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지금 가자 지구 폐허 더미에 앉아 아이들에게 피리를 불어주는 남자처럼 이야기는 마음속 뚫린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희망’을 붙잡아준다

영화 '책도둑'의 한 장면.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일상의 모든 흐름은 끊긴다.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로 모여들고, 폭탄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어둠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시간을 보낸다.
영화 '책도둑'의 한 장면.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일상의 모든 흐름은 끊긴다.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로 모여들고, 폭탄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어둠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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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일은 아빠인 내 몫이었다. 아기 목욕은 물리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아기 때는 아이들을 내 다리 위에 눕히고서 머리를 한 손으로 받쳐 들고 한 손으로 머리를 감기곤 했다. 그러고 나면 팔이 욱신거렸다.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고, 샤워기 아래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릴 줄 알게 되면서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쳐 드는 수고는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른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야기’다.

아이들은 이제 샤워기 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조른다. 아빠, 어릴 적 얘기해줘. 어? 이야기? 하고 내가 머뭇거리면 아이들은 다그친다. 자, 시작! 순조로운 샤워 시간을 위해 난 뭐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샤워기에서 온수가 나오면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나 욕실을 채우기 시작한다. 난 안내자가 되어 뿌연 안개를 헤치며 아이를 이야기의 세계로 이끈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

영화 '책도둑'의 한 장면.
영화 ‘책도둑’의 한 장면.

우린 이야기를 통해 ‘인생 모의 비행’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적에 늘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이야기는 피부처럼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문학 교수 조너선 갓셜의 말을 빌리자면, 우린 모두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 깊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심리적 강박이다. 아이들에게는 빵과 사랑만큼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네버랜드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폭력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 나이 어린 아이들을 한방에 데려다 놓으면 저절로 예술 행위가 벌어진다. 능숙한 즉흥 공연자처럼 극적인 시나리오를 짜고 연기하며 때로는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와 현실을 넘나들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기도 한다.”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 중에서

아이에게 연필을 주면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려주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춤을 추듯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본능적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이야기는 인류에게 여러 유익을 준다. 이야기와의 연결이 끊어질 수 없는 이유다.

“심리학자이자 소설가 키스 오틀리는 이야기를 인간 사회생활의 모의 비행 장치라고 부른다. 모의 비행 장치가 조종사를 안전하게 훈련하듯 이야기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안전하게 훈련한다. (……) 픽션은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라는 것이다.”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 중에서

조너선 갓셜의 말에 따르면, 우린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통해 사회생활을 미리 준비해왔다. 일상에서 마주칠 수많은 문제와 말썽거리들을 이야기를 통해 미리 접하며 대응 능력을 키워온 것이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말썽’이나 ‘갈등’을 내포하는 것과 관련된다. 물론 말썽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흥미로운 이야기 속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게 달갑지 않은 말썽들이 담겨 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원치 않는 모험을 떠난다. 우리 머릿속 뉴런들은 등장인물이 겪는 일을 마치 우리가 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반응이 반복되면 뉴런 회로가 정교해지고 강화되어 결국 우리 삶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일에 능숙해질 거라고 한다.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한 장면. 우리는 이야기라는 ‘모의 비행장치’를 통해 사회생활을 훈련한다.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한 장면. 우리는 이야기라는 ‘모의 비행장치’를 통해 사회생활을 훈련한다.

이야기는 인간의 연약함을 메우는 모래 알갱이

마커스 주삭의 소설 <책도둑>엔 이야기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책도둑>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부의 독일이다. 주인공 소녀 리젤의 친부모는 사회주의자다. 그들은 핍박받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양부모에게 입양시키기로 한다. 독일 시골 마을에 사는 양부모에게 가는 중에 리젤의 어린 동생이 죽게 되고, 리젤은 큰 슬픔을 안은 채 양부모의 집에 오게 된다. 리젤은, 마음 따뜻한 양부모와 다정한 이웃들 사이에서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다.

독일군이 밀리는 상황에서 마을이 공습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사람들은 공습을 피해 대피소에 모여든다. 그곳엔 공포, 불안, 긴장, 무질서, 혼돈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고,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놀란 아이들은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무질서 속에서, 리젤은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리젤의 목소리에 실린 이야기가 혼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차분함을 되찾는다.

“3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리젤을 제외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리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겁에 질린 눈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리젤은 단어들을 잡아당겼다가 숨으로 뱉어냈다. 목소리 하나가 그녀 안에서 음들을 연주했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이것이 네 아코디언이야.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사람들을 두 토막으로 베어버렸다. 리젤은 계속 읽어나갔다. 리젤은 적어도 이십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어린아이들은 리젤의 목소리에 진정되었다.” -마커스 주삭, <책도둑>중에서.

사람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다. 큰 돌이 담긴 화분에 물을 부으면 금세 빠져나가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쉽게 용기를, 평화를,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숭숭 구멍이 뚫린 우리의 마음 사이 사이를, 이야기는 모래 알갱이처럼 채워준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공포를 이겨내기도 하고, 불안을 잠재우기도 한다. 용기와 희망이 우리 안에 머무를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무너지고 흘러내리는 우리를 붙잡아 줬던가.

지금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선 <책도둑>의 리젤이 겪었던 일과 비슷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습경보가 들리면, 사람들은 공포와 혼돈에 올라탄다. 아이, 여자 누구든 예외가 없다. 폭탄엔 눈이 없으니까. 폭탄 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마커스 주삭의 표현대로, ‘텅 빈 거리가 한 입 물어뜯은 것처럼 떨어져’나간다. 공습을 피해 어디론가로 숨어든 사람들은, 아이들은, 어떻게 그 지옥을 견디고 있을까. 가자 지구의 폐허 더미에 앉아 아이들을 앞에 두고 피리를 불어주는 남자를 뉴스 기사에서 보았다. 누군가는 리젤처럼 이야기로 마음속에 뚫린 구멍 사이로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희망을 겨우 붙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자신을 지킨다는 구실로 다른 이를 파괴하고, 불완전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슬픈 말로 들리겠지만, 인간은 앞으로도 비슷한 일을 반복할 것이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사라지는 걸 늦출 무언가가 계속 필요할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우리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 라는 물음이지만,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이 되어왔다. 난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건, 이야기를 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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