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숨겨진 진실

[김성재의 국제 정치경제학] 특별히 한국 배제 의도는 없다고 봐야 ‘조 맨친’을 위한 IRA 전기차 세액공제 조항 추가 입법 없을듯...백악관 상대로 ‘로비’를

왼쪽부터 현대차의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 사진=현대차/ 연합뉴스
왼쪽부터 현대차의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 사진=현대차/ 연합뉴스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시행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기차(EV)에 대한 세액공제 조항 때문이다. 기존 세법에서는 어떤 자동차 회사의 총 전기차 생산량이 20만 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새로 생산된 거의 모든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인정했다.

값비싼 배터리를 사용함으로써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불리한 전기차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IRA는 전기차 생산대수에 대한 제한을 없앤 대신에 새로운 까다로운 다수의 조건을 도입해 전기차에 대한 기존의 세액공제 대상을 대폭 줄여 놓았다.

우선, 최대 7500달러까지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전기차가 미국을 포함한 북미에서 조립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가운데 여기에 해당하는 차종은 26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슬라, GM, 포드, 리비안 등 미국 회사가 생산한 차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우디, BMW, 닛산, 볼보의 다섯 차종도 지원 대상에 포함돼 있다.

미국 전기차 제조공장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전기차 제조공장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물론 미국에 전기차 생산기지가 없는 현대나 기아차,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차는 여기에서 제외된다. 그러자 유럽연합(EU)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차별금지 조항에 위반된다면서 즉각 반발했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 정부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전기차 지원 조항, 한국차 배제 의도?

그런데 EU와 한국의 요청이 이른 시일 내에 받아들여질지 현재로서는 의구심이 큰 상태다.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IRA의 전기차 지원 조항을 좀 더 세밀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최근 현대, 기아차가 미국에서 잘 팔리니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실제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를 보면 현대차가 잘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쟁 차종에 비해 가격 대비 디자인이 우수하고 내구성도 현저히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IRA의 까다로운 배터리 요구 사항을 보면 이 법안이 단순히 외국차, 특히 한국차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첫째로, 2024년부터는 리튬, 니켈과 같은 주요 배터리 소재의 40% 이상이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 이내에서 처리되거나, 북미 지역에서 재처리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2027년까지 이 비율이 80%까지 높아지도록 규정한다.

둘째로, 배터리 부품 소재의 최소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제조되거나 조립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29년까지 100%에 이르러야 한다. 이는 물론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배터리 소재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처리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조항을 그대로 준수할 수 있는 미국 내 전기차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거기다 세액공제가 가능한 전기차에 대한 가격 규제도 강화했다. 세단의 가격은 5만 5천 달러, 트럭·밴·SUV 가격은 8만 달러가 넘으면 안 된다. 중고 전기차 값도 2만 5천 달러 이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테슬라의 일부 상위 차종과 리비안의 다수 차종이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 이 규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 소득 규제도 포함시켰다. 1인 가구는 연간 소득이 15만 달러 이하, 부부 합산 30만 달러가 넘으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당연히 소득 불균형 해소를 목표로 한 조항이다. 이 조항도 당연히 고가의 럭셔리 전기차 차종에 불리하다. 현대, 기아차의 주요 구매층은 대부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된다.

BBB법이 IRA법으로 바뀌기까지

그런데 이렇게 세부 조항을 들여다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IRA의 전기차 지원이 목표로 하는 것이 단순히 기후변화 대응과 미국내 제조업 부활 뿐일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주된 타깃으로 한다면 지원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노린다면 배터리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지원 대상을 오히려 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요구 상항이 포함된 이유를 보려면 IRA 입법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IRA는 1백%(퍼센트) 만족할 만한 법안이 전혀 아니다. 바이든은 우여곡절 끝에 트럼프를 꺾고 백악관을 차지한 뒤 자신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내준 진보진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뉴딜에 버금가는 매우 의욕적인 국정계획을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발표했다.

