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깨닫는 것들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평화 지킬 유엔상임이사국이 전쟁 일으켜 ‘독일의 재무장화’도 눈앞에 권위주의 대 자유민주주의간 신냉전

우크라이나 난민의 도착을 환영하는 베를린 시민들. 사진= www.theglobepost.com
우크라이나 난민의 도착을 환영하는 베를린 시민들. 사진= www.theglobepost.com

지속적으로 거짓말하는 나라, 러시아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한다는 개전선언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가능성을 경고했지만 그 경고가 현실이 될 것이라 믿었던 나라는 거의 없었다. 과거 냉전시대 양대 축이었던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한 위험을 모르는 러시아가 아닐텐데 설마 주변국을 대놓고 침략할 리 없다고 봤다. 다수의 바람이기도 했다. 러시아 국가 원수와 주요 정부 수뇌가 국제사회에 대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충격은 그런 거짓말을 하는 강대국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러시아가 아닌 다른 강대국이 평화를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어떠한 실질적 이행조치가 없는 발언은 그냥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걸 극명하게 증명한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진출처: www.dw.de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진출처: www.dw.de

개전 한달만에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우크라이나는 놀라운 저항의지로 자국 영토를 지키고 있다. 개전 3일이면 우크라이나를 무릎 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러시아의 계산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사실상의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토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폭격으로 초토화돼 버렸다. 지난 3월 20일 유엔 발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인구의 1/4 수준인 1천만 명이 집을 떠나 국내외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이미 339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파괴된 기간시설과 건물 등의 물적 피해가 1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의 사망자가 이미 최소 953명이라고 한다.

평화를 지켜야 할 유엔상임이사국에 의한 평화 파괴행위

이 때 우리가 묻고 싶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평화를 파괴한 것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다. 국제사회가 다른 가치의 추구와 이해충돌로 갈등을 빚을 수는 있지만, 폭력이 동반된 평화파괴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지워야 하나. 물론 러시아와 그 대통령 푸틴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만 그들이 이런 책임을 지려할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또다시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유엔을 창설했고, 유엔상임이사국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무력충돌을 방지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데 오늘날 그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직접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면 우리 인류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유엔을 통한 안전보장체제가 이렇게 깨지기 쉬운 평화체제였단 말인가? 앞으로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또다시 세계에 도전한다면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유엔총회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난 결의'에서 141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5개국이 반대하고 35개국이 기권했다. 사진 출처= www.voanews.com
유엔총회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난 결의’에서 141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5개국이 반대하고 35개국이 기권했다. 사진 출처= www.voanews.com

평화가 파괴된다는 것은, 누군가는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어떤 나라의 많은 것들이 파괴되는 것이다. 그것을 재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물적 피해는 복구하면 되겠지만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평화협상에 대한 노력을 이해할 수 있다. 침략한 나라는 러시아이고 피침략국인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지금 전세가 나쁘지 않은데 급히 평화협상을 체결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국민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파괴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국토일 뿐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사항인 중립국 선언, 돈바스 영토에 대한 협상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세계안보지형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 또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마무리된다면 우리의 삶은 다시 2월 24일 이전으로 리셋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러시아는 다시 2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러시아로 복귀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러시아 병사의 사상자만 보아도 1만 명을 넘어섰다. 전선은 러시아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과거 냉전 종주국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 협상이 러시아에게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공식적인 러시아 영토로 만들어 줄까? 돈바스가 러시아 영토로 할양될지, 아니면 러시아 영향권을 인정하되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을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크림반도는 지금의 협상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크림반도 불법점거에 대해 이미 서구유럽 국가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 경제 제재가 계속되고 있다. 크림반도 강제합병에 대한 미국과 서유럽의 제재를 완화할 명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차라리 추가제재의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또는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러시아 경제의 외환위기가 완화될까? 그렇게 되려면 러시아가 보다 강력한 대치상황과 전쟁에서의 우위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황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돈바스지역의 해방’이라는 전략변경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을 뿐, 러시아에게 유리한 내용은 거의 없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국제통화결제시스템(SWIFT) 배제에서 해제해 줄 용의가 있다는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서유럽국가들은 압류한 푸틴 대통령과 올리가르히의 재산을 우크라이나 재건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소식만 흘러나올 뿐이다.

