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평화...그 이율배반적 운명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평화 위해서라면 군비 경쟁도, 군비 감축도 모두 할 수 있어야”

우크라이나의 항전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모습이 맘을 아프게 한다. 전쟁이 종결되는 상황은,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는 서방의 경제제재가 먹혀 러시아가 침략 이전의 국경선으로 물러난다거나, 푸틴이 더 밀어붙여 러시아 위성국가를 수립하는 국면이 될 것이다. 서양은 한번 설정된 전쟁 목표를 좀처럼 변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측이 타협점을 찾기 어렵고 일방적인 승리도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장기간의 전쟁에 빠지고 세계는 신냉전 시대로 빠질 듯해 우려가 크다.
신냉전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자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일 수밖에 없다. 구글 지도를 펴보면 우크라이나에는 미군이 최근에 철군한 아프가니스탄과 다르게 험한 산이 없다. 은둔하여 싸울 수 있는 산악이 없으니 결국 도시의 건물이 진지가 될 수밖에 없고 러시아의 폭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전쟁 목표대로 위성 정권이 수립될 가능성이 좀더 높다. 그러나 지금의 반군이 정부군이 된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정부군은 위상이 바뀌어 반군이 될 것이며 양측 간의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과학
전쟁이 발발하면 일상은 더 이상 없다. 우크라이나의 동원령에서 보듯이 전시의 정책은 평상시의 정책과 다르다.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먼저 방아쇠를 당긴다. 비상대책은 일상을 희생하여 수립된다. 일상의 평화를 누리려면 고통을 감내하며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내키지 않더라도 첨단 무기를 지녀야 한다. 우크라이나도 구소련 시절에 핵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얻었고 미국, 러시아, 영국의 불침범 조건을 믿고 핵을 해체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설치된 러시아 무기였고 관리의 부담이 따르므로 운영 의사가 없다면 해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방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에도 달려 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모르니 원자력 관련 우크라이나 논문을 통해 국방과학 수준을 가늠하여 보았다. 러시아는 역사적 원전 사고로 알려진 체르노빌을 초기 전쟁 목표물로 삼았고 드레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자포리아 원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미사일에 대비하여 원전의 주요 기기는 격납용기 안에 설치되므로 급격한 방사능 노출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원전을 군사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병원을 공격하는 짓 만큼이나 파렴치하다.
필자는 FPGA 기술을 적용하는 우크라이나 원전 과학자들을 보았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FPGA는 첨단 반도체에서도 사용되지만 단종된 아날로그 전자제품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아날로그 제품이 단종되면 디지털 제품으로 옮겨가야 하지만 기기 신뢰성을 중시하는 원전에서는 그 중간단계로 FPGA 기술을 적용하기도 한다. 이 정도의 적용 역량이면 우크라이나의 과학기술이 낙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필자가 설령 우크라이나 방산 과학자를 알더라도 국방력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방 과학자의 무거운 입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연구단지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고 탄약을 만드는 공장도 있다. 동문 모임이나 교회 모임을 통해 수시로 친구들을 만나지만 이 친구들은 무기 개발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는다. 모든 방산업체 과학자들이 비밀 유지라는 직업윤리를 실천한다고 짐작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라고 다를 이유가 없으므로 우리가 아는 국내외의 무기 지식은 TV를 통해 얻는 정보에 한정된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에 익숙한 과학기술자들은 TV의 영상만으로도 한 국가의 방산기술 수준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세계 첨단 무기경쟁
필자는 노르웨이에 1년간 파견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독립기념일에 무기 열병식 대신 노르웨이 국기를 손에 들고 자녀들과 시내 거리를 행진했다. 노르웨이 친구는 북한과 한국의 무기 열병식을 우려하며 ‘국기 행진’을 자랑했다. 국기만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노르만 족도 9세기경에는 바이킹으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노르웨이의 평화는 국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북해의 석유에서 나올지도, 세계 평화는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행위보다는 첨단 무기 개발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첨단 무기는 통신기술, GPS 기술, 항공기술, 화약기술을 적용하여 날로 날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은 권력과 영토를 지키려 대부분의 자산을 무기 개발에 쏟고 있으므로 북한의 사례를 보면 세계의 첨단무기 동향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주력했고 최근에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45년 개발된 핵폭탄은 히로시마를 때렸고 덕분에 한국도 해방을 맞았다. 핵분열은 무기로서의 위험과 전기의 이익을 준다. 필자는 고등학교에서 핵이 폭발하는 임계질량을 배웠고 대학교 2학년 응용 수학에서 핵분열 모델을 배웠다. 핵물질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강력한 원심분리기만 있으면 핵폭탄 개발은 난해한 기술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일본이나 한국이 굳이 핵무기를 지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리할 역량이 없는 핵보유는 어린아이 손에 들린 칼처럼 위험하다. 때가 되면 책임 있는 한국이 핵을 보유하라고 세계가 요청할 수도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도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험하는 무기다. 우크라이나를 침입하기 2년 전부터 푸틴은 서방보다도 먼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미국도 극초음속 분야에서는 소련이나 중국보다 뒤져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군사 개입을 꺼리는 이유도 소련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실린 핵탄두에 있을 듯하다. 필자가 찾아보니 미국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했고 한국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날아간다. 탄도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순항 극초음속 미사일 등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일단 속도가 빠르고 목표물 근처에서 감지되므로 방어가 쉽지 않다.