첫째는 고용촉진플랜(American Jobs Plan)이었다. 산업의 근간을 재편하고 고용의 질을 개선해 경제 헤게모니를 회복하겠다는 그랜드플랜이었다. R&D 투자를 늘려 반도체-전기차-배터리-바이오 등 첨단분야에서 넘버원의 경쟁력을 탈환하고 인프라 투자를 통하여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EV와 배터리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포함했다.

둘째는 가족부흥플랜(American Families Plan)이었다. K-12(유치원에서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2년간 Pre-K교육까지 확대하고 전문대학(Community College) 학비 감면까지를 목표로 했다. 육아 보육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 양육비용 때문에 고통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윽고 3조5천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다 나은 사회 재건법안(BBB, Build Back Better)’ 법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몇몇 진보적 조항에 손질이 가해지면서 규모가 2조2천억 달러로 줄었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 인상도 고려했다.

문제는 상원이었다. 보수적인 애리조나 출신의 시네마(Sinema) 의원이 증세안에 반발했다. 무엇보다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의 조 맨친(Joe Manchin) 의원도 지지를 철회했다. 애팔래치안 기슭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석탄과 셰일가스 채굴 이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보수적 정치 지형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민주당 초당파 '조 맨친' 의원.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초당파 ‘조 맨친’ 의원.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미 상원은 보수와 진보가 의석을 정확히 절반씩 나눠 가지고 있었고 공화당 전체가 바이든의 진보 노선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태였다. 한 명의 민주당 의원이라도 이탈하면 법안 통과가 무산되는 구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든 법안에 공공연히 반대 입장을 보이는 조 맨친은 민주당이 넘어서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공화당과는 거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민주당은 조 맨친 한 사람을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렸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은 조 맨친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기존의 BBB 법안이 대폭 수정되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란 이름으로 상정되었다. 규모도 7370억 달러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IRA는 바이든에게는 큰 승리를 의미했다. 불완전하나마 자신의 진보적 어젠다를 추진할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법안을 민주당이 패배할지도 모를 중간선거 이전에 통과시키려다가 몇몇 무리한 조항들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가 WTO나 FTA와 상충되는 전기차 세액 공제 규정이다.

빈틈은 의회보다는 백악관에 있다

그렇다면 기존에 자신의 지역구에 필수적인 화석연료 산업 지키기를 고수했던 조 맨친은 왜 변심했을까가 의문이다. 한 가지 실마리를 던지는 것이 웨스트 버지니아의 배터리 산업 유치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미 연방 에너지장관인 그랜홀름이 웨스트 버지니아를 방문해 조 맨친과 나란히 리튬 배터리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광산 등 노조 대표도 참석했다.

또한, 스팍스(Sparkz)라고 하는 벤처회사가 350명의 신규채용을 시작으로 기가팩토리 배터리 공장을 착공하겠다고 거들었다. 만약 배터리 산업 진흥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웨스트 버지니아는 환경에 유해한 석탄 채굴 산업에 의존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 첨단 배터리의 요람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게 된다. 이는 당연히 조 맨친에게는 큰 정치적 선물이다.

바로 이 정치적 선물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조 맨친 의원이 IRA의 복잡한 세액 규제 조항에 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조항이 조 맨친과 시네마 의원의 강력한 요구로 포함됐다면 향후 입법으로 그 규정을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반대하는 한 법안의 상원 통과가 무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악관이 법안 통과를 위해 마지못해 이들의 의견을 수용했지만 그 규정에는 전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면, 그 규정을 실제로 집행해야 할 재무부와 국세청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즉, 모호한 법 규정의 해석을 최대한 전기차 생산업체에 유리하도록 시행 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재무부뿐만 아니라 교통부, 에너지부와 환경부의 입장도 중요하다. 결국 졸속으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논리를 개발하고 백악관과 재무부에 의견을 개진해 생산업체의 입장을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기업들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로비를 벌였다 한다. 보다 넓은 네트워크의 구축과 IMF 외환위기 이후 축소한 싱크탱크에 대한 투자가 시급한 이유다.

글쓴이

김성재 미 가드너웹대 교수

김성재 미 가드너웹 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금사와 예금보험공사에서 12년 간 근무했다. 학업을 재개해 코넬대와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파이낸스)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가드너웹 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