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안전’은 신기루①...엇갈린 운명의 첨단 비행기
[최기영의 ‘공학+교육=사람’] DC-3, 역사상 가장 오래 운용되는 비행기 제트여객기 ‘코멧’, 공중폭발 등 참사 이어져
상용 여객 운송 시대를 연 DC-3
필자가 재직하는 인하대학교 교정에는 ‘우남호’라고 이름 붙은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기종은 미국의 더글라스 항공사에서 만든 DC-3이다. 짐작하듯이 이 비행기의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붙인 것이다. 194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항 회사인 대한국민항공사는 1950년 DC-3 두 기를 구입하였고, 이 두 대에 각각 당시 실력자인 장택상과 이기붕의 호를 따서 ‘창랑호’, ‘만송호’라 이름 붙였다. 이후, 1954년에 추가로 도입한 것이 이 우남호이다.
이 중 만송호는 1957년 사고로 소실되었고, 창랑호는 1958년 북한으로 피납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으로 대한국민항공사는 경영난에 처했고, 정부에서 인수한 후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로 전환하여 운영하다가 역시 적자가 계속되자 1969년에 한진그룹으로 넘긴 것이 지금의 대한항공이다. 우남호는 별탈없이 운용되었는데 1955년 우리나라 항공기로는 최초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까지 날아가기도 하였다. 1905년 인천항을 출발한 이민 1세대의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와이 교민을 태우고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우남호는 계속 일선에서 활약하다가 1971년 은퇴하여 인하대 교정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1954년에 설립된 인하대의 교명은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 DC-3는 더글라스 사에서 개발하여 1936년에 첫 상업 운항을 시작하였는데, 다른 기종을 압도하는 성능과 편안함으로 주목을 받았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리스까지 ‘불과 18시간 만에’, 중간에 ‘세 번만’ 기착하고 비행할 수 있는 빠른 속력과 긴 항속거리를 자랑했다. 이전에는 낮에는 비행기, 밤에는 기차를 번갈아 타며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니, 당시로는 얼마나 비약적인 발전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운영비까지 저렴하여 항공사들에게 확실히 수익을 보장해줄 수 있었기에 가장 인기 있는 기종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600여대가 생산되었고, 이후 군용으로 전환되어 1만대 이상 더 만들어졌다. 소련에서도 1939년부터 1950년 사이에 5,000대 가량 면허 생산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적대국 일본에서도 이 기종이 생산되었다. 전쟁 전 면허생산을 시작했는데, 미국과의 교전이 시작된 후에도 원래의 설계를 기본으로 개량형을 만들어 1945년까지 500대 가량 제작한 것이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전쟁 중에 다량으로 생산된 기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민간에 불하되었는데, 초도 비행 후 90년이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도 아직 현역으로 날아다니는 DC-3 비행기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제트항공기 시대의 개막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물량의 항공기가 개발 및 생산되었다.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미국은 32만대, 영국은 13만대 이상의 비행기를 생산하였다. 1944년 한 해 미국에서는 9만 6천대 이상 생산되기도 하였다. 미국을 보면, 전쟁 전 산업업종별 규모가 44위에 불과했던 항공 산업이 전쟁 후 1위로 뛰어 오를 정도였다. 전쟁이 끝나고 곧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대규모 생산은 필요 없었기에, 그 유휴 시설과 인력의 활용 방안이 문제였다. 따라서 다각도로 해결 방안들이 만들어지는데, 전쟁 기간 중에 새로 개발된 제트엔진을 장착한 여객기 개발도 그 중 하나이다. 제트 엔진을 이용한 항공기는 왕복기관으로 프로펠러를 돌려서 추진력을 얻는 항공기에 비해 높은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비행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기 저항은 항공기의 속도를 제한하는 요소인데, 이를 엔진의 힘으로 이기며 비행한다. 같은 속력에서는 밀도가 크면 저항이 크고, 밀도가 작으면 저항이 작다. 수영할 때와 달리기 할 때 몸이 느끼는 저항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밀도가 낮은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것이 빨리 비행하는 항공기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저항을 이기는데 필요한 힘을 제공하는 엔진이 문제이다. 왕복엔진의 성능 역시 밀도에 영향을 받는데, 높은 고도에서는 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하지만 새로 개발된 제트엔진은 기온이 낮으면 효율이 더 좋아지는 특성과 강력한 압축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트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는 고고도에서 큰 추력과 줄어든 공기저항으로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고고도에서의 낮은 밀도와 압력은 비행기 기체에는 유리해도, 그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반대다. 공기의 밀도와 압력은 고도가 올라가면 급격히 떨어진다. 대략 백두산 높이 정도인 3㎞에서는 좀 불편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 쉬는 데는 큰 문제는 없다. 히말라야 산맥의 8㎞ 산 정상에서 기압은 해면 고도의 35% 수준으로 떨어지고, 제트 여객기의 순항고도인 10㎞에서의 압력은 26%로, 숨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 고도에서 외기 온도는 영하 50도 이하이므로 이 고도에서 비행하는 비행기 기내의 환경 조건을 사람들이 적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고도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제트 여객기에는 DC-3 같은 이전 세대의 여객기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환경제어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처럼 기내의 압력을 주변보다 높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여압, 영어로는 pressurization라고 한다. 이런 고고도 운항 항공기는 외기 압력이 낮은 경우에도 기내의 공기가 새지 않도록 만들어진다. 대신 강력한 엔진을 통해 외부 공기를 빨아들인 다음 온도를 높이고 압축해서 실내로 불어 넣어주고, 승객의 호흡에 사용된 공기는 다시 빨아들여 방출시키는 강제 환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항공 규정에서는 고고도를 비행하는 상용항공기는 반드시 고도 2400m 이하 수준의 공기압이 유지되는 여압 기능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여압 시스템은 항공기의 성능이 급격히 향상되던 1930년 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기밀 처리하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이 시스템은 의외로 기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고도에서는 대기의 압력이 낮은데, 실내는 높은 압력이 유지되어 있다. 마치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 같은 상태인 것이다. 당연히 항공기의 구조물은 이 내외부의 압력 차이를 견디도록 만들어진다. 즉, 풍선에 어느 정도의 바람이 들어갈지를 알고, 그걸 견딜 만큼 풍선의 재질과 두께를 고르는 것이다. 동일하게 10㎞ 고도를 나는 비행기에서 객실 내 압력을 1㎞ 고도의 압력으로 유지하는 항공기와 2㎞ 고도의 압력으로 유지하는 항공기가 있다면, 승객은 앞의 항공기가 편하지만, 고고도에서 안팎의 압력차이가 그만큼 크기에, 항공기 개발자( 및 운용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후자가 나은 비행기이다.
