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후 미국 정치...제2의 오바마 찾아라
[김성재의 국제 정치경제학] 민주, 낙태반대· IRA법 ‘진보 어젠다’ 충실 공화당 패했지만, 대선후보 디샌티스 얻어 민주당 이겼지만, 디샌티스 대항마 못찾아
‘진보적 어젠다’ 버리지 않았던 바이든
현재까지도 최종 집계가 끝나지 않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신승을 거두었다. 예상대로 하원 과반수를 공화당에 빼앗겼지만 상원에서는 다수당 지위를 지켰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까지도 민주당의 참패가 전망되었던 터라 그 결과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민주당은 어떻게 패배를 면할 수 있었을까? 중간선거 결과가 향후 정치 일정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2020년 가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현 대통령이 맞붙었던 대선 토론장으로 돌아가 보자.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2차 피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신중히 공공보건을 책임져야 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확진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것만 해도 대형 악재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트럼프는 입원 중 병원을 나와 자동차 퍼레이드를 벌이고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강인한 면모를 과시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런 행위는 위기에 처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무책임하고 만용에 가득 찬 무모한 것으로 비쳤다.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던 중도층은 트럼프를 외면했고 그의 선거 패배는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이 뱉은 한 마디가 보수층을 다시 강하게 결속시키며 선거를 초박빙으로 끌고 갔다. 그것은 바로 ‘화석 연료로부터 이탈(transition away)’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까지 바이든의 최고 무기는 중도층을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이었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노조의 이해를 대변해 수십 조의 자산을 가진 블룸버그와 같은 수퍼리치와 자신을 차별화했고 합리적인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면서 각종 진보적 어젠다와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었다. 이런 중도진보의 이미지에 흑인 유권자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면서 민주당의 대선 프라이머리에서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석 연료로부터의 이탈’ 선언은 바이든이 에너지 정책에서만큼은 진보의 색깔을 뚜렷이 하겠다는 것으로, 중도층에 대한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오바마가 일으켰던 셰일가스 산업의 존폐 여부가 달린 중요한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미 전국에 걸쳐 수십 개 주에 자리 잡은 수십 만 명의 일자리와 투자자의 수익에 결정적 악영향을 끼칠 선언이기도 했다.
힘겹게 트럼프를 이긴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진보적 어젠다를 더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 하에 대학 등록금 면제, 학자금 대출 탕감, 육아 보조금 확대 등 사회보장 지출의 증대에 골몰했다. 하지만 그런 바이든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의외로 민주당내 중도파 의원들이었다. 석탄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의 조 맨친과 전통적으로 보수 색채가 짙은 애리조나의 키어스튼 시네마 상원의원이 그들이었다.
연방 상원 의석이 50대 50으로 양당 간에 양분된 상태에서 민주당 어젠다에 반대하는 이들의 파워는 의원 개인의 그것을 훨씬 넘어섰다. 우선 시네마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과 옐런 재무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법인세 인상을 좌절시켰다. 소득 편중 해결과 물가 안정을 위한 진보층의 전통적 증세 카드를 무산시켜버렸다. 그 충격은 컸다. 조 맨친 의원은 아예 대놓고 바이든이 추진하던 상당수의 진보적 어젠다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들에 발목을 잡힌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초기임에도 핵심 정책을 입법화할 수 있는 숱한 기회를 날려버려야 했다. 당연히 그의 지지도도 트럼프와 비견될 정도로 바닥을 기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크게 추락했다.
한편, 1980년대 이후 다시 보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미 경제를 강타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두 자릿수로 올랐고 한 때 갤런당 2달러면 충분했던 자동차 휘발유 가격이 5달러를 넘어섰다. 공화당은 이 모든 것이 바이든 때문이라며 공세에 열을 올렸다. 바이든 사진 밑에 ‘내가 이걸 했지’라는 ‘I Did That’ 스티커가 불티 나게 팔렸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도 변심했다. 2021년까지 양적완화(QE)로 돈을 풀면서 바이든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했던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2022년이 되자 초강력 매파로 변모해 자이언트 스텝의 금리 인상을 주도했다. 어영부영하다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했다고 영원히 욕을 먹고 있는 1970년대 아서 번즈 전 의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연준이 0.25% 부근에 있던 기준금리를 몇 달만에 4%로 올리자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했다. 주식시장은 20%가 넘게 떨어지면서 전통적 약세장으로 복귀했다. 채권시장에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까지 점증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시그널은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를 예고하고 있었다.
