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이 없는 독일, 공부는 쉬울까
[독일 박사유학생이 본 ‘독일의 대학’] 대학진학엔 등록금보다 ‘학습동기’가 필수 ‘학교가 학생의 아이도 키워준다’...복지천국 수업은 수준높고, 교수는 성적평가 깐깐해 이런 대학 시스템, 한국은 만들수 없을까
지난 4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최종 입시결과가 발표됐다. 주변에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분들의 희비가 엇갈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외(독일) 생활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미국 아이비리그 학교의 ‘부모 최소소득 기준 학비감면 프로그램’에 눈이 갔다. 학교마다 약간은 다르지만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의 경우 부모소득이 연간 6만 5천 달러 이하이면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고 한다. 파격적인 조건이긴 하다. 영국은 장학금이 있다 해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큼 많이 주지도 않고 국제학생들에게 많이 배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재정이 넉넉하지 않고는 영국 대학 유학을 생각할 수가 없다.
과거 EU회원국일 때 영국은 EU회원국 학생들에게 자국민 학생들과 똑같이 등록금 할인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그런 지원은 사라졌다. 프랑스의 경우 2020년 7월 최고행정법원은 대학이 비유럽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높게 받는 것이 헌법상 무상교육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제 유럽에서 대학무상교육이 유지되는 나라는 독일, 노르웨이 정도다.

등록금 면제뿐아니라 다양한 복지혜택이...
필자는 현재 함부르크 대학교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매학기 대학교에 내야 하는 돈은 약 320유로(약 42만원) 정도로, 대부분 교통요금카드 비용이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함부르크와 일부 교외지역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다. 학교멘사(학생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학생증을 제시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학생증 없는 외부 사람들도 학교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지만, 학생들은 그들보다 50% 싸게 이용할 수 있다. 돈이 없어도 공부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고, 먹고 싶은 것도 충분히 먹게 해준다.
심지어 학교부설 유치원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자녀가 있는 학생들은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는 아이를 데리고 공부할 수 있는 패밀리룸까지 따로 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여학생은 여학생 전용 기숙사를 배정받고 학교로부터 별도의 양육지원금도 받는다. 필자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했을 때, 학교는 여학생전용 가족기숙사를 학교 코 앞에 마련해주고, 남편이 돌아오면 같이 살아도 된다고까지 했다. 그 기숙사 비용은 함부르크의 높은 임대주택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배정받은 기숙사로 이사가려고 할 즈음 개인적인 문제가 생겨 이사를 못가고 다른 사람한테 양보하긴 했지만, 정말 함부르크 대학의 지원은 놀라웠다.
미혼모 여학생이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함부르크 시(市)가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함부르크 졸업 여학우모임에서도 나선다. 필자에게도 혼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으면 지원금을 신청하라고 메일이 왔다. 또 학생 식당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당연히 할인과 무료급식(1명 무료)을 제공받는다. 학교가 학생들의 아이들까지 키워준다고 할 정도다. 함부르크보다 더 작은 도시들은 학교가 도시 전체인 경우도 있는데, 그런 곳은 학교내 탁아시설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한다. 아이들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정말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다. 필자가 공학 전공이 아니어서 그렇지, 공학전공 여학생들에게는 추가적인 ‘학업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가 많다.
등록금 없는 대학이지만, 이것은 꼭 필요하다
필자의 큰 아이가 오는 8월이면 아비투어(대학입학자격시험) 과정인 11학년에 들어간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바이링구얼 스쿨’이라 영어와 독일어를 함께 배우는데, 아비투어 과정에서는 2년동안 영어와 독일어를 병행해서 배운다. 독일어와 수학과목은 반드시 독일어로 시험을 봐야 하지만 다른 과목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따라서 영어를 선택할 수 있다. 졸업할 때도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겐 ‘바이링구얼 아비투어코스’를 수료했다는 증서가 나온다. 이것은 유럽의 어느 대학에서든 영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증명이 된다.
