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9주기, ‘기억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어느 이론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비극의 반복을 끊는 방법은 뭘까 망각은 회피를 낳고 용서로 덮을 뿐 ‘기억’으로 직시해 비극을 끊어야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은 지난 4월 14일 “2014년 단원고 선배님들이 가지 못한 수학여행의 길을 저희가 이어 완성함으로써 9년의 시간, 잊혀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소환하고 여론화시키고자 한다”며 이날 오전 제주항에서 출발해 단원고 학생 희생자의 부모를 만나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연합뉴스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은 지난 4월 14일 “2014년 단원고 선배님들이 가지 못한 수학여행의 길을 저희가 이어 완성함으로써 9년의 시간, 잊혀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소환하고 여론화시키고자 한다”며 이날 오전 제주항에서 출발해 단원고 학생 희생자의 부모를 만나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연합뉴스

“무서워,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 아, 그런데 기울기 공식이 어떻게 되지? 기억이 나질 않아.” 배는 이미 7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는 그 위에 구명복을 입고 배의 어느 선실 벽에 기댄 채 친구에게 기울기 공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죽음이 닥쳐오는지도 모르고 기울기의 공식이 기억나지 않는다던 아이는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닷속에서 스러졌다. 9년이 지났지만, 그 아이가 잊히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도 참혹한 사고가 많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의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에서는 1970년 12월 15일에 일어났던 남영호 침몰부터 2014년 5월 28일에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장성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까지 일곱 건의 참사를 자세히 엮은 <재난을 묻다>를 출판하였다. 책에서는 1964년부터 2013년까지 열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대형재난은 276건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그 중에서 일곱 건의 재난이 일어난 배경과 내용, 맥락을 상세히 조사해서 알려준다. 이 모든 참사가 일어난 배경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안전을 감시하여야 할 기관과 사업체의 결탁이었다.

300여명을 싣고 제주 서귀포항을 떠난 남영호는 선장이 걱정할 정도로 적재량의 세 배나 초과하여 화물을 실었다. 출항할 당시 배는 이미 10도나 기울어져 있었고, 갑판과 바다 사이의 간격도 5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남영호의 침몰은 필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고 당일 교통부의 발표에서는 승선자는 266명이었고, 화물은 150톤이었다고 사실과 다르게 발표하였다.

반복된 참사

세월호는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년이나 지나서야 4.16세월호 참사 종합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서는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다 밝혀내지 못했지만, 세월호의 침몰 역시 필연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청해진 해운에서는 세월호 사고 발생 1년 6개월 전, 건조한 지 18년이 지난 일본의 나미노우에호를 구입했다. 그리고 4개월에 걸쳐 이 배를 증개축해서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운항을 시작했다. 여객실을 증설해서 승객 정원을 804명에서 956명으로 늘렸다. 승객을 더 태우려고 선원의 정원도 줄였다.

개조작업으로 배에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 무게인 경하중량은 307톤으로 늘어났다. 이 중량이 늘어난 만큼, 선박이 최대로 적재할 수 있는 재화 중량은 딱 그만큼 감소하였다. 그러나 경하중량이 늘어나면서 배의 무게중심이 60센티미터 넘게 높아졌다. 무게중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배의 안정성이 줄어들었다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안정성을 높이려면 평형수 적재량을 늘려야 하고, 출항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세월호의 증개축이 불러온 가장 큰 문제점은 배의 복원력 감소였다. 물론 증개축 도중에 목포 외항부두에서 한국선급의 경사시험이라는 검사를 받았다. 경사시험은 배에 실은 중량물의 위치를 바꿨을 때 배가 기울어지는 각도를 측정하는 시험을 뜻한다. 그러나 감사원과 선체조사 위원회의 조사에서 한국선급의 경사시험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결국,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도 감시할 기관과 사업체 사이의 결탁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출항 당시 세월호에는 승객과 선원 476명이 타고 있었고, 그 중에는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있었다. 서류에는 일반화물 657톤이 실렸다고 적혀있었지만, 실제로는 적재량을 훨씬 넘는 2214톤의 화물이 고박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실려 있었다. 서류에 적혀있는 점검 사항에는 모든 게 “양호”로 표기되어 있었다. 1970년 12월 15일에 서귀포항을 떠난 남영호와 그로부터 43년 4개월 후에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 사이에 차이점은 없었다. 세월호의 침몰 역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매년 물리학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물리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물리학이 정해놓은 안전의 범위를 벗어나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은 증개축으로 이미 높아진 상태인데, 거기에 적재량을 훌쩍 넘어서는 화물을 실었으니, 무게 중심은 더 높아졌을 것이고, 세월호의 복원력도 심각한 수준으로 낮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월호는 출항 시부터 이미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다. 물이 절반쯤 차 있는 물병과 빈 물 병 사이의 무게 중심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빈 물병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진다.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물리학이 정해 놓은 안전의 범위를 넘어서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거기에는 어떤 요행과 운도 작용하지 않는다.

