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이 경제위기에 던지는 화두

[김성재의 국제 정치경제학] 금융위기 연구한 통화경제학자 첫 영광 다이아몬드·디빅, 중앙은행의 역할 연구 버냉키 “은행시스템 지켜야 공황 안빠져” 한국에 대한 교훈, 실물 금융 인재 확보를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벤 버냉키 전 미 연준의장(왼쪽부터),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디빅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사진= 연합뉴스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벤 버냉키 전 미 연준의장(왼쪽부터),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디빅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사진= 연합뉴스

1969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한 노벨 경제학상은 대개 전통적인 분야인 미시경제학자나 거시경제학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에는 계량경제학자인 로버트 엥글(Engle)과 클라이브 그레인저(Granger)에게 노벨상이 주어졌고, 대니얼 카네먼(Kahneman)과 버논 스미스(Smith)와 같은 행동 경제학자에게도 수여의 폭이 넓어졌다.

2013년 이후에는 유진 파마(Fama)와 로버트 실러(Shiller) 그리고 리처드 세일러(Thaler)와 같은 재무경제학자도 노벨상 수상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전통적 뱅킹(banking)이나 순수 통화경제학자(monetary economists)에게 노벨상이 수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세 명의 뱅킹∙통화경제학자에게 주어진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은행은 경제에서 무슨 역할을 하나

우선 더글러스 다이아몬드(Diamond)와 필립 디빅(Dybvig)은 은행의 역할에 대한 뱅킹 모델 연구의 선구자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왜 은행에 예금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대체 금리도 형편없이 낮은데 왜 사람들은 여윳돈이 있을 때 우선 은행에 돈을 맡길까?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금은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 인출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예금자에게 이처럼 편리한 유동성(liquidity)을 제공함으로써 예금자의 편익을 높인다. 은행은 또한 이렇게 예수한 돈을 보다 만기가 긴 장기 자산에 투자한다. 실질적 만기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예금에는 낮은 이자를 지급하는 반면, 만기가 길어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대출과 같은 장기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예대금리차만큼 수익을 얻게 된다.

은행은 또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개인이 직접 제3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이렇게 다수의 가계로부터 예금을 받아 보다 위험도가 높은 장기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은행은 위험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자산의 성질을 변형시키는 역할(asset transformation)을 수행한다.

이렇게 은행이 돈이 남아 저축을 해야 하는 가계와 돈이 필요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차입자를 연결(channeling)하는 역할을 순조롭게 수행하게 되면, 경제 내 자금이 효율적으로 투자되면서 경제가 원활한 성장을 보이게 된다. 물론 이렇게 은행이 문제없이 자금의 중개자(intermediary) 역할을 다하려면 예금자의 은행에 대한 신뢰(trust)가 담보되어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빼는 이유는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은행에 대한 예금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예를 들어 A라는 은행이 거액의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어 자본금을 잠식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예금자들이 은행 창구로 몰려들어 돈을 인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은행이 보유한 현금에는 한도가 있어 예금을 바로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은행 창구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대기하는 예금자들의 줄이 길어지고 마침내 은행 문을 지나 보도에까지 길게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이 긴 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또 소문을 내면서 더 많은 예금자들이 은행 창구로 몰려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예금자가 돈을 찾으려고 한꺼번에 몰려들어 ‘뱅크런(bank run)’이 발생하면 은행은 부도가 날 수밖에 없다.

1932년 4월 대공황이 한창일 때 아메리칸 유니온 뱅크에서 일어난 뱅크런 사태. 사진=위키피디아
1932년 4월 대공황이 한창일 때 아메리칸 유니온 뱅크에서 일어난 뱅크런 사태. 사진=위키피디아

대출과 같은 은행의 투자 자산은 장기 자산이므로 당장 현금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은 보유한 자산을 헐값에 투매할 수밖에 없다. 그 여파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다른 은행의 재무상태도 또한 악화한다. 결국 뱅크런이 확산되면서 뱅크 패닉(panic)으로 이어진다.

“예금자 보호 정책 펴야”

다이아몬드와 디빅은 뱅크런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특히 예금자보호(deposit insurance)를 통해 은행이 부도가 날 경우에 예금의 지급을 정부가 보증함으로써 뱅크런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급전이 필요한 은행에 단기 자금을 빌려주는 재할인창구(discount window)도 뱅크런을 막는 유효한 방안이 된다.

이처럼 다이아몬드와 디빅은 현대 뱅킹 이론의 근간이 되는 모델을 발표했지만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어떻게 금융위기로 이어지는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은행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진행하지 않았다.

1929년 대공황은 어떻게 깊어졌나

올해 노벨상의 또 다른 수상자인 벤 버냉키(Ben S. Bernanke)는 이러한 금융위기와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버냉키의 첫 번째 관심은 1930년대 대공황이었다. MIT 박사 과정 재학 중에 읽은 밀튼 프리드먼(Friedman)의 대공황 당시 연준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큰 감명을 받으면서부터 통화경제학에 깊이 심취하였다.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대공황의 이유를 1929년 가을의 주가 대폭락과 그 이후의 자연재해 또는 수입관세의 대폭 인상에서 찾는 반면, 프리드먼은 대공황이 깊어진 연유가 연준의 통화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즉,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를 보이는 상태에서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면서 결국 대공황 수준까지 경기가 가라앉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29년 주식 시장의 버블이 최고조에 이르자 금리 인상을 지속하던 연준은 그해 가을 주가가 대폭락하고 이로 인해 경제가 심각하게 흔들리자 실제로는 통화정책의 방향을 180도 수정해 금리를 급격하게 인하했다. 그렇다면 왜 프리드먼은 금리 인하에 나선 연준에 대해 “경기 부양을 해야 할 때에 통화 긴축에 나서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비난하는 것일까?

