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의 신세계’를 창조한 말러의 교향곡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자연의 모든 것, 세상의 모든 존재를 담아

교향곡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자연을 대하는 감성은 저마다 다를 것 같다. 베토벤이 ‘전원’에서 보여준 것은 신성(神聖)이 깃든 목가적 자연이었다. 신이 창조한 자연 안에서 역시 피조물인 인간은 심신의 고통을 치유 받는가 하면, 때론 거칠고 사나운 자연에 맞서며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꽃, 작은 새의 지저귐 같이 사랑스러운 것부터 커다란 재앙을 몰고 오는 갖가지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오묘함은 많은 예술가들에겐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원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연주가 나탈리 바우어-레흐너는 말러의 생각과 느낌들을 기록하여, 말러의 허락하에 <말러리아나>를 펴낸 바 있다.

“...‘자연’이라고 하면 왜 사람들은 오로지 꽃이나 작은 새들이나 수풀의 향기만을 생각하는지 나는 늘 의아하게 여겨왔다. 아무도 디오니소스 신이나 위대한 목신(판 Pan)을 모른다. 여기 나는 표제(프로그램)들을 제시하였다. 내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인 셈이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다.

...이 수수한 소품을 들으면 대중들은 틀림없이 내가 풍부한 감각의 ‘자연 찬양자’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러나 자연은, 실은 끔찍하고 위대하고 한편으론 사랑스러운 그 모든 속내를 숨기고 있어. 내가 이 작품 전체를 이를테면 진화의 방식으로 펼쳐나가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점이지. 아직 그 누구도 이토록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간파하지 못했어.”

말러(Gustav Mahler, 1860~1911)가 언급한 ‘이 수수한 소품’은 그의 3번 교향곡의 2악장인데, 이 작품은 자연과 초자연적 현상까지를 아우른, 자연의 소재가 풍부하게 녹아있는 음악이다. 말러는 주변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숲속에서 자연에 푹 빠져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고, 빈 음악원 시절에는 강의실보다 빈의 숲으로 출석한 날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알프스의 경치와 소리에 둘러싸여 작곡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는데, 생래적으로 자연과의 소통능력이 탁월했고 그것을 매우 즐겼던 사람이었던 같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 슈타인바흐에 있는 말러의 '작곡 오두막집'. 사진=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 슈타인바흐에 있는 말러의 ‘작곡 오두막집’. 사진=위키피디아

그렇지만 자연의 소리를 구사함에 있어 말러의 방식은 일반 청중들이 의당 기대하는 그런 소리는 아니었다. 질서정연한 짜임새의 고전적 교향곡에 길들여진 청각으로 그의 음악을 듣게 되면 ‘이건 뭐지?’하는 당혹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귀에 착 붙는 편안한 선율선도 별로 없거니와 예상경로를 이탈한 화성진행의 선율은 모호하기만 하다.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몰아가다가 갑자기 삑삑 거리듯 익살스런 음향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귀에 익은 민요가락도 낯설게 비틀어 놓고, 형식에 있어서도 전통적 악곡형식을 대입하여 분석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악곡의 길이는 또 얼마나 긴지. 확실히 그 이전 시대의 음악에 길들여진 귀로는 감당하기 벅찬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생전엔 지휘자로 더 유명했던 ‘여름 작곡가’

그렇다면 말러는 왜 이런 음악을 쓰게 되었을까? 우선은 보편적으로 예술창작가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지향한다는데 있다. 다음은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 그는 생전에 지휘자로서의 명성이 우선시 되었던 음악가였다. 청년시절 작곡가를 목표로 하였지만, 그것으로는 생계가 유지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택한 직업이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과 지휘자였다. 그러므로 곡을 쓰는 일은 주말이나 여름휴가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스스로도 자신을 ‘여름 작곡가’로 불렀다.

지휘하는 말러 이미지.
지휘하는 말러 이미지.

대신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애호 악기처럼 다룰 수 있는 흔치 않은 행운을 누린 작곡가였기에 각종 악기들의 효과적인 쓰임새 같은 관현악기법에 통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관현악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경제적 안정을 얻자 그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에 ‘작곡 오두막’을 마련하고는 매년 여름이면 그곳에 칩거하면서 머릿속에 모아두었던 악상들을 오선지에 풀어내는 창작에 몰두하였다.

