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숨겨진 우정’이 있었다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아이들은 어떤 친구를 좋아할까...의외의 답은
“누군가를 소개하기”
초등학교 학기중에 아이들과 매일 글쓰기를 했다. 아침마다 칠판 한 구석에 그 날 주제를 쓴다. 그 날의 글쓰기 주제는 “누군가를 소개하기”였다. 소개하고 싶은 사람을 정해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도록 글로 소개해보라고 했다. 난 아이들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누굴 소개해도 상관없는데,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을 하라고 했다. 평소에 가까운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런 단서를 붙이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인에 대해 겉핥기식으로 묘사하거나, 심지어 만화 속 인물을 고르기도 한다. 역시나,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든다. “OOO에 대해 소개해도 될까요?” 자기가 자주 보는 게임 유튜버란다. 끙, 할 말은 많지만 간단하게 답한다. “좀 전에 선생님이 말했듯이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다 쓴 아이들은 나와서 공책을 내 자리에 놓고 간다. 그리고 다음 활동을 한다. 빨리 쓰는 아이는 한 번에 써서 내지만, 어떤 아이는 여러 번의 자투리 시간에 걸쳐서 써내기도 한다. 공책이 쌓이면 하나씩 빠르게 훑어보며 ‘참 잘 했어요’ 도장을 찍어준다. 솔직한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은 한쪽에 따로 놔뒀다가 전체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도 있다. 그 날도 아이들의 글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러다 ‘윤성’이의 글에 눈길이 머문다.
그 아이가 소개한 사람은, 우리 반의 ‘준형’이었다. 준형이는 조금 걱정하던 아이였다. 학기 초에 전학을 왔는데, 쉬는 시간이고 자투리 시간이고 틈날 때마다 책만 읽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마음이 약해서 다른 아이가 조금이라도 짓궂은 말을 하면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다.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심하고 겉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형이는 자기만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 했다. 어떤 활동도, 놀이도, 아이에겐 흥미를 주지 못하는 거 같았다. 할 일을 대충 끝내 놓고 오로지 책의 세계로 들어갈 궁리만 했다. 당연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그런 준형이를 윤성이가 소개한 것이다.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말수 적은 두 아이의 조합
윤성이도 말수가 별로 없었다. 우리 반에서 덩치가 가장 큰 아이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른 애들과 얘기 하는 걸 거의 본 적 없고, 책잡힐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아 지적 받는 일도 없었다. 특징이라고 할 만 한 것은, 잔반을 남기는 법이 없다는 것과 어린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정도였다. 소심하고 정해진 규율을 잘 지켰다. 딱 무던한 맏이였다. 그런 윤성이가 준형이에 대해 적어놓은 글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나는 박준형을 소개합니다. 박준형은 3학년에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밥 먹을 때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족이랑 박준형입니다.”
이 짤막한 소개 글은 내가 몇 개월 동안이나 해왔던 판단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다. 준형이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민을 나눌 친구가 있었다니! 더군다나 그 상대가 윤성이라니. 그간 교실에서 이 둘의 조합은 본 적이 없었다. 이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좀처럼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들이 밥 먹을 때, 옆에 앉아서 서로의 내밀한 얘길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내 땅속에선 봄 싹을 틔울 공정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마음의 손을 잡고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즐거운 반전이었다. 난 점심시간, 은밀히 서로를 통해서만 확인되는 이 조용한 우정이 그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지 못해도, 에너제틱하게 관계를 확장하지 못해도, 그들은 외롭거나 조급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걷는 속도와 가장 비슷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친구가 있으니까. 난 그 아이들이 오랫동안 조용한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길 바랐다. 내 판단이 틀려서 기뻤다.
아이들은 너그럽고 친철한 친구 좋아해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친구는 어떤 아이들일까. 어른들은 막연하게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뭔가를 잘하는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아이들은 친절한 친구를 좋아한다. 너그럽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공감 능력이 좋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간혹, 어떤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너무 물러 터져서, 착해 빠져서 걱정이라고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고, 제 몫을 얻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자기 장난감은 다른 아이에게 빼앗기지 말라고, 양보하지 말라고 교육하기도 했단다.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마음의 크기를 예민하게 느낀다. 너그러움의 용량이 큰 아이들 주위에 많은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 몫을 챙길 줄 모르는 아이의 몫을 주변의 아이들이 챙겨준다. 그 아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변의 친구가 먼저 선생님에게 달려온다.
여러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친구도 있지만, 앞서 말한 윤성이와 준형이처럼 자기와 맞는 그런 친구를 서로만 딱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그 아이들은 이내 단짝이 된다. 어른들은 자기 아이를 빛나게 만들어줄 요란한 만남을 바라겠지만, 정작 아이를 지키는 건, “내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이에요”와 같은 고백이다. 그건 부모가 비춰줄 수 없는 아이 마음의 사각지대를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된다. 공부도, 영어도, 악기도 잘 가르쳐야 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마음을 나누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친절하게 말하고, 귀담아 듣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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