최초의 상용 제트 여객기 de Havilland 코멧
만들자마자 성능이 워낙 좋아 불티나게 팔린 DC-3와 대조적으로, 혁신적인 설계로 주목을 받았지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기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유서 깊은 항공기 제작사 중 하나인 de Havilland사에서 만들어 1952년부터 상용운항에 들어간 최초의 제트 상용기 ‘코멧’(Comet)이다. 1949년 초도 비행 후, 1952년에 상업운항을 개시한 이 항공기는 혁신적인 성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코멧은 지금의 제트 여객기와 유사하게 고도 11km에서 시속 740㎞ 속도로 4000㎞ 거리를 날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형상도 현대의 제트 여객기와 별다르지 않다. 시원시원하게 뚫린 사각형 창이 눈길을 끈다.
연속된 참사와 미봉책
하지만 영국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받은 이 코멧 항공기의 운명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1953년 5월 2일, 상업 운항을 시작한지 1년째 되는 날, 싱가포르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BOAC(영국 국제항공) 783편은 중간 기착지 캘커타에서 이륙한 직후 통신이 두절되었고, 이후 불타면서 추락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기체의 잔해를 회수하여 분석해본 결과 열대 폭풍에 휘말린 항공기는 돌풍 때문에 구조적 부담이 가해졌고, 돌풍을 이기려는 가운데서 조종사의 과도한 조작이 날개와 조종면 등에 치명적 손상을 일으킨 걸로 추정 되었다. 이후 몇 가지 개선 사항들이 도출되어 적용되었다.
1954년 1월 8일에는 같은 노선의 781편이 기착지 로마에서 이륙하여 런던으로 향하던 중 공중 폭발하였고, 잔해는 바다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이 기종의 비행을 전면중지하고 사고 조사를 하였다. 사망자들을 부검한 결과 폐가 팽창하여 손상된 것이 보였는데, 외부 압력의 급격한 저하가 원인이었다. 즉 고공에서 기체가 파손되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압력 저하는 엔진의 손상이 1차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기체의 구조적 결함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충분한 강성으로 설계되었기에 최종 원인에서는 제외되었다. 완전한 사고조사에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정치적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긴급 조사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 60개 정도의 항목에 대한 개선 조치만 마치고 BOAC는 두 번째 사고 후 불과 10주 만에 운항을 재개하였다.
이어진 사고와 원점으로 돌아간 사고 조사
1954년 4월 8일, 런던에서 출발하여 로마, 카이로를 거쳐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사우스 아프리카 항공사의 SA201기가 로마에서 이륙한 후 순항고도 11km에 도달한 이후에 통신이 두절되어 버렸다. 이전과 동일한 양상이었다. 항공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이 확실했다. 영국 정부도 감항승인(항공기가 운항에 적절함을 인증)을 취소하고 전면 조사에 돌입했다. 첫 두 사고 이후에 이루어진 조치들은 주로 구조를 보강하는 것이었는데, 동일한 사고가 또 일어나자 원인을 다른 쪽에서 찾아야 했다. 확실한 원인을 찾지 않고 막연히 구조 보강만 해서 비행을 재개할 일은 아니었다.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금속 피로 파괴’
항공기는 비행 중에 겪을 수 있는 온갖 상황에서 가해질 수 있는 최대 하중보다 더 큰 힘에서 견디도록 설계된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힘이라도, 일정 크기 이상의 힘이 반복해서 가해지면 결국 재료의 파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피로 파괴’라는 개념이 있다. 항공기 날개는 비행 중에는 줄곧 공기에 의해 위로 들리는 힘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그 힘이 사라진다. 동체도 앞서 언급한 여압 시스템으로 인해 고도가 올라가면 풍선처럼 안에서 밖으로 미는 힘을 받고 이착륙 지점으로 돌아오면서 고도가 낮아지면 그 힘이 빠지는 과정이 매 비행마다 반복해서 일어난다. 즉, 한 번에 항공기를 파손시킬 정도의 크기는 아니지만 작지 않은 힘이 매 비행마다 구조에 부담을 주고는 사라지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항공기 구조에 피로가 쌓일 수 있다.
세 번째 사고 이후 이 피로 파괴도 하나의 가능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이 피로 파괴는 당시의 공학에서도 낯선 개념은 아니었고, 비행기 개발 중에 이미 지상에서 수 천 번의 압력을 넣었다 뺐다 하는 시험을 통해 피로 파괴가 일어나는 점이 설계 수명을 훨씬 넘는다는 것을 확인한 터였다. 한편, 바다 속에서 BOAC 781 항공기의 잔해를 찾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파손된 항공기를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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