독일은 고등학교 10학년까지 고난이도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원리 이해에 충실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모습이다. 시험은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치르는데 하루에 한 과목씩이며, 일주일에 두 과목씩 보는 경우는 거의 없도록 시험 스케줄이 정해진다. 물론 배워야 할 과목에서 선생님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지 않고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필자의 아이는 한국 국적이라 ‘아비투어과정’ 졸업과 시험후 어느 나라로 대학을 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독일”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이제 독일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학비와 대학교육의 수준을 따져볼 때 독일만한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학비는 무료에 가깝고 대학교육 수준은 절대 다른 선진국에 뒤쳐지지 않는다. 석박사 연계과정도 잘 되어 있다.
본격적인 고등교육은 대학부터다. 대학이 등록금도 없고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문호가 개방되어 있어 독일에서의 공부가 쉬울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대학의 교수가 요구하는 수준은 매우 높고 까다롭다. 교수는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에겐 가차없이 박하게 성적을 준다. 학기가 지날수록 학생들이 줄어들고 두 번 이상 과락을 받으면 다른 과로 옮겨야 한다. 그 과가 안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몇 번 반복하면 대학을 나오지 않은 친구들보다 사회생활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대학을 꼭 가야하는지 숙고가 필요하다. 국가가 무상교육을 제공하지만 젊은 시절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하며 몇 년을 허비한다면 당사자에게 큰 손실일 수 있다.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엄청난 임금으로 노력을 보상해준다고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 학생들은 중고교 통합과정에서 10학년이 되면서 자기 인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고등학문을 배워 그걸로 뭔가 더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빨리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확실히 유리하다. 학교상담을 가보면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 중 하나가 아이의 학습능력 외에도 “학습동기”라는 걸 알게 된다. 선생님은 아무리 머리가 좋더라도 학습동기가 충만하지 않은 학생이 고등교육을 받으며 수년의 시간을 대학에서 보낸다고 그 학생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야속하지만 그런 평가를 받으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늦게 학습동기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때 다시 대학 진학을 하면 될 일이다.
‘학벌주의’도 없는 독일, 한국은 불가능한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10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한 필자도 너무나 한국적이었는지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 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가 다른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으면 아이에게 전문학교(전문대)나 아우스빌둥(직업교육)을 권할 수도 있다. 학업성적이 높은 학생은 당연히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게 꼭 일치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냥 공부가 쉬웠고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을 뿐 대학에 대해서는 열의가 없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 아무리 부모가 학력이 높다 할지라도 자식의 대학진학거부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고졸, 중졸이라는 낙인이 다가오지도 않는다.
필자도 아이가 공부를 계속할 건지 아니면 컴퓨터 아우스빌둥이나 은행 아우스빌둥을 받고 빨리 사회에 진출할 건지를 당사자와 함께 상의했다. 아이는 컴퓨터를 전공한다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학진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의학이나 수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기후변화를 관찰하는 과학자도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게 많은 학생은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2개 이상 가진 사람들이 꽤 많고, 3개까지 있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대학입학을 위한 자격을 의미하는 아비투어자격을 갖추게 될 경우 대학공부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는 당사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니 재수, 삼수라는 말이 낯설 수밖에 없다. 여기 부모들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계획된 시간표대로 젊은 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을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직업을 정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진학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여기에는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경험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결정하게 된다.
독일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다. 이 특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독일사람들의 잣대가 우리 한국인과 완전히 다른 근본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시험성적대로 학교커트라인을 정하고 소위 SKY라는 이름으로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문화는 독일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대학입학 커트라인도 발표되지 않는다. 물론 독일도 각 분야마다 최고의 대학이라는 곳이 있다. 그러나 그런 대학출신이라고 그 분야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상황에 맞게 평준화된 대학에 입학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졸업을 하는 식이기 때문에, 아이가 대학을 졸업했다면 대학졸업자에게 요구되는 그 기본을 갖췄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프랑스와 영국만 해도 심각한 학벌주의가 만연하지만 독일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어디 출신이야!”라고 말할때 듣게 되는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접근법을 가진 독일대학시스템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좀 더 일찍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했다. 한국에서 배웠던 공부가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지만, 독일 대학에서 배운 학문에 대한 본질적 접근법과 지도교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경험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독일교육에도 장단점이 있지만, 독일의 대학교육은 매우 양질의 무상교육이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다는 소리는 독일에서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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