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니?

[어느 이론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언제나 ‘예견된 참사’뒤에 ‘과학무시’ 태도 안전을 이해하려면, 과학이 삶에 스며들어야 의심하고 따져보는 ‘과학적 태도’를 지켜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현장을 수습한 뒤 관계당국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현장을 수습한 뒤 관계당국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학이 설명하는 이태원 참사

예견된 참사였다. 이태원 세계 음식 거리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이 있는 이태원로를 잇는 골목은 폭이 4m이고 길이가 50m 남짓 되는 좁은 곳이었다. 더구나 이 골목은 이태원역 쪽으로 비탈져 있었다. 사람들은 통제 없이 이곳을 지났다. 이태원 세계 음식 거리에서 이태원로로,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 좁은 골목길에 갑자기 많은 인파가 몰려드니, 지나가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10월 29일 저녁, 이태원에서는 이미 큰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저녁 여섯 시 반부터 112에 압사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신고 전화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사고가 난 시각인 밤 10시20분 경까지 79통의 전화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는 없었고, 이 좁은 골목길에는 이미 양방향으로 통행하려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면적이 200㎡ 남짓한 곳에 2000명의 사람이 들어서면 ㎡당 대략 10명이 들어선 셈이다. 군중 밀도가 이 정도면 사고는 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30여 년 전부터 이미 많이 연구되었다. 높은 산에 눈이 빽빽하게 쌓여가면 어느 순간 눈사태가 일어나듯이 군중 밀도가 ㎡당 10명이 넘어가면 임계점에 도달한다. 액체처럼 골목을 지나가던 군중들이 그 순간부터 마치 고체로 변해 버린 듯 꼼짝달싹 못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난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상전이가 일어나면 충격파가 발생한다고 예견한다. 군중 압력이 단위 길이당 1600N(뉴턴)이 넘어서면, 군중들이 압력에 버텨내려고 서로 밀치면서 마치 난류 같은 동요(動搖)가 발생한다. 동요가 시작되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사람들의 신발이 벗겨지고, 옷이 찢어진다. 그리고 사고는 눈사태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일단 누군가 넘어지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더 빨리 움직이려고 주위 사람들을 서로 밀면서 이미 바닥에 깔린 사람 위로 넘어지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난다.

그렇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훨씬 커진 군중 압력 때문에 서 있던 사람들조차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쓰러져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등 위로 4000N의 힘을 수십 초 동안만 받아도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질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렸으면, 군중의 밀도를 줄일 수 있게 시에서든 경찰에서든 나서서 처음부터 한쪽으로만 통행하도록 반드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어야만 했다. 참사가 예견되었지만, 정부도 경찰도 시민들의 안전에 무감했다.

사고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고를 막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안전을 이해하려면 우선 과학이 삶에 스며들어야 한다. 물리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한계를 벗어나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역대 참사들도 모두 과학을 무시한 탓

1970년 4월 8일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에 세워진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축대 밑에 있던 판자촌을 덮쳤다. 이 사고로 70여 명이 매몰되었고,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6개월 만에 지어진 이 아파트에는 날림공사와 공무원의 부패로 철근 70개가 들어가야 할 기둥에 달랑 5개만 들어있었다. 설계도에 정해진 압력을 무시하였으니 아파트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974년에는 비슷한 일이 서울 서대문구 창천아파트에서도 일어날 뻔했다. 그 당시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이 아파트 1층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필자가 살고 있던 곳 현관문이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아파트를 버티고 있던 기둥 하나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은 부랴부랴 짐을 싸서 대피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피하는 동안 아파트가 기우뚱하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놀란 사람들은 3층에서 뛰어내리며 다리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와우아파트처럼 창천아파트 기둥에도 마땅히 들어있어야 할 철근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나마 무너지기 전에 미리 알고 대피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1995년 6월29일 발생한 서울 강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1995년 6월29일 발생한 서울 강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1994년 10월 21일에는 한강을 잇는 다리 중 하나였던 성수대교가 끊어졌다. 그 사고로 30명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다리 이음새 부분이 용접 불량으로 약해져 있었고, 관리도 소홀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6월 29일에는 강남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최악의 사고였다. 이 참혹한 사고로 희생된 사람이 500명이 넘었고 부상자도 1천명에 이르렀다. 백화점을 건설하면서 기둥마다 16개의 철제 빔을 넣어야 했지만, 그 절반인 8개만으로 기둥을 세웠고 그조차도 건물 바닥을 이을 수 있는 빔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하에 두어야 할 엄청난 무게의 냉각탑을 옥상에 올리면서 건물 바닥이 버틸 수 있는 하중을 훌쩍 넘어섰다. 결국 백화점은 무너져 내렸고,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워낙 사망자가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필자가 알고 있던 이의 가족도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물리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다리는 끊어지게 되어 있고, 건물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설마 괜찮을 거야”라는 말은 물리학에서 통하지 않는다.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기울어진 배에 타고 있던 여학생은 천진난만하게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 어, 그런데 기울기 공식이 어떻게 되지?”

이 말을 들으면서 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사고의 원인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별 이유 없이 배가 침몰하지는 않는다. 사고의 원인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사고의 원인도 대개는 물리학이 정해놓은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과학교육이 바로서야 안전해진다

과학이 삶 속에 녹아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더 안전해진다는 것과 같다. 과학이 삶 속에 녹아들도록 하려면, 과학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물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고등학교 때 물리학은 입시를 앞에 둔 학생들이 가장 꺼리는 과목이 되었다. 물리Ⅱ 는 아예 가르치지 않는 학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일까, 물리Ⅱ를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학 입시가 고등학생들의 모든 걸 좌우하니, 과학이 뒷전으로 밀린다.

사람들은 “과학적”이라는 말을 쓰길 즐기지만, 정작 과학적이라는 말에 과학은 들어 있지 않다. 미신이 판을 쳐도, 음습한 유사 과학이 스며들어도, 그러려니 여긴다. 과학이 우리와 멀어질수록 거짓말이 더욱 힘을 얻는다.

과학이 삶에 스며든다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다. 막연히 “괜찮을 거야”라고 믿는 건 과학이 아니다. 위험이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면, 그 위험을 방지하려고 나서는 것이 과학적이다. 전문가의 말이라며 아무런 의심 없이 따르는 것 역시 과학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우선은 의심하고 사실을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과학적인 태도다.

글쓴이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필자인 김현철 교수는 현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및 프런티어학부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강력의 탄생> (2021)과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 (2022)가 있다. 30년 넘게 핵물리학과 강입자 물리학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고, 지금까지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1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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