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이냐 공생이냐...종합상사의 잘못된 선택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기생생물, 숙주 죽지않을 만큼 에너지 뺏아 지나친 숙주 번식 막아...생태계 순환돕기도 한국 종합상사, 왜 중소기업 못키웠을까 포식 아닌 상호 공리관계 선택했어야

작은 먹이감을 쫓는 암사자.
작은 먹이감을 쫓는 암사자.

진화에 가장 중요한 ‘포식과 기생’

생물이 함께 살면 그들 사이 관계는 아래와 같이 6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아래 표를 간단히 설명하면 생물 A와 생물 B는 6가지 상호 작용중 하나의 방식에 의해 진화하고 서로의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상호 이익(상리)과 손해, 또는 중립으로 이루어진 생물 간의 관계는 각자 가장 효과적인 생존법을 택하고 그 방식대로 진화한다.

진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관계는 바로 생물A가 이익을 보고, 생물 B가 손해를 보는 관계다. 즉 ‘포식과 기생’의 상호 관계다. 포식 또는 기생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살아남거나 피해를 입는 관계이기에 생물 A와 B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향을 향해 진화한다. 포식자든 기생자든 살아남기 위해 먹이감이나 숙주를 최대한 이용할 수 밖에 없고, 먹이감이나 숙주 역시 포식자나 기생 생물을 최대한 피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포식과 기생은 생명체가 어떻게 생물 에너지를 얻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포식은 생명체를 죽이면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고, 기생은 생명체를 죽이지는 않고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지칭한다. 상리 공생처럼 각각의 생물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면 좋겠지만 생명의 진화는 상리 공생보다는 포식이나 기생을 더 강력한 동인으로 활용해 진화해 왔다.

대체로 포식자는 피포식자보다 덩치가 크거나 활동력이 많다.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포식자가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고 피포식자가 그 아래에 위치한다. 그래서 에너지는 상위 포식자로 향해 집중된다. 인간은 가장 높은 상위에 있어서 가장 큰 에너지를 활용하는 생물이다.

기생 생물은 피기생 생물에 비해서 크기가 작거나 활동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생하고 있는 한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에 장기간 기생하는 방법을 택해 진화했다. 피기생 생물은 기생 생물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기생 생물이 과도하게 기생하면 피기생 생물, 즉 숙주가 죽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한 수준 이상 과도하게 에너지를 빼앗지 않는다. 숙주에게 피해를 적게 주면 줄수록 기생 생물은 자신이 기생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숙주가 피해를 입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도 진화했다. 다양한 사례에서 기생 생물이 기생을 넘어 공생으로 진화한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생명체는 서로 섞이면서 공존한다

기생은 한 생물에게 살아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명체 내에 기생하는 기생충에서부터 외부에서 잠시 잠깐 기생하는 모기나 파리뿐 아니라 한평생을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겨우살이 같은 기생 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생 생물들이 숙주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생태계다. 기생이 기생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DNA가 섞이면서 서로 진화하고 끝내 살아남는 생명체는 진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생명체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생명체는 서로 섞이면서 살아간다. 단순한 포식이라면 먹이로 잡아먹히는 순간 끝나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숙주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기생 생물이 숙주에 적응해 진화하기도 하고, 숙주가 기생 생물을 받아들이거나 더 피해를 예방하려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기생 식물인 겨우살이의 기생 방식은 재미있다. 숙주 식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면서도 그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겨우살이는 다른 기생생물과 달리 스스로 광합성을 할 줄 안다. 모든 영양분을 숙주에서만 받아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면서 기생한다. 세계적으로 1500종 정도이고, 한국에는 5종 정도의 겨우살이가 있다. 이 생물은 겨울에도 푸른색 잎을 갖고 사는데, 겨우 살아간다고도 하고, 한 겨울에도 잘 살고 있다고 해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숙주인 나무의 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겨우살이.
숙주인 나무의 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겨우살이.

겨우살이가 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것은 가능한 한 기생 숙주의 피해를 주지 않기위한 방안으로 선택한 진화의 결과다. 광합성을 통해 먼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새들이 따먹도록 한다. 그런 다음 새의 똥이 숙주 나뭇가지에 떨어지면 그때 겨우살이 씨앗이 발아해서 새롭게 세력을 넓힌다. 새의 도움이 없으면 다른 식물에 기생을 할 수 없다. 땅 위에서 자라는 식물은 씨앗이 바람에 날리거나 동식물에 의해 이동함으로써 쉽게 확산에 성공하지만 겨우살이는 특정한 나뭇가지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씨앗이 든 새 똥이 가지 위로 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새똥으로 배출되더라도 나뭇가지에 잘 점착할 수 있게 끈끈한 액체가 겨우살이 씨앗에 붙어 있다. 그런 끈끈이가 기생 숙주의 나뭇가지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한다.

겨우살이는 주로 겨울에 열매를 맺는데, 이때는 새들도 먹이가 부족한 때다. 이 식물은 그 때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씨앗을 퍼트린다. 겨울이라 이미 숙주 나뭇잎은 떨어진 상태고, 겨우살이의 열매를 먹게 된 새는 그 보답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똥을 싼다. 이렇게 종의 분포가 성공한다. 새들도 이롭고 겨우살이도 이로운 상호 이익의 관계가 되는 ‘공진화’다.

