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

[최성호의 사람 사는 건축] 수해에 대통령과 총리, 장관 어디갔나 수해 희생자 마음 읽지도 못하는 대통령 대통령의 자리는 민생속에 있어야

강남이 물에 잡기던 8일 밤 11시30분쯤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한덕수 총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한유석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 등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있다. 사진=총리실
강남이 물에 잡기던 8일 밤 11시30분쯤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한덕수 총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한유석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 등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있다. 사진=총리실

요새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언론의 중심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위기 때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인데, 서울 그것도 한국의 심장이라고 할 강남에서 물난리가 나니 대통령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홍수 난리가 났을 때 윤 대통령이 집에 있었다는 것이 구설에 오르자 대통령실은 “상황실로 가려했는데 길이 막혔고, 헬기를 띄우려하니 주민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고 해명아닌 해명을 내놨다. 비난이 사그라들지 않자, 새벽 3시까지 지휘했다면서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실”이라고 강변했다. 우스운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 다음날 수해대책회의에서 전국 하천을 모니터링할 시스템을 갖추란 지시가 그것이었다.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필자는 내용을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의심할 정도했다.

그때가 15년전 인가보다. 필자는 한강홍수통제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한강홍수통제소(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이었지만 2018년 환경부 소속으로 바뀌었다)는 우리나라 모든 강의 홍수를 관제하는 곳이다. 당시에도 실시간으로 모든 강의 수위가 전광판에 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전국 강의 수위나 홍수경보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전부터 모니터링 하고 있는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이것이 다시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이번 반지하층 침수로 사망사고가 난 도림천 등 지천에 대한 시스템을 강화하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물론 각 지천의 수위 모니터링을 보완할 필요성은 필자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대통령실 해명은 변명에 가깝다.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 구인과 구직을 연결해주는 앱을 개발해 활용하자고 했던 일까지 떠오르면서, 필자는 윤 대통령이 인터넷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나마 대통령밖에 보이지 않아

대통령실만큼이나 한심한 곳은 재난재해의 콘트롤 타워인 행정안전부의 태도다. 우리나라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중앙재해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행안부 산하에 있고, 광화문 서울청사에 위치하고 있다. 행안부가 있는 세종시에도 또 다른 중대본 상황실이 있다.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지자체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14조에 의하면 중대본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발생한 물난리는 기본적으로는 지자체가 관리하지만, 전체적인 대책과 조율을 위해서는 중대본이 나서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 중대본은 있는지 없는지 조용하다. 필요시 국무총리가 중대본 본부장, 행안부 장관이 차장이 돼 국가재난을 관리해야 하는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활발하게 재해대책을 지휘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경찰청 독립을 무너뜨릴 때 연일 나서던 이상민 행안부장관도 나서는 모습이 없다. 아래 사진이 국무총리의 위상을 보여준다. 지금 행정부에서 대통령 외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행정부를 국무총리가 통할하도록 돼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스스로가 모든 권한을 가지려 하고 있다. 만일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주었다면 국무총리는 행안부장관에게 명해서 중대본을 소집하고 법에서 규정하는 대로 스스로가 본부장이 돼 사고를 수습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모습이 활발히 알려지면 윤 대통령에게 집중된 비난도 피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사태 등 중요한 재해 상황이 있을 때 그렇게 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나눠서 재해 상황에 대처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과 장관들 업무보고, 설익은 정책들

그저께(10일)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식량자급률을 50%이상 확보하라는 지시를 했다. 농식품부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70%대이던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45.8%까지 떨어졌다. 이것을 윤 대통령은 50%까지 끌어올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식량자급률 제고’ 문제의 복합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런 지시를 했을까.

우리나라는 사료용을 포함하면 곡물자급률이 20.2%다. 사료용은 소나 돼지를 키우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므로 별개로 치더라도 식량자급률이 50%가 안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다고 할 것이다. 식량자급 문제는 국가 안보에 관련된 문제다. 그래서 농식품부도 업무보고에 ‘식량안보’라는 개념으로 이를 다루고 있다. 현재 북한은 식량자급률이 90%에 이르는 데도 만성적 식량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그만큼 식량자급이 절실한 문제다.

영국의 식량자급률은 100%가 넘는다. 이 나라는 산업혁명과 함께 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공산품 수출에 주력하는 대신 식량은 우리처럼 외국에서 수입해왔다. 식량자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 1차 대전때 해상봉쇄를 당하자 식량부족으로 곤욕을 치렀다. 뼈저린 교훈을 경험한 뒤 영국은 식량자급을 목표로 농업을 육성했다. 그렇지만 식량자급은 60년이 지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뤄졌다.

영국의 예에서 보듯이 한번 붕괴된 농업시스템을 복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식량자급이라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 쌀은 거의 100%로 자급하고 있다. 그러나 식생활 변화로 수요가 급증한 밀, 옥수수 등은 전량이라고 할 만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공업위주의 정책으로 많은 농지를 공장용지로 전환하는 바람에 농지가 절대적으로 감소했고, 농사지을 사람도 거의 사라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박정희 시대 이후 경제부분에서 농업은 늘 차순위였는데, 이번 정부까지도 그 기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이런 배경이 있는 만큼 식량을 자급한다는 것은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식생활 변화도 있어야 하고, 경작할 농지도 확보해야 한다. 농업구조도 개편해야 하며, 이에 따른 농업부분 인력 확충도 이뤄져야 한다. 농식품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회 전반과 관련된 문제다. 식량문제를 국가 중심과제로 삼아 모든 부처가 협력해서 추진해야 할 사안인데도, 목표가 너무 쉽게 제시됐고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복잡하게 함축된 정책임을 알고 윤 대통령이 식량자급률을 5% 늘리라고 했는지 의문이다.

앞서도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나.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취학연령을 5세로 낮추겠다는 정책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박순애 장관이 취임 35일만에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책을 누가 조언했는지 모르겠지만 전국적 파장을 일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같다. 이 때도 윤 대통령은 “신속하게 추진하라”는 지시만 했다.

나는 대통령이란 자리가, 거침없이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라고 믿는다. 그런 역할을 해야할 대통령이 회의 참석자 발언의 70%를 독점하고 있다면 정책 조율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자기가 몰랐던 것을 배우기도 하고, 자기 생각과 다른 점을 토론하며 조율해야 한다. 이런 자리 없이 장관과 독대형식으로 업무보고를 받다보니 설익은 결정만 난무하는 꼴이 됐다. 토론으로 걸러지지 않는 설익은 정책들이 ‘대통령의 재가’ 과정을 거친 후 그냥 노출되어 버리고, 거기에 대통령이 걸려드는 꼴이 반복되고 있다.

이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던 윤 대통령은 권력을 분산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국무총리 중심의 내각이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쥐려 하고, 총리도 없는 자리에서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참석자를 최소화한 한 자리에서 보고를 받으려면 스스로가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지식이 있어야하는데, 솔직히 윤 대통령은 그런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선되고도 그런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지금도 통치에 대한 이해 수준은 단세포적이다.

다시 수해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도림동 지하층에서 사망한 사람 집을 찾아가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됐나 모르겠네”라고 했는데서 그는 공감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 현장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도와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이어야 하는데, 이런 조언조차 하는 측근이 없었단 것인지. 마치 검사가 현장검증 하듯 현장을 돌아보고 떠났을 뿐이다. 모든 권력을 휘어잡으려는 열망보다 따뜻한 리더가 되려는 마음이 대통령에 더 필요한 게 아니겠는가.

글쓴이

최성호 건축가

필자인 최성호는 오랫동안 한옥과 한국문화를 공부해온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다.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s://blog.naver.com/seongho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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