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씨들’ 소설에서 드라마로, 여성 서사의 진화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원작에서 ‘여성 중심 서사’ 틀 그대로 따와 ‘여성 연대’로 정서경식 권선징악의 구현

tvN드라마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사진=tvN
tvN드라마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사진=tvN

소설에서 드라마로 ‘재매개’

소설 <작은 아씨들>은 오랜 시간 다양한 매체의 수많은 작품으로 ‘재매개’(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상 양식,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을 차용하거나 나아가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편집자주)됐다. 작은 아씨들이 처음 쓰여진 19세기, 당시로서는 진취적이고 다소 파격적으로 보였던 네 자매의 인생 여정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찾아 떠나는 자매들의 모습에 당시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 소설은 네 자매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매우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그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재까지 명작 소설로 꼽히며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2019)' 스틸컷
영화 ‘작은 아씨들(2019)’ 스틸컷

지금까지 재매개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에 기반하여 인물들의 성격이나 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져온 게 대부분이었다. 소설을 즐겼던 독자들에게는 상상 속 작은 아씨들의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재연되어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소설뿐만 아니라 재매개된 작품들에 대한 해석도 다양했는데, 시대상에 따라 여성 서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의 재매개와는 결을 달리한다. 물론 소설 <작은 아씨들>속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 인물 관계의 구성 등에서 다양한 모티브를 따왔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여성 중심 서사’라는 이야기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왔고, 더 나아가 이 부분을 드라마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세 자매가 의도치 않게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자매들의 삶과 역경이라는 소설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인물의 디테일을 다르게 각색했다.

자매 중 첫째 인주는 소설 속 ‘메그’처럼 책임감이 강하지만 가난한 상황을 불평하고 부자들을 동경하는 허영심을 가진 캐릭터. 사건을 통해 부자들의 실체를 깨닫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둘째 인경은 소설 속 ‘조’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가난 때문에 현실에 타협하기보다는 정의를 택하는 인물이다. 자매 중 셋째는 모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것으로 그려졌고, 드라마 속 막내 인혜는 넷째 ‘에이미’처럼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 화가를 꿈꾸며 성공하는 인물이다. 이 밖에도 대고모-고모할머니, 로렌스씨-이웃 할아버지, 손자 로리-종호 등 인물 관계 등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구성했다.

여성들로 채워진 사건의 기승전결, 그리고 엄마의 부재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여성 중심 서사로 구분되는 이유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도 여성, 이에 대적하는 빌런도 여성, 이들을 조력하는 인물은 남성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작품들이 여성들을 남성의 조력자 또는 방관자로 그렸던 것에 반해 <작은 아씨들>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 중심 서사를 완성해 나갔다. 드라마는 주인공 세 자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여성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건을 만들고 또 풀어나간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세 자매 인주, 인경, 인혜가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 자매의 불행의 시작은 무능력을 넘어 책임감까지 상실한 부모, 그 중에서도 엄마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성인이 된 두 자매가 가난에서 벗어나 동생 인혜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엄마는 도움은 커녕 사사건건 방해 요소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망가는 엄마, 그 엄마의 부재로 말미암아 세 자매의 불행은 시작된다.

이 세 자매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원상아 관장이다. 모든 악은 원상아 관장으로 귀결되는데, 그녀가 악인으로 거듭난 이유 역시 엄마의 부재다. 범죄를 눈감을 수 없었던 그녀의 엄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딸과의 관계를 저버렸고, 이는 원상아를 괴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는 원상아의 딸 효린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는데, 부자로 얼핏 넘치는 사랑을 받는 듯 보이지만 효린은 천애고아나 다름없다. 또 핵심 사건에 휘말려 죽음에까지 이른 엄마의 복수를 위해 사건의 도화선이 된 진화영까지.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은 사랑의 결핍과 엄마의 부재, 그로 인한 나비효과이다. 사건의 원인, 과정, 결과 모두 여성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여성 중심 서사, 그 중에서도 ‘엄마의 부재’라는 핵심 구심점으로 관통한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의 연대를 통한 악인의 처단이라는 ‘작가 정서경식 권선징악’을 잘 구현해냈다. 가난하지만 진실과 정의를 택한 세 자매의 고군분투가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700억원의 애매모호한 출처와 이를 나누어 가진 세 자매의 모습이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만, 이는 권선징악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필요했던 ‘상’(賞)쯤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이현민은 대중문화평론가, 한중 콘텐츠 연구자로 로앤컬쳐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북경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 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입체적 한중 대중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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