100명이 도둑 1명 막기 어렵다는 속담처럼 공격 기술보다는 방어기술이 더 어렵다. 이는 도발국에게 유리하다는 착각을 주지만 피해국도 바로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므로 한쪽이 유리할 수가 없다. 한순간에 모든 목표물을 타격할 수 없으니 서로가 공격할 시간은 남아 있다. 따라서 서로가 조심하며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자제한다. 이 신중함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나고 있다. 쌍방 공멸을 알고 있으면 처음 발사 명령을 내리는 통수권자는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서로의 피해를 아는 시민들이 첨단 무기를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둘 것이다.
미사일을 막는 방어체계 개발도 국방과학의 한 축이다. 탄도 미사일의 경우 정확한 궤도가 계산되므로 방어가 가능하지만 극초음속 미사일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총으로 전투기를 잡는 방법과 재래식 미사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잡는 방법이 비슷하다. 전투기 전장의 5배 앞에 탄착점이 형성되도록 사격하듯이, 방어 미사일을 극초음속 미사일 10배 앞의 하늘로 쏘아야 할지 모른다. 맞추기는커녕 방어 미사일만 소진시킬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레이저 무기가 차세대 방어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레이저는 음속보다 엄청나게 빠른 빛의 속도로 강한 에너지를 한 지점에 집중할 수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을 감지하는 즉시 자동으로 발사할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몸속의 암세포가 아니라 하늘의 미사일을 파괴하려면 엄청난 레이저 에너지를 순간 발생시켜야 하므로 여전히 기술적으로 어렵다.
군비경쟁과 평화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반핵 평화주의자로 돌아섰다. 그는 독일이 먼저 원자탄을 개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개발을 제안했고 독일의 개발 기미가 없자 개발 중단을 권유하기도 했다. 영국 평화주의자 러셀은 1차 세계대전을 반대했지만 2차 세계대전은 찬성했다. 아인슈타인과 러셀뿐만 아니라 어느 인간도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있다.
평화도 이율배반적이다. 평화는 평화를 깨뜨리는 자를 처단할 때 얻어진다. 평화를 위한 전쟁은 성전이며, 푸틴도 나치 세력을 소탕하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주장한다. 평화의 종교 가톨릭도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평화의 예언자 무함마드도 자신을 핍박한 메카를 향해 진격했다. 평화는 전쟁을 속성으로 지니고 있다. 평화를 선도할 권력이 생기는 순간 타인에 대한 척결과 전쟁이 시작된다. 무소불위의 인간을 돕는 것도 첨단 무기이고 막는 것도 첨단 무기이다. 첨단 무기도 이율배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첨단 무기는 군비경쟁의 결과물이므로 군비경쟁을 멈추자는 주장도 가능하다. 반면에 인류사를 보면 전쟁은 첨단 무기가 없어도 일어났으니 군비경쟁을 허용하자는 주장도 가능하다. 군비경쟁은 전쟁과 다르게 피를 흘리지 않으니 건설적인 행위로 볼 수도 있다. 청소년에게 성적 욕망을 스포츠 활동으로 분출하라고 가르치듯이 전쟁의 욕망 대신 군비경쟁으로 분출하라고 권유할 수 있다. 잉여 경제력으로 인한 인간의 경쟁심리를 군비경쟁으로 돌릴 수가 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전쟁보다는 군비경쟁이 온건한 방법이지만 최선의 방법일 수는 없다. 군비경쟁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을 찾아 군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군축의 조건은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로운 사상, 그리고 보편적인 삶이다.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면 상호 간 분노가 줄어든다. 국가 간 신뢰가 회복되면 군비감축이 저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가 있는 한 섣부른 군축은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러시아 전차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계백장군이 가족을 죽이고 전장에 나갔듯이 그들도 아내와 자녀를 나라 밖으로 대피 시켰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병자호란때 자기 여인들을 적국으로 보내 평화를 구걸했고 돌아온 여인들을 화냥년으로 멸시했다. 계백장군과 우크라이나의 남자들과 조선의 선비를 비교하여 논쟁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군비를 통해 평화와 여인과 자녀를 지키는 일이다. 평화를 위해 군비 경쟁을 하고 평화를 위해 군비 감축을 하는 이율배반을 새겨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자기 독립을 지킬 수 있도록 신의 가호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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