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집단지성은 언제나 성공할까
[어느 이론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佛철학자 콩도르세, 집단지성 이론 제시 영화 ‘런어웨이’ 실패, CERN은 성공 사례 ‘타인의 영향’ 배제 못하면 실패하는 이론
니콜라 드 콩도르세 후작. 그는 18세기 말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과학과 이성의 힘을 믿었다. 1774년에 프랑스 파리의 조폐국의 감찰관이 된 이후부터 그의 관심은 수학에서 정치와 철학으로 옮겨갔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과 노예 해방을 주장했고, 프랑스 혁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1781년에는 <흑인 노예 제도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에서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성과 과학에 바탕을 두고 당시 프랑스 사회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백인과 흑인 사이에 차이가 있을 리 없었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계급적 차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18세기 말에 이런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지롱드파는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주의를 주창하는 세력 중에서 온건파였다. 이 지롱드파와 가까웠던 그는 1793년, 혁명을 주도했던 몽테뉴파에서 만든 프랑스 헌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 몰려 5개월 넘게 숨어다니다가 결국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지 이틀 만에 감방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집단지성 바탕은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
콩도르세가 남긴 업적 중에서 지금까지 이목을 끄는 건 그가 세운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다. 두 가지 의견 중 하나를 다수가 투표로 결정하면, 한 명 또는 몇몇이 결정할 때보다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보인 정리다. 물론 개인이 올바른 결정을 할 확률이 절반보다는 살짝 높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투표자 한 명이 올바른 결정을 할 확률을 0.51이라고 하면, 100명이 투표할 경우, 올바른 선택을 할 확률이 0.62로 올라간다. 투표자의 수가 만 명으로 증가하면, 이 확률은 다시 0.98까지 증가한다. 0.98이면 올바른 선택을 할 확률이 거의 100%다.
물론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가정을 미리 해야 한다.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확률이 절반보다는 높아야 하고, 투표하는 사람들의 결정은 서로 영향을 줘서는 안 되며, 모든 투표자는 진정성 있게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이 가정이 깨지면, 유감스럽게도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정리는 종종 직접민주주의가 왜 다른 정치적 체제보다 더 나은지 주장할 때 쓰이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내는 집단 지성이 한 사람의 지성보다 더 낫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2003년에 개봉된 <런어웨이(Runaway Jury)>라는 영화가 있다. 변호사와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는 소설로 유명한 존 그리샴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셀레스트 우드라는 여인이 자기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했는데, 그게 담배 때문이라며 담배회사를 고소한다. 재판은 미국 미시시피주에서 열렸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 미시시피주는 담배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온정적이었고, 그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담배회사에 고용된 랜킨 피치는 담배회사가 소송에서 이기도록 배심원들을 포섭하려고 든다. 담배회사가 이 소송에서 이기는 건 거의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주인공인 이스터는 여자 친구 말리의 도움을 받아 열두 명의 배심원 중에 아홉 명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담배회사는 재판에 지고, 원고에게 엄청난 금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지경에 놓인다.
꼭 영화 <런어웨이>가 아니더라도 배심원들은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밝히기 위해 서로 토론할 수밖에 없다. 토론하면서 배심원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는 깨진다.
집단지성, 실패할 때와 성공할 때
이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를 만족하는 경우는 없을까? 오늘날 집단 지성이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되는 예는 거대 실험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는 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있다. 여기에는 역사상 가장 에너지가 높은 가속기가 있다. 지름이 8.6km이고, 둘레가 27km나 된다. 이 가속기의 이름은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다. 네 개의 거대 실험 그룹에서는 이 가속기의 빔을 이용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고,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탐구한다.
이 네 개의 실험 그룹 중에서 CMS라고 불리는 실험 그룹이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과학자와 공학자의 수가 5500명에 이른다. 이 많은 사람이 모여 새로운 발견을 내놓는데, 이야말로 집단 지성의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2015년에 중력파를 발견한 라이고-비르고 실험도 마찬가지이고, 최근에 심우주를 관측하려고 쏘아 올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집단 지성의 예다. 40년 가까이 많은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공학자들이 이 망원경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종이접기 전문가도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오늘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우주의 비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거대과학에서 이런 연구가 가능한 것은 서로 협력하지만, 상대의 의견을 별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아서다. 여러 그룹에서 독립적으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비교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이렇게 거듭된 반론과 교차 검증을 거친 뒤에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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