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진짜 필요’는 무엇이었을까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키 작고 공격적이었던 그 아이 선생님에게 원한건 뭐였을까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한 장면. 우린 서로의 속을 모른 채, 그렇게 만난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한 장면. 우린 서로의 속을 모른 채, 그렇게 만난다.

새로운 만남은 늘 어느 정도의 설렘과 불안을 동반한다. 교사는 2월에 그 양가적인 감정 사이를 오가며 새 학기를 준비한다. 이제 익숙한 학생들, 동료들, 업무, 교실. 한 해 동안 쌓아왔던 많은 것들이 어김없이 리셋되고, 다시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교사 경력이 몇 년 되지 않았던, 어느 해의 2월은 불안 쪽으로 감정의 저울이 기울어 버렸었다. 새로 만날 어떤 아이 때문이었다.

새로 옮긴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과 인사하고 학반과 업무를 배정 받았었다. 함께 6학년을 맡게 된 선생님들은 밀봉된 봉투 하나씩을 받아들었다. 내가 받아든 봉투 안에 그 아이의 이름이 있었다. 전년도에 그 아이를 맡았던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날에 혹 당황하실까 미리 알려요. ‘성진’이가 기분이 나쁘면 교실을 나가버리기도 해요. 작년에 찾아다니느라 혼났어요. 분노 조절이 안 돼서 친구들과 다툼이 잦고, 전 말리다가 물리기도 했어요.”

알고 보니 성진이는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였다.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그 아이의 이름을 알 정도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성진이의 가정환경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되는 면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력이 일천했던 난, 아이에 대해 조금 알고 나서 겁을 먹었다. 수시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아이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 반 분위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 아이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적응을 잘 못하는 여러 유형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 나름의 대비였다. 여러 요령들을 마음에 새기고, 아이가 졸업할 때쯤엔 어떤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목표까지 설정한 채 새 학기를 맞이했다.

성진이의 첫 인상은 예상외였다. 아이는 상상으로 떠올렸던 것보다 작고 어려 보였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무난하게 오전이 지나갔다.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줄을 서 있을 때, 난 어느 책에서 본대로 따뜻하고 허용적인 눈빛을 하곤 성진이에게 비언어적인 환대를 해주려고 다가갔다. 눈을 맞추고, 해치지 않아요, 너도 그럴 거지? 하는 뜻을 담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롭게 돌변하더니, 내 손을 공격적으로 뿌리쳤다. 난 순간 얼어붙었다. 아이의 눈엔 적대감이 가득했다.

다음 날부터였다. 이전 담임 선생님이 경고한 일들이 하나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매일 아이들과 사소한 일로 갈등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성진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졌다. 심한 경우엔 친구를 할퀴고 때리기도 했다. 내가 성진이를 만나기 전에 책으로 공부했던 것들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난 성진이의 부정적인 행동을 멈출 수 있는 마법 같은 교사의 말 한 마디, 행동 규칙 같은 걸 찾으려고 애썼지만, 그런 건 없었다.

성진이가 내 손을 뿌리친 첫날 이후, 난 성진이와 아이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아이들을 관찰했다. 다른 아이들도 성진이는 원래 그래, 하며 낙인을 찍고 있었다. 갈등이 생기면 모두 성진이 잘못이라고 규정해버렸다. 성진이가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하진 못했지만, 어떤 경우엔 다른 아이가 유독 성진이에게 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그런 태도를 지적하면 그 아이는 억울해했다. 모든 야단은 성진이가 맞는 게 당연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때때로,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당신의 자녀가 성진이에게 가진 편견과 낙인찍기 때문에 다툼이 격화되기도 했다는 걸 설명할 경우도 있었다.

물과 시간 없이 크는 나무는 없다

성진이와 난 매일 지지고 볶았다. 말 몇 마디로 아이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던 영화 속 우아한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단쳤다가 타이르고, 구슬렸다가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성진이의 조금 다른 모습을 발견할 기회가 생겼다. 성진이는 방과후학교 바둑반에 다녔는데, 같이 다니는 아이들 말에 의하면 다른 곳과 달리 그 반에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였다. 쉬는 시간에 오목(五目)을 두던 아이들이 내게 도전하고 싶다고 갖고 왔길래 한 판 두고서 성진이를 불러 한 번 대결해보겠냐고 물었더니 순순히 응하는 거다.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던 녀석이 오목 두면서는 언뜻 미소를 내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날 수업을 마치고서 성진이를 불렀다.

“성진아, <블로커스>라는 게임을 새로 사놨는데 혹시 해봤어?”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성진이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한 번 해볼래?”

우린 그렇게 <블로커스> 대결을 시작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아이들이 빠져나가면, 녀석은 교실로 돌아와서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32승 29패예요.”

“아직 선생님이 앞서고 있는 거 맞지?”

“걱정 마세요. 곧 따라잡을 거예요.”

녀석과 방과 후에 게임 한두 판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성진이는 이기면 씩 웃었고 지게 되면 내일은 꼭 이길 거라 다짐하며 교실을 나섰다.

성진이와 대결을 벌였던 보드 게임 '블로커스'
성진이와 대결을 벌였던 보드 게임 ‘블로커스’

일상에서 지지고 볶는 우리 생활은 계속 되었다. 녀석의 분노가 멈춘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의 다툼이 그친 것도 아니었다. 좀 나아진 점은, 이제 교실을 뛰쳐나가진 않았고, 분노의 발산 강도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저 우리는 수업이 끝난 교실에 앉아서 전적을 늘려갔다. 난 누군가를 교육하는데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진이는 야단을 맞은 날, 어떨 때는 나타나지 않았고 어떨 때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전적을 말하며 나타났다. 아이가 다가오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블로커스>가 놓인 선반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면 아이는 그걸 들고 와서 내 책상 옆에 놓인 학생용 책상에 앉았다.

난 성진이의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졸업할 즈음에 성진이는 전성기가 지난 연예인처럼 유명세가 많이 줄어있었다. 그때부터 난, 성진이처럼 ‘유명한’ 아이를 맡게 되면, 내가 대단한 교육을 통해 아이를 싹 바꿔놓겠다는 기대부터 내려놓는다. 내가 바라는 아이의 상(像)이나 잣대는 던져버린다. 그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통의 관심사 하나를 찾아낼까만 생각한다. 그게 목적이며 수단이 된다. 때때로 아이의 성장은, 거창한 가르침이나 목표 설정보다 당장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이건 학교생활뿐 아니라, 아이의 생활 전반에 해당하는 얘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의 필요’를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필요인 경우가 많다. 진짜 필요는, 학교에 와서 즐거울 이유 하나를 찾는 것, 가정을 안전하고 포근한 곳이라고 느낄 이유를 찾는 것,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는 일 같은 것들이다. 물도 주지 않고 시간도 들이지 않으면서, 너는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 때문에 슬픈 아이들이 생겨난다.

그 후에 졸업한 아이들이 가끔 찾아올 때마다 성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좀 싸우긴 해도 그럭저럭 지낸다고 하는 걸 보면, 중학교에서 유명세를 떨치진 않은 것 같다. 우리 전적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나도, 성진이도, 이기는 게 중요하진 않았다. 지금쯤 성진이는 성인이 되었겠다. 그저 바랄 뿐이다. 성진이가 이기기도, 지기도 하면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대결할 상대를 찾아내며 외롭지 않게 자랐길.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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