겨우살이는 생존 과정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큰 나무에 기생하지만 일정 정도 이상 크지 않게 하거나 때로는 나무를 아예 고사시키기도 한다. 큰 나무 아래 하층 식물은 햇볕이 부족해서 잘 자라지 못하는데 기생 식물인 겨우살이가 큰 나무의 잎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이 활동으로 나무를 고사시켜 숲의 생태계가 원활히 돌아가게 한다. 겨우살이가 단순히 기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숲의 진화를 돕는다는 사실은 확인이 됐다.

중소기업과 종합상사의 생태계

경제 시스템에 적용해보면 기생 숙주에 해당하는 것이 대기업이고, 기생 생물은 바로 중소기업이다. 기생 생물은 덩치가 작고 포식 생물은 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포식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 일부를 나누어주는 기생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가 결정된다. 일본과 한국의 종합상사의 역사를 보면 그 관계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종합상사가 탄생한 것은 197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강력히 추진될 때였다. 당시 한국의 중소기업은 우후죽순 태어나고 성장하고 있었지만, 수출 능력이 없었다. 정부는 이들 중소기업의 수출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 종합상사를 모델로 종합상사를 육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종합상사의 역할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역할이 급속도로 축소됐고 이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여전히 일본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한국의 그것은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필자는 종합상사가 중소기업을 포식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상호 협력해 성장하는 동반자로 보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종합상사는 그 아래 수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종합상사가 나눠주는 이익을 공유하며 생존해왔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은행 역할은 물론 시장을 개척하고, 기술개발도 지원해주었다. 때로는 미래 전략까지 세워주자 중소기업들은 종합상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자신들과 함께 가면 중소기업이 망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즉 이익을 나눠주고 위험도 줄여주는 대신, 자신들 밑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가장 좋은 생존법을 보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종합상사는 달랐다. 중소기업들을 포식자의 먹이감으로 봤고 중소기업의 위험이나 이익을 신경쓰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중소기업이 망하더라도 다른 중소기업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했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됐고 종합상사들은 자신의 경영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은 종합상사와 함께 하면 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쌓였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종합상사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소기업들이 종합상사 대신 직접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나섰다. 해외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실패도 많이 했지만 성공한 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종합상사의 그늘을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종합상사를 포식자로 인식할 뿐 함께 공존하며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종합상사를 받쳐주던 중소기업들이 하나하나 떠나자 종합상사는 끝내 기능을 상실했다. 종합상사들은 겨우 자신들이 속해 있는 모그룹의 역할을 위임받아 시장을 개척하는 역할로 기능이 축소됐다.

어찌 보면 중소기업은 종합상사 입장에서 본다면 독자 생존을 못하는 기생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종합상사는 그 점을 알면서도 생존할 수 있게 관계를 만들었다. 중소기업들이 자신의 분야에 기술을 고도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했다. 하지만 한국의 종합상사는 중소기업을 포식의 대상으로 삼았다. 종합상사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남으면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대했다.

포식을 두려워하는 작은 생명체가 스스로 진화해서 포식자의 위협에서 탈출하듯이, 중소기업들은 종합상사의 그늘을 벗어나 독립적인 마케팅과 자금 확보에 나서면서 독자생존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한국의 종합상사들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고,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중소기업들의 선택이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기업 빌딩. 사진=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기업 빌딩. 사진=연합뉴스

혁신벤처를 돕는 종합상사의 새로운 역할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소기업도 숲의 생태계 유지에 역할을 하는 겨우살이처럼 그 나름의 경제 생태계에서 역할을 한다. 즉 기술 벤처들이 시장의 변화를 가장 빨리 읽고 혁신을 이끌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이다. 종합상사 입장에서 보면 그런 혁신기업들이 자신의 사업을 위협한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은 국내에서만 아니라 해외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위협으로 다가온다. 혁신 기술은 기존의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생태계를 끊임없이 활성화시킨다.

중소기업이 혁신기업 역할을 하고, 그 혁신의 조정자로 종합상사가 나선다면 한국은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태계가 생길 수 있다. 일본이 하지 못한 종합상사의 혁신 기능을 한국 종합상사가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종합상사가 혁신 벤처기업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존과 역할을 보장한다면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한국내에서 종합상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초창기의 벤처기업을 지원하여서 훗날 크게 성장한 몫을 서로 나누는 식이 된다면 종합상사의 역할은 새롭게 주목받게 될 것이다.

벤처기업들이 모든 것을 잘할 순 없다. 기술은 자신있지만 해외영업이나 자본조달을 해결 못해 문을 닫는 업체들이 많다. 그런 역부족을 감당할 지원 역할만 맡아줘도 벤처기업들은 성장할 수 있다. 종합상사는 중소기업중 기술력은 있지만 자생력이 부족한 벤처기업들의 혁신을 지원함으로써 충분히 존재감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런 시각 아래 전향적으로 전략을 바꾼다면 한국 경제의 핵심 기업으로 다시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공진화의 혜안을 가진 종합상사가 등장하면 좋겠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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