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온호가 향한 남극해...시간마저 떠다니는 듯
[이민경의 남극 탐험기] 한국의 남극탐사선 아라온호 선상생활
드디어 마스크를 벗었다
2주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드디어 남극탐사쇄빙선 아라온호에 오른 건 새해 사흘째인 지난 1월3일. 탑승자 모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등 방역절차를 거쳐 승선할 수 있었다. 2주간 공용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생활했지만 유증상자가 발생하지 않아 18일째 되던 날 공용공간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2020년 초부터 공용공간에서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 왔으므로, 비록 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이긴 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생소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난 2년 내내 거의 매일 마스크를 착용했던 것이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것 같다. 우리 모두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어 일상 생활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될때도 생소하지 않을까.
필자는 아라온호를 이용한 두 달 가량의 남극 출장을 다섯 번째 경험했는데, 대개 배를 타고 한 달쯤이 지나면 사람들이 조금씩 답답해하기 시작하고, 육지에 내리고 싶어하고, 집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번에는 자가격리 때문에 출장 기간이 늘어 이 현상은 조금 빨리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미크론 변이로 1일 확진자가 5만명을 넘었다는 우울한 소식과 함께 배 안에서라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지금 상황을 즐기라는 연락이 와, 다소 울적해하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인터넷 없는 세상에 들어가다
이번에 아라온호에 승선한 후에 가장 기뻤던 것은 막 조리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세탁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2주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포장이 가능한 서구 음식을 주로 먹었는데 (몇 번은 국적이 불명확한 중국-동남아시아 풍의 볶음밥과 면 요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라온호에 와서 먹은 첫 식사는 ‘두루치기’ 였다. 오랜만에 매운 음식이 들어가니 위장이 조금 놀라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입은 참 즐거웠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랄까? 자가격리 기간에는 손빨래를 해야 해서 속옷이나 양말 외의 두꺼운 옷을 빨고 탈수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라온호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구비되어 있어 밀린 빨래도 느끈히 해결할 수 있었다.
대신에 우리는 인터넷을 잃었다. 아라온호에서는 두 개의 위성 안테나를 사용하여 통신을 하는데, 두 개의 위성 안테나가 다 작동하는 경우에도 배에 많은 인원이 타고 있는 경우 인터넷 접속이 원활치 않다. 보통 1인당 2개 이상의 통신 기기, 즉 휴대폰, 노트북 등을 갖고 있어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로 간신히 이메일 확인이나 인터넷 검색을 하지만,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는 이미지나 이모티콘 전송은 포기하는 대신 텍스트 위주로 사용해야 한다. 필자가 아라온호에 탑승했을 때는 두 개의 안테나 중 하나가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에 평소보다도 더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몇몇 사람은 리틀턴 항에 정박해 있는 동안 해외로밍을 신청해 사용하거나 구입해온 뉴질랜드 유심 카드를 사용해서 힘들게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했다.
외부와 연락할 수 있도록 승선자 모두는 배에서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를 하나씩 받았다. 항구에 정박해있을 때보다 항해 중에는, 특히 남극권으로 분류하는 위도 60도 (남위 60도)보다 더 남극에 가까워지면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위성의 개수가 더 감소한다. 앞으로 인터넷 접속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실제로 1월 12일 오후 4시경 뉴질랜드 리틀턴 항에서 남극 아문젠 해를 향해 출발한 후 18일쯤 인터넷이 완전히 끊겼다. 이 시기에는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텍스트 위주의 저용량 이메일을 통해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메일의 송수신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두세 차례 한꺼번에 모아서 하게 된다.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할 경우 선교(배의 운항 및 운영을 총괄하는 곳. 선장님과 항해사 분들이 상주한다)에서 바로 메일을 보내거나 이리듐 전화를 이용하여 통화가 가능하기는 하다. 비용이 비싸 엄두를 못내지만.
이렇게 강제로 ‘인터넷 디톡스’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좀 답답했지만 메일이나 SNS, 메신저 등에 접속할 일이 없어지며 남는 시간이 많아졌다. 휴대폰에 깔려 있는 앱의 상당수는 기능정지이고, 휴대폰은 알람 시계와 카메라의 기능만 주로 수행할 뿐이다. 장보고 기지가 있는 로스 해에서 탐사할 때는 기지 근처에 가면 인터넷이 잘 되지만, 처음 와본 아문젠 해에서는 인터넷이 끊기는 기간이 훨씬 길었다. 뭔가를 검색할 수가 없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배 안에서의 삶에 큰 지장은 없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고 있었으니.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과 소통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이 만든 많은 도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 것들 중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때로는 우리가 그 도구에 과하게 집착하여 스스로를 구속하기도 하므로.

시간을 우리 맘대로 변경한다
남극에서는 여름에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북극에서도 그렇다) 해가 뜨고 지기는 하지만 12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 초까지는 거의 하루 종일 밝아서, 온종일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라온호가 연구 지역에 도착하면, 연구원들은 서로 잘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해가면서 24시간 내내 탐사 관련 작업을 하게 된다. 다만 헬리콥터를 이용한 작업의 경우, 운행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대략 정해져 있다. 배의 운항을 담당하는 선장님과 항해사분들의 경우 3교대로 일을 하는 데 비해, 헬기의 경우 1대당 조종사가 한 명이니 24시간 내내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헬기를 띄울 때는 하늘이 맑아 먼 곳까지 시야가 확보되어야 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야 하기 때문에 헬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은 많아야 일주일에 이틀 정도이다. 그래서 헬기를 띄울 수 있는 조건이 되면 그 날은 꼭 헬기를 사용하는 작업을 한다.
이번 남극 탐사에서는 육상에 캠프를 운영할 계획이고, 헬기를 이용한 육상 탐사 계획도 있어서 헬기 운영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대를 변경했다. 배를 사용한 작업의 경우 시간에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원래 사용하던 뉴질랜드 시간(UTC 세계표준시-3)보다 4시간을 더 앞당겨 미국 중부 산간시(UTC 세계표준시-7, 콜로라도 볼더에서 이 시간대를 사용한다)의 시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보다는 16시간 느린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배의 시간이 자정이라면, 한국의 경우 같은 날 오후 4시인 것이다.
4시간을 한 번에 앞당기기는 무리가 있으므로 뉴질랜드에서 아문젠 해 외곽으로 오는 열흘 남짓의 기간 동안 며칠에 걸쳐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을 앞당겼다. 배의 모든 방(선실, 실험실, 식당 등)에는 벽시계가 있는데, 선교에서 시간을 조정하면 배 안의 모든 시계가 동시에 자동으로 시간이 바뀐다. 대개 오후 9시에 시간을 변경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시간에 벽시계를 보고 있으면 9에 있던 작은 바늘이 바로 10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나중에 뉴질랜드로 돌아갈 때는 같은 절차를 거쳐 4시간을 다시 앞으로 당겨서 뉴질랜드 시간에 맞춘다.
1월 15일 남위 60도 선을 통과해 남동쪽으로 계속 향하던 중, 17일 오전 8시 37분 선실 창문으로 유빙(Drifting Iceberg)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반가운 나머지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해빙은 보이지 않고 유빙뿐이지만 남극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유빙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제 곧 뱃멀미가 끝난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더욱 반가웠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연구 지역에 도착한다.(지금 이민경 연구원은 남극에서의 미션을 거의 다 마친 아라온호를 타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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