반복된 면피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게 있다. 정부의 사고 대처는 늦지만, 무마하려는 시도는 늘 재빠르다. 그리고 사고의 책임자는 면피하고 유가족들에게는 보상금을 챙기려는 자들이라는 굴레를 씌운다. 작년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의 인식은 변했지만, 책임자들은 더욱 영악하게 책임을 회피하였다. 정부는 고의적으로 유가족들이 연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정부의 이런 행태는 유감스럽지만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21년이 지나서야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엮은 <1995년 서울, 삼풍>이 나왔다. 이 참사로 502명이 목숨을 잃었고, 937명이 다쳤고, 6명이 실종되었다. 이 책에서는 붕괴 사고의 유가족, 생존자, 봉사자, 구조대원 중 108명을 인터뷰하고 그중 59명이 구술한 이야기를 전했다. 28년 전에 발생한 사고였으니, 늦은 감이 있지만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기억해야 할 사고였다. 숫자에 묻혀버린 개인의 삶과 죽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영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위령탑도 서귀포항과 제주도 돈내코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2013년이 되어서야 남영호 유족회가 결성되었고, 위령탑은 2014년에 서귀포항 인근 정방폭포에 이설되었다. 거기에는 남영호의 침몰로 목숨을 잃은 319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 중에서 114명의 이야기를 한겨레 신문의 김일우와 김기성 기자가 엮어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박재동 화백은 114명의 학생들 얼굴을 한명 한명 정성 들여 그려서 그 책에 넣었다. 쪽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와 형제의 슬픔과 미안함이 새겨져 있다.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망각이 아닌 기억으로

한 개인의 삶을 희생자의 숫자로 대신할 수 없다. 목숨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탐욕이 이글거리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도처마다 지뢰밭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숫자에 묻어버려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황해문화>의 편집장인 전성원은 <길 위의 독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낭만화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문제의 해결 또는 망각 뿐이다. 문제의 해결, 원인의 해소가 아닌 망각으로 얻은 낭만은 머지않아 비극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징벌로 돌아온다. 불의한 권력은 언제나 기억 대신 망각을 말한다. 이제 불행했던 과거는 잊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용서하고 협력하라고 한다. 불의한 권력이 오늘을 차지하면 그들은 과거마저 장악한다. 조작된 기억과 망각을 통해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고 그 힘을 통해 내일도 독점한다. 정의 없는 권력, 사과 없는 용서, 기억이 아닌 망각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번복될 수 있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4.16 세월호 참사가 9년이나 지났으니 누구는 이제 잊을 때도 되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이제 지겹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불편하더라도 기억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역으로 비극은 망각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 비극과 단절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선벽에 기대 공포에 떨며 아이가 말했다. “무서워,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 아, 그런데 기울기 공식이 어떻게 되지? 기억이 나질 않아.” 기울기의 공식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아이의 말을 기억하여야 한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대학에 진학했을지도 모르고, 지금쯤이면 자신의 꿈을 이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허망하게 이울어 버린 250명의 아이들의 삶과 꿈은 타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과 꿈과 다를 바가 없다.

글쓴이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필자인 김현철 교수는 현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및 프런티어학부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강력의 탄생> (2021)과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 (2022)가 있다. 30년 넘게 핵물리학과 강입자 물리학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고, 지금까지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1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