러시아의 경제가 다시 국제금융시장으로 복귀하는 문제는 새로운 협상의 테마가 될 것이다. 가장 단순한 계산으로 러시아 달러 외환보유고가 2021년 3월 약 4359억 달러 정도에 달한다고 알려졌는데, 이 금액이 우크라이나 전쟁배상금 지급에 사용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정 역시 어떠한 형태의 우크라이나 우위가 확실하게 입증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독일의 재무장을 독려한 러시아의 실책

그리고 과연 서유럽국가들은 러시아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에너지거래를 하며 상호이익을 도모할 수 있을까? 서유럽국가들 중 이번 전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국가는 분명 독일이다. 독일은 이번 러시아의 전쟁 개시로 인해 공공연하게 떠들던 ‘러시아와의 신뢰관계’ 자체가 파국을 맞았다. 독일 내 친러시아계 정치인들의 입지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독일 정치인들 중 심정적 러시아 지지세력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위해 12만명이 넘는 병력을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경에 배치했을 때조차 푸틴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못하는 바가 아니라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물론 정치경제적으로 독러간 ‘노르트스트림2’라는 에너지협력사업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를 비난만 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의사가 없다던 러시아는 거짓말을 뒤엎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런 행위는 독일 정치권에 ‘심정적 핵폭탄 수준’의 각성을 가져오게 했다. 1945년 패전과 함께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적 무장을 거부해왔던 독일이 돌연 ‘재무장’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이 가져올 서유럽의 변화는 간단하지 않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이 된 EU에서, 독일이 아무리 많은 재정적 기여를 한다고 해도 프랑스가 정치조율의 핵심역할을 해왔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서유럽의 정치, 경제, 안보 모든 분야가 독일 중심으로 급격히 기울 가능성이 높다.

국방비 예산을 GDP대비 2%수준으로 증액하겠다고 선언한 독일의 올라프 슐츠 총리 사진= www.dw.com
국방비 예산을 GDP대비 2%수준으로 증액하겠다고 선언한 독일의 올라프 슐츠 총리 사진= www.dw.com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월 24일 연설을 통해 독일이 당면한 ‘시대적 전환점(Zeitenwende)’을 선포하면서 1000억 유로(약 134조원)의 특별기금 조성과 매년 GDP 2%의 국방비 지출을 선언했다.

정치권은 물론 독일인 78%가 이에 대해 지지를 표했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메르켈 전총리를 아무리 설득해도 가능하지 않았던 국방비 2% 달성 약속(2021년에는 국방비 470억유로로 국내 GDP 1.5% 수준)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앞으로 독일은 미국, 중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단일 국가가 될 전망이다. 독일의 중장비무기 생산수준을 고려할 때 독일이 과거의 군사강국으로 거듭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독일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돌아선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에 있어 독일은 서유럽을 책임져 주는 핵심우방국이다. 핵심우방국이 늘 군사적인 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미국은 독일의 이런 태도변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끝까지 러시아에 보냈던 신뢰가 깨지면서, 독일은 무섭게 돌아섰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가치를 위협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의명분 속에 재무장의 속내를 내비친다고 반대할 나라가 없는 것 또한 기가 막힌 상황이다. 러시아로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민주주의 가치공유의 중요성, 향후 세계질서에도 영향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유럽 및 동유럽 나토회원국들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결집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는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나토 회원국들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도전받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을 대신해 러시아와 대리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유럽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참전할 수는 없지만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를 지지하는 것에는 한치의 주저함이 없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했을 때 독일인들이 보였던 환대 역시 비슷한 가치공유의 연대의식에서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2015년 시리아 난민을 대규모로 받을 때에도 독일인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벌어진 각종 사회질서 교란과 갈등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종교도 비슷하고 인종적으로도 거부감이 없으며 무엇보다 동일한 정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라는 권위주의 국가에 대응하고 있다. 남일 같지 않게 느낀다. 요즘도 베를린 중앙역에 가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할 공간이 있는 가정에서 푯말을 들고 그들을 환대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치의 몰락’은 가속될 것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은 과거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싸움이라기보다, 강압적 권위주의에 대항한 자유민주진영의 결속을 보여주는 끝장판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 등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유엔에서 보여준 141개국의 표결집에 놀랐을 것이다. 중국의 돈과 러시아의 가스는 세계 가난한 나라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살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리고 폭력적 선동을 통해 남의 나라 땅을 먹었던 크림반도 강제병합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도 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머니 걱정만 하며 제대로 뭉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영원할 것이라는 상상 자체가 이제 가장 어리석은 정치적 오판이 되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판세가 불리해지니 러시아의 위성국들로 치부되었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몰도바 등 어떤 나라도 러시아의 권위주의 곁에 남아있고자 하지 않는다. 특히 부패한 권위주의의 전형인 러시아 정치권이 보여준 전쟁수행 능력은 앞으로 두고두고 세계 전쟁사에 회자될 비웃음거리가 될 전망이다.

애초 러시아가 뒤집어씌운 ‘신나치 전쟁’이라는 명분을 믿는 나라도 찾기 힘들다. 신나치소탕 운동이라는 기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독일 정부뿐 아니라 독일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독일내 러시아를 이해하는 또는 이해하려는 시민들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나토 동진의 위험성’이 타국을 침략할 정치적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전쟁범죄의 사고를 가진 위험한 망상가일 뿐이다.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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