민주당 승리 요인 5가지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겼다. 인생 자체를 엄청난 고난에서 역전극으로 장식해 온 바이든은 또 한 번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 필자가 꼽는 가장 중요한 승리 요인은 ‘전략비축유(SPR) 방출’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비상상태에 대비해 남부 해안 루이지애나와 텍사스 네 곳의 땅 속 동굴에 저장해 왔던 원유인 비축유를 물가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방출했다. 최근에는 그 저장된 비축유 규모가 2020년 대비 40%나 줄었다.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비상시를 대비한 전략비축유를 그렇게 내다 쓰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그런데도 바이든은 주저하지 않았다. 시종 비축유 방출 속도를 높이며 휘발유 가격을 잡는 데 성공했다. 가을 들어 휘발유 가격은 연일 하락해 유권자의 인플레이션 피로도를 확 줄여주었다.

선거 승리의 둘째 요인은 바이든의 끈질기지만 보이지 않는 복지정책 추진의 효과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입법을 통하지 않고 시행령을 통해 추진할 수 있는 각종 정책을 동원해 저소득층과 젊은 층을 지원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학자금 대출 감면이었다. 대부분 연방정부가 직접 대출한 것이라 크게 이목을 끌지 않고 신속하게 대출 감면에 나설 수 있었다.
셋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환경 보호 정책을 대폭 강화한 것이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의 호감을 샀다. IRA는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한국과 유럽 자동차 생산국의 반발을 사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이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 지원 위주로 바꾼 획기적인 법안으로 평가된다. 당초 이 법안에 반대하던 조 맨친 의원이 막판에 극적으로 찬성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자산을 안겨주었다.
넷째, 바이든 행정부가 크게 지원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돌아간 점도 바이든의 지도력을 돋보이게 했다. 거기에다 러시아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미국의 경제 상황도 유권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보수진영의 자살골이 공화당으로부터 중도층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트럼프 재임 시절 색깔 위주로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면서 보수의 일방적 우위로 바뀐 연방대법원의 편향적 판결이 공화당에게는 독이 되었다. 무엇보다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리를 인정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Roe v. Wade) 사건의 판결을 뒤집으면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이 일었다.
보수적·종교적 관점에서는 낙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데이트 앱으로 이성 친구를 만나 스스럼없이 사랑을 나누는 젊은 층에게 낙태금지는 너무나 시대 낙후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보수진영 약화에 일조한 트럼프가 성급하게 전면에 등장한 것도 악재였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회를 공격했던 끔찍한 사건의 잔영이 선명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트럼프가 선두에 서서 선거를 지휘하면서 공화당 패배의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트럼프의 등장에 위기감을 온몸으로 느낀 젊은 층과 진보층이 대거 선거에 나서고 거기에 중도층마저 공화당을 외면하면서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신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공화당에 던져지는 희망의 빛
선거 패배 이후 미국 보수진영은 크게 분열하고 있다. 그간 공화당을 지배했던 트럼프의 매직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공화당에는 희망의 빛도 동시에 비쳤다.
캘리포니아, 텍사스에 이어서 선거인단 숫자가 세 번째로 많은 대형 주이면서 대선 풍향을 좌우하는 스윙 스테이트이기도 한 플로리다가 온통 공화당 상징인 붉은색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레드 웨이브’를 이끈 것은 디샌티스 주지사였다. 플로리다 유권자들은 전통적인 강경 보수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이지적이며 군 복무 경험까지 갖춘 디샌티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자 그간 트럼프 쇼에 지친 미국의 보수층도 서서히 디샌티스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 한번 패배한 정객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 대선 특유의 정서에다 플로리다라는 강력한 지지기반이 더해지면서 디샌티스의 대선 가도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간선거에서 이겼지만 민주당에는 디샌티스에 견줄만한 대항마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출마를 선언한다 해도 고령에다 유약한 이미지가 유권자의 선택을 주저하게 할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도 눈에 띌만한 정치적 자산을 쌓는데 실패했다. 결국 향후 정치 지형은 민주당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지만 실재하는 인물난이 진보진영의 재집권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연 민주당이 제2의 오바마를 발굴해 집권을 연장할 수 있을지 중간선거 이후 펼쳐질 대선 정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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