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국민대 결정, 진짜 집단지성 결과일까

[어느 이론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집단지성은 오류 가능성 열려있어 ‘악마의 대변인’이 교차검증할 수 있어야 ‘김건희 논문 표절’, 국민대 결정은 잘못

지난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①에 이어 계속

집단지성이 가져온 착오

물리학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펼쳐졌던 집단 지성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오페라(OPERA) 실험은 뮤온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바뀌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CERN의 가속기에서 나오는 뮤온 중성미자는 거의 빛의 속도로 달려 730㎞ 정도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그란 사소 연구소 지하에 있는 검출기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뮤온 중성미자가 드물게 타우 중성미자로 변하기도 한다.

2011년 3월의 어느 날, 오페라 실험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뉴트리노(중성미자)의 속력을 측정했는데, CERN을 떠나 그란 사소에 온 뉴트리노는 빛보다 60나노초 정도 더 빨랐다! 오페라 실험 그룹에서는 6개월 동안 이 기이한 결과를 다시 교차 분석하고 검토했지만, 측정 결과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2011년 9월 23일, 오페라 실험 그룹은 빛보다 더 빠른 뉴트리노를 발견했다고 세상에 알렸다.

이 소식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오페라 실험그룹의 결과를 급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CERN에는 오페라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하는 이카루스(ICARUS) 그룹이 있었다. 이카루스 검출기는 오페라에서 쓰는 것과 조금 달랐다. 이카루스 그룹이 측정한 뉴트리노의 속력은 빛의 속력과 거의 같았다. 다른 두 실험 그룹에서 측정한 값도 이카루스의 결과와 비슷했다. 오페라 실험에서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실수는 단순했다. GPS 수신기와 오페라의 마스터 시계를 잇는 케이블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오페라 실험 그룹은 실수를 인정했다. 2011년 9월에 투고된 논문은 수정됐고 이듬해 7월에 출판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이유

오페라 실험에서처럼 전문가가 모인 집단도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전문가 집단일수록 비슷한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해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클 수 있다. 그래서 똑같은 내용이라도 반드시 다른 집단에서 교차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비슷한 이유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을 새로 시성할 때 그 성인의 결함을 찾아 반론을 제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뒀다. 이 사람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고 부른다.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구현되려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반론을 허락해야만 한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일이다. 국민대학교 교수회는 지난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교수회 회원을 대상으로 “교수회가 자체적으로 김건희 여사 박사학위 논문 검증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에 대해 찬반 투표를 부쳤다. 결과는 반대가 61.5%, 찬성이 38.5% 였다. “학교본부의 김건희 여사 박사학위 논문 재조사위원회 판정 결과보고서와 회의록(익명 전제)을 요청한다”는 안건에서도 반대가 51.6%, 찬성이 48.4% 였다.

국민대 교수회 투표, 집단지성의 결과 아니다

홍성걸 교수회장은 온라인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 교수회 회원들에게 “우리의 결정이 어느 방향이라도 그것은 교수들의 집단 지성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모순이다. 제대로 된 집단지성이었다면, 굳이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콩도르세의 배심원 정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외부나 내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대 교수회에서 내린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집단 지성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잘못된 결정이었다면 집단 지성의 결과가 아니라 한 집단의 편향성 때문에 도달한 결정일 수도 있으니 이 경우에는 집단 지성이 될 수 없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결정을 모두 집단 지성의 결과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지난 9월 6일에 김건희 여사 논문표절 의혹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 대국민 보고회>가 열렸다. 이 검증단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에 적힌 860개의 문장중에서 4분의 1이 넘는 220개가 표절이었다고 언급했다. 국민대학교 교수회장의 말처럼 국민대의 검증이 집단 지성의 결과였다면, 오페라의 실험에서처럼 교차 검증을 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글쓴이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필자인 김현철 교수는 현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및 프런티어학부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강력의 탄생> (2021)과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 (2022)가 있다. 30년 넘게 핵물리학과 강입자 물리학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고, 지금까지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1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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