 날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아이들의 우정은 날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수민이는 씩씩대며 내게 오곤 했다. 화가 많이 났다. 아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감정을 토로했다. 주은이가 체육 시간 마치고 교실로 같이 오기로 해 놓고 혼자 갔어요! 마침 주은이가 다른 친구와 교실로 들어오자, 수민이는 주은이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선생인 나의 제지도 소용없었다. 그 흥분과 분노는 4학년의 수준을 감안하고도 가끔은 이해 불가였다. 수민이와 난, 자주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다.

“수민아 주은이가 교실로 혼자 와서 속상했구나.”
“네 쟤는 맨날 그래요. 나랑 오기로 해 놓고 도망갔어요.”
옆에서 주은이가 억울한 듯 말한다.
“선생님 저는 그런 약속 한 적 없어요. 수민이는 늘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이렇게 화내요.”
“수민아, 주은이하고 확실히 약속한 게 맞니?”
“네 분명 말했어요!”
“주은이가 혼자 간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혼자 갔어도 이렇게 교실에선 같이 만나잖아.”

수민이가 주은이를 두고 쏟아내는 분노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진행되는 양상은 비슷했다. 아이들은 자주 입씨름을 했고, 난 중재하려 애썼다. 그런 소동 뒤가 허탈해지는 이유는, 한 시간 수업이 지나면, 수민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은이 옆에서 깔깔대고 있는 것이었다.

우정과 집착 사이

학급 여학생들은 몇 명씩 친한 그룹들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은이가 주축이 된 그룹원은 4명이었다. 이 아이들 사이엔 갈등과 마찰이 잦았다. 그 원인은 대체로 주은이를 둘러싼 질투에서 비롯되곤 했다. 다들 서로 친하면서도 주은이와 더 친하려고 하는 게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수민이는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주은이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다른 아이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수민이의 애착은 때로 집착으로 보이기도 했다. 수민이는 주은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했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뿐 아니라 주은이한테도 독설을 퍼부었다.

가끔 심하게 싸웠을 때는 남아서 상담을 했다. 수민이는 단골손님이었다. 수민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수민이는 사랑을 ‘투쟁적’으로 했다. 수민이에게 소중한 사람을 얻는 과정은,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 마음을 결박해서라도 나만 바라보게 하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했다. 수민이와 상담을 할 때는, 싸우고 갈등한 사건보다 수민이의 마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싸움과 갈등은 증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수민이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 친구가 좋니? 혹시 수민이에게 자주 간섭하고, 나하고만 있자고 요구하고, 내 주변 다른 친구들과 자주 싸우는 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니?”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 사람 마음은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날 좋아하게 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면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선생님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네.”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친구들 그룹에서 서로 질투하는 일은 꽤 흔하게 일어난다.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친구들 그룹에서 서로 질투하는 일은 꽤 흔하게 일어난다.

내가 보기엔 진심 어린 대답이었다. 내 말이 4학년 아이에게 어려웠을 수는 있으나, 수민이에겐 별로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수민이는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수민이는 영특하고, 언변이 뛰어났다. 공부는 물론이고, 토론에서 당할 아이가 없었다. 손은 또 얼마나 야무진지,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다. 글도 잘 썼다. 1학기 때는 반장도 했다. 재능과 스펙만 봤을 때는, 최고의 인기를 누릴 것 같다.

하지만, 2학기 반장 선거에서 단 한 명의 추천도 받지 못해서 후보로도 올라가지 못했다. 그 뛰어난 재능이 빛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민함과 사회성 사이의 괴리가 무척 큰 아이였다. 그래서 수민이가 안타까웠다.

스스로 물건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

수민이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이었다. 지적으로 똑똑하다고 감정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자존감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필요했다. 자신을 사랑하면, 마음을 얻기 위해 처절하고 절박하게 구는 대신에 좀 여유로울 수 있다. 잔잔하게 바라보는 법도 알게 되고, 때론 고백하며 밀어붙이는 것보다, 기다렸다가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더 훌륭한 마음의 고백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는 일본의 철학자인 미키 기요시의 말을 인용하며, 질투심을 없애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질투심을 없애려면 흔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감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 것일까. 자신이 스스로 물건을 만들면 자신감이 생긴다. 질투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인간은 물건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기를 만들고 그리하여 개성이 생긴다. 개성적인 사람일수록 질투심이 없다.” -미키 기요시, <인생론 노트> 중에서

자신감을 가지려면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말 그대로 의미뿐 아니라, ‘환경을 형성한다는 것’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환경은 사회나 대인 관계도 포함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여, 어떤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을 때,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낸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해주거나,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을 전달하는 경험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형성해간다고 한다.

영화 '울림의 탄생'의 한 장면. 자기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경험은 성장에 중요하다.
영화 ‘울림의 탄생’의 한 장면. 자기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경험은 성장에 중요하다.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는 수민이는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정중하고 부드럽게 요구해서 환경이나 관계나 여타의 그 무엇을 바꿔본 경험의 절대치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물건이든, 관계든, 환경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쌓아서 마음이 더 단단해지면, 조금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친구들과 어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수민이가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수민이를 만난다면 난 그 아이를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랑을, 우정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니. 방법은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어쩌면 우리 인류가 해왔던 투쟁 중에 가장 가치 있는 투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수민이가 싸우지 않고도 마음을 얻고, 소리치는 대신 상대방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자라났길 바란다. 그래서 관계 맺는 일에서 고역이 아니라, 기쁨을 느끼며 지내기를.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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