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원래...” 항상 그런 아이는 없다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어떨 땐 이렇고, 어떨 땐 그런 우리 아이들”

영화 '교실 안의 야크'의 한 장면.
영화 '교실 안의 야크'의 한 장면.

예전에, 학기 중 어떤 여학생 아버지로부터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학부모 상담 기간엔 아이 어머니와 상담을 했었다. 학기 중간에 따로 상담 요청한다는 건, 주제와 목적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얘기.

아이의 아버진 할 말을 잔뜩 머금었지만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는 듯, 아이의 3학년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어왔다.

“지민이는 조용한 성격에 튀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좋아해서 단짝이 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주어진 학습 과제나 맡은 일도 책임감 있게 해냅니다. 별 문제 없이 생활하고 지적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에 대해 알려드렸더니, 아이의 아버진 “그래요?” 하며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이제 지민이의 아버지가 머금고 있는 말들을 뱉어낼 차례였다.

“집에서와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르네요. 지민이가 고집도 세고 잘못한 부분을 야단치면 인정을 안 하고 반성도 안 해서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지민이는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야단치면 아버지에게 삐치거나 화를 내며 반항을 한다고. 지민이 아버진 이제 10살인 딸과 거듭되는 갈등으로 관계가 나빠지고 있었다.

어떤 문제에나 이유는 있다. 난 지민 아버지의 얘길 들으면서 지민이가 왜 학교에서 그렇게 지적 받을 일이 없게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요. 지민이 같은 경우는 자존심이 센 아이예요. 그런 아이들은 지적 받고 야단맞는 일 자체를 무척 부끄러워해요. 그래서 학교에선 그런 상황을 가급적 안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자기 통제를 하는 거죠. 근데 집에선 편하게 행동하다보니 실수도 하고 지적받을 행동도 하게 되는데, 그걸 딱 짚어 강하게 야단치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 전에 그 상황 자체가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할 거예요. 그래서 삐딱하게 반응하는 거죠.”

내가 지민이에 대해서 이런 판단을 한 이유는, 지민이 같은 아이들을 만나봤고, 나도 지민 아버지와 똑같은 실수와 고민을 해봤기 때문이다.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는 의욕만 가지고 아이 앞에 섰다가 실패했던 날들을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왜 그런 기억들은 잘 잊히지도 않는지. 지민 아버지에게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지민이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잘못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의욕을 잠시 내려놓고, 부드럽게 그 부분을 알려만 주세요. 그러면 지민이는 스스로 자기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할 거예요. 전하는 내용보다 방법이 더 중요해요. 지민이 같은 아이에겐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민이 아버진 강하게 지적하는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것 같으면 더 화를 내며 압박을 가하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내 말대로 해보겠노라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항상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

지민이의 예는, 동일한 심리가 학교와 집에서 다른 행동으로 드러났던 경우다. 그런 게 아니라도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 교실에서 한 십분만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

맨날 돌아다니고 산만한 수진이는, 친구와 마음이 맞아 컬러링을 할 땐 가만히 앉아서 활동한다. 움직이지 않고 교류도 없고 고립된 것처럼 보이던 민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하게 되자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1시간을 웃고 떠든다. 늘 에너제틱하고 운동 신경이 뛰어난 현수는, 가만히 있으면 답답해할 거 같았지만 스킬 자수에 재미를 느끼고는 한참을 앉아서 자수를 한다. 툭하면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다른 아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던 도철이는 디폼블럭으로 팽이를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는 다른 아이와 마찰 없이 논다. 매사에 나무늘보처럼 행동이 느리고 늘 학습 과제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석준이는, 축구만 하면 작은 몸집으로 메시처럼 뛰어다닌다. 그렇게 재빠를 수 없다. 아이마다 성향과 특질이 있지만 그게 모든 경우에, 모든 환경에서 똑같이 드러나는 게 아니다.

출처= 픽사베이. 아이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늘 기다린다.
출처= 픽사베이. 아이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늘 기다린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학교가 아닌 집이나 일상에선 무리 없이 지내는데, 꼭 학교에서 친구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적응을 못하는 경우. 그런 경우 부모님은 학교생활에 대해 들으면 놀라거나 믿지 않으려한다. 이런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예민하고 많은 감각 촉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딪히는 사람이 적은 집이나 일상의 장소에선 비활성 되던 촉수가, 많은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마주하면서 활성화 되는 것이다. 활성화된 많은 촉수마다 자극이 들어올 것이고 그 때문에 자기를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이를 돕기 위해선 아이의 상황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알아가야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아이가 어떤 나쁜 일에 휘말렸을 때 주변의 어른들은, ‘이 아이는 이런 아이야’라는 행동 데이터들을 근거해서 아이의 의도와 상황을 판단하곤 한다. 그건 합리적인 생각이다. 축적된 데이터에 의한 판단은 대개 사실에 근접한다.

하지만 우린 우리가 명백하게 보지 않은 것,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 입장을 유보하는 자세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늘 우리의 예측대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떨 땐 이렇고, 어떨 땐 그런 것이 인간이고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 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세 중 하나다.

3월 말이 되면 일선 학교에선 학부모 상담 기간을 운영한다. 상담은,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를 가운데 두고 각자가 가진 퍼즐을 맞춰가며 아이를 더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상담만이 아니라 교사는 1년 내내, 학부모는 양육하는 내내, 퍼즐 조각을 최대한 많이 끌어 모아 아이를 더 제대로 알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이들은, 고정된 데이터로 머물 생각이 없고, 자신을 더 잘 알아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하는 존재들이니까.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