그 오해의 근저에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5% 인하했다고 하더라도 물가가 7% 하락해버리면 실질금리는 오히려 2% 상승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빚을 낸 사람은 물가가 하락함에도 당초 빌린 채무액을 그대로 갚아야 하므로 채무자의 실질 부채가 커지고 구매력이 감소하게 된다.

결국 여기저기서 채무자가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은행의 부실채권도 덩달아 늘어난다. 위기감을 느낀 은행이 자산 매각에 나선다. 이런 현상이 나선형 효과를 일으키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진다. 은행이 보유한 담보 자산의 가액도 따라서 감소하면서 은행은 더는 대출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은행이 여신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기업이 도산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실업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실제 대공황 당시 실업률은 길지 않은 기간에 25%로 치솟았다. 네 가구 중 하나가 실직을 했다. 경제는 침체를 넘어 실질총생산이 29%나 감소하는 공황을 맞았다. 버냉키는 이렇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디플레이션과 은행시스템의 붕괴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금융위기 때는 은행시스템 붕괴 막아야”

그는 디플레이션이 매우 파괴적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경기 침체로 은행의 여신 활동이 둔화되면 중앙은행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대출로 이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그의 혜안은 일본의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연구한 덕택이기도 했다.

장기간 경제성장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의 누적으로 형성된 부동산 버블이 1990년대 초에 터지자 일본 경제는 급격한 속도로 활력을 잃었다. 일본은행(Bank of Japan)이 채권을 사들이면서 엄청난 돈을 은행권에 쏟아부었지만 디플레이션은 잡히지 않았고 경기도 회복세를 타지 못했다.

여기서 버냉키는 평소 인플레이션 타깃을 정하고 엄격히 물가를 관리해 자산 버블의 형성을 막아야 하지만, 일단 자산 버블이 형성된 이후에는 버블이 터지지 않도록 정책 당국이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막 연준 의장에 취임했던 2006년 미국 부동산 시장은 최악의 버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헬리콥터 벤’, 왜 경기회복 빨리 못시켰나

앨런 그린스펀(Greenspan)이 이끌던 연준은 2003년 6월 1%를 바닥으로 기준금리를 0.25%씩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있었다. 2006년 버냉키는 금리를 세 차례 더 인상해 5.25%에 이르게 했다. 그 여파는 1년여의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 고금리를 버티지 못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들이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했고 집이 차압되면서 주택시장이 붕괴됐다.

2008년 들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퍼져 나갔다. 이로 인해 경기가 급랭하자 우선 버냉키의 연준은 금리를 0% 부근으로 내릴 수 있는 선까지 내렸다. 그리고 국채와 모기지채권(MBS)을 공격적으로 매수했다. 이로 인해 1조 달러에 미치지 못하던 연준의 자산 보유 규모가 그의 재임 기간 중 4조 달러를 넘어섰다.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서 시민들이 시위하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서 시민들이 시위하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또한, 타깃을 정하는 핀셋 정책을 통해 유동성이 경색된 곳에 여신을 지원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돈을 퍼붓는다 하여 ‘헬리콥터 버냉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기 회복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연준이 채권을 매수해 은행의 지준 계좌로 현금을 쏘아 주었지만 금융위기 당시 홍역을 치른 은행들이 빠른 속도로 대출을 늘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게 얻는 교훈은

버냉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으로 일했고 2002년부터 연준 이사로 재임했기 때문에, 전임 연준 의장이던 그린스펀과 함께 주택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연준 의장이 된 지 2년 후 터진 금융위기 과정에서 보여준 우유부단함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리먼 브라더스 처리 과정 등에서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연준 의장이나 재무장관들처럼 월가 경력이 없이 학계와 관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재임 중 디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경기 부양에 경도된 정책으로 ‘양적완화’를 몇 년이나 지속하면서 긴축으로의 정책 선회가 너무 늦었다. 이로 인해 연준 자산 규모의 정상화 시기를 놓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시 자산 규모를 줄여 놓지 못한 것이 결국 현재 겪고 있는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선 은행 여신의 증가가 초래할 부작용인 자산 시장 거품에 대한 경계, 일단 형성된 가격 버블의 현명한 관리, 금융 경색이 나타났을 때에 시스템 위협으로 번지지 않도록 면밀한 주시, 금융 현장을 잘 아는 실물 경력이 있는 인재의 등용과 이를 위한 금융계와 관가의 인력 교환 등으로 요약된다 하겠다.

글쓴이

김성재 미 가드너웹대 교수

김성재 미 가드너웹 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금사와 예금보험공사에서 12년 간 근무했다. 학업을 재개해 코넬대와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파이낸스)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가드너웹 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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