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의 의미②...굴하지 않은 과학자들
[어느 이론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양자 얽힘’ 입증한 아스페와 차일링거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마침표 찍어 노벨상, 묵묵히 길 걷는 과학자에 갈채
①에 이어 계속
양자역학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사실을 훨씬 정확하게 실험으로 보인 사람은 알랭 아스페였다. 1974년에 파리 근교에 있는 광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 아스페도 벨의 논문에 마음이 꽂혔다. 그는 벨의 부등식을 실험으로 확인하겠다고 지도교수였던 크리스티앙 잉베흐(Christian Imbert)와 상의했는데, 다행히 클라우저의 지도교수와는 달리 아스페의 지도교수는 아스페를 격려하며 제네바에 가서 벨을 만나보라고 했다. 벨을 만난 아스페는 그에게 자기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런데 벨은 아스페의 기대와는 달리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정년직에 있습니까?”
그는 양자역학의 근본을 연구한다는 것이 젊은 물리학자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아스페는 박사과정이었지만, 광학연구소의 정규직 연구원이기도 했다. 벨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스페에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이런 실험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할 게 아니라서 실험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말이었다.
이해 어려웠던 ‘양자 얽힘’
아스페는 1982년에 필립 그랑지에와 제라르 로제와 함께 클라우저의 실험보다 훨씬 정교한 방법으로 양자역학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이 실험에서 이용한 들뜬 칼슘에서 나오는 두 개의 광자는 양자역학적으로 서로 얽혀있음이 분명했다. 이 양자얽힘이란 아인슈타인의 생각과는 달리 서로 얽혀있는 두 광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중 하나를 측정했을 때 나머지 하나도 그 측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모순되어 보이지만, 두 광자에는 비국소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멀리 떨어진 광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걸 두고 “유령 같은 원격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일축했지만, 서로 얽혀있는 두 광자는 정보를 주고받지 않고도 한쪽 광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바로 다른 광자의 상태도 결정된다. 이 양자얽힘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스페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연구를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토대(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를 연구하는 건 나이 예순이 넘어서나 할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필자도 그 당시에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안톤 차일링거는 그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하게 1998년에 서로 얽힌 세 개의 광자들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이어서 여러 실험 그룹에서도 양자역학이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사실을 보였다. ‘양자역학의 토대’라는 학문 분야가 비로소 활짝 피어났다.
1935년에 나온 EPR 논문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인용되기 시작했고, 2022년에는 거의 매일 두 번씩 인용되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2410회 인용되었는데,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즈음에는 2426회나 인용됐다. <피지컬 리뷰>에 출판된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10편 안에 드는 논문이기도 했다.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아인슈타인은 틀림으로써 양자역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2022년의 노벨물리학상은 양자역학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양자역학의 놀라운 응용
벨의 부등식이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양자역학의 근본에 관한 연구가 응용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아니, 오히려 이미 양자역학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 그런 연구는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 차일링거는 광자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양자원격전송이 실험적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보였다. 2012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스페인에 있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143km나 떨어진 곳까지 순식간에 양자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뿐만 아니다. 벨의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사실은 양자컴퓨터, 양자정보과학, 양자암호학, 양자원격전송과 같이 지금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응용으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양자역학의 시대가 되었다. 만약에 양자역학의 응용 자체만 생각했더라면, 이토록 놀라운 응용이 가능하였을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EPR 역설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은 왜 기초과학이 중요한지 웅변한다.
1960년대 말에 물리학이 어떻게 급변하고 있었는지 안다면, 존 클라우저가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양자역학의 근본 문제에 천착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은 상상이 갈 것이다.
대형 가속기들이 하루가 멀게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다. 1974년 11월에는 ‘11월 혁명’이라고 칭할 만큼 입자물리학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 클라우저는 지도교수에게 ‘쓰레기 과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과학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분야를 연구하는 건 쉽다. 연구비를 받기도 쉽고 논문을 출판하기도 어렵지 않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과학자들에게 보내는 갈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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