말러가 음악가의 길로 들어설 무렵, 독일음악권에선 이른바 보· 혁 논쟁이 빈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바그너를 선봉으로 한 진보적 경향과 브람스가 주축이 된 순수음악파의 양 진영이 상대를 향해 ‘한물 간 음악’이니, ‘전통적 음악양식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말러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하는 쪽을 택했다.

교향곡 작곡에 대해서도 ‘교향곡은 세상의 모든 것, 특히 자연의 모든 존재, 초자연적 현상까지도 담아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갔다. 이상의 몇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여 말러만의, 말러표 음악이 나온 것인데,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당대 음악계에서 늘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은 작품들이 많다.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제(프로그램노트)를 써놓은 교향곡

1895년과 이듬해 여름에 걸쳐 알프스의 여름휴양지 슈타인바흐에서 3번 교향곡이 완성되었다. 방대한 규모의 악기편성에 성악(알토, 어린이합창과 여성합창)이 가세한, 여섯 악장으로 된 이 작품은 전체 연주시간이 100분 정도 된다. 1악장만 해도 연주시간이 35분 내외로, 이전 시대 교향곡의 전체 연주시간과 맞먹는다. 말러는 이 교향곡에 이 세상의 모든 것 - 아주 소소한 것부터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거대한 개념까지, 매우 방대한 주제를 단계별로 담아냈다.

또한 청중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교향곡에 내재된 내러티브를 상세히 글로 옮긴 프로그램노트라는 것을 써놓기도 했다. 곡을 구상하며 처음에는 각 악장에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였다.

1악장 : (목신이 잠에서 깨어나며) 여름이 온다
2악장 : 초원의 꽃들이 내게 하는 말
3악장 : 숲의 동물들이 내게 하는 말
4악장 : 밤이 내게(인류에게) 하는 말
5악장 : 아침종소리(천사들)가 내게 하는 말
6악장 : 사랑(신)이 내게 하는 말.

목신 ‘판’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대자연엔 여름이 도래하여 생기로 가득 차게 되면, 2악장부터 6악장까지 이 천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구상이다.

목신(판)의 상상화. 앙리 마티즈의 '목신과 요정'
목신(판)의 상상화. 앙리 마티즈의 ‘목신과 요정’

각 악장의 부제는 니체 식의 철학적 진화를 구체화 하여 붙인 것인데, 즉 원소에서 식물 - 동물 - 인류 - 천사 - 신의 단계를 의미하며, 매 순간은 이전보다 드높은 단계를 열망하며 나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4악장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온 구절들을 가사로 하여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인간의 고뇌를 그려냈다.

니체가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과 달리 말러는 마지막 악장에 ‘신의 사랑’이란 개념을 끌어들여 이 교향곡의 피날레를 장엄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 교향곡의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판(牧神)’, 또는 니체의 철학서 제목에서 따온 ‘즐거운 학문’을 염두에 두었지만,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제목과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청중들이 교향곡의 표제와 부제에 너무 얽매이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교향곡의 전 악장 초연도 1902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이제 (여유를 갖고) 말러의 교향곡에 빠져보기로 하자. 음악을 듣기 전에 곡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대규모 편성의 교향곡은 콘서트홀에 가서 들어볼 것을 권하지만, 여의치 않으므로 동영상을 통한 감상을 추천한다. 동영상으로는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이 어떻게 악곡 진행에 참여하는지를 카메라로 잘 잡아서 보여주기 때문에, 특히 마이너 악기들 - 바순이나 트롬본, 하프, 심벌즈 같은 악기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울리는지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를 준다.

듣다보면 서서히 말러스타일의 멜로디 라인이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하고, 오케스트라의 낯선 음향들도 친숙해진다. 온갖 악기가 동원되고 성악까지 포함된 대편성 교향악의 울림. 그 안에서 선과 악,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것, 시시한 것과 위대한 것 등 신이 창조한 모든 것, 자연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태초의 무질서처럼 다가오지만 점차 제 자리를 찾아 빛을 발하며 장엄한 하모니로 교향악의 신세계를 체험케 할 것이다.

유튜브: 말러 3번 고향곡/레너드 번스타인,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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