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씨들’ 소설에서 드라마로, 여성 서사의 진화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원작에서 ‘여성 중심 서사’ 틀 그대로 따와 ‘여성 연대’로 정서경식 권선징악의 구현
소설에서 드라마로 ‘재매개’
소설 <작은 아씨들>은 오랜 시간 다양한 매체의 수많은 작품으로 ‘재매개’(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상 양식,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을 차용하거나 나아가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편집자주)됐다. 작은 아씨들이 처음 쓰여진 19세기, 당시로서는 진취적이고 다소 파격적으로 보였던 네 자매의 인생 여정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찾아 떠나는 자매들의 모습에 당시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 소설은 네 자매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매우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그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재까지 명작 소설로 꼽히며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재매개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에 기반하여 인물들의 성격이나 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져온 게 대부분이었다. 소설을 즐겼던 독자들에게는 상상 속 작은 아씨들의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재연되어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소설뿐만 아니라 재매개된 작품들에 대한 해석도 다양했는데, 시대상에 따라 여성 서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의 재매개와는 결을 달리한다. 물론 소설 <작은 아씨들>속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 인물 관계의 구성 등에서 다양한 모티브를 따왔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여성 중심 서사’라는 이야기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왔고, 더 나아가 이 부분을 드라마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세 자매가 의도치 않게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자매들의 삶과 역경이라는 소설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인물의 디테일을 다르게 각색했다.
자매 중 첫째 인주는 소설 속 ‘메그’처럼 책임감이 강하지만 가난한 상황을 불평하고 부자들을 동경하는 허영심을 가진 캐릭터. 사건을 통해 부자들의 실체를 깨닫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둘째 인경은 소설 속 ‘조’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가난 때문에 현실에 타협하기보다는 정의를 택하는 인물이다. 자매 중 셋째는 모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것으로 그려졌고, 드라마 속 막내 인혜는 넷째 ‘에이미’처럼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 화가를 꿈꾸며 성공하는 인물이다. 이 밖에도 대고모-고모할머니, 로렌스씨-이웃 할아버지, 손자 로리-종호 등 인물 관계 등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구성했다.
여성들로 채워진 사건의 기승전결, 그리고 엄마의 부재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여성 중심 서사로 구분되는 이유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도 여성, 이에 대적하는 빌런도 여성, 이들을 조력하는 인물은 남성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작품들이 여성들을 남성의 조력자 또는 방관자로 그렸던 것에 반해 <작은 아씨들>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 중심 서사를 완성해 나갔다. 드라마는 주인공 세 자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여성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건을 만들고 또 풀어나간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세 자매 인주, 인경, 인혜가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 자매의 불행의 시작은 무능력을 넘어 책임감까지 상실한 부모, 그 중에서도 엄마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성인이 된 두 자매가 가난에서 벗어나 동생 인혜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엄마는 도움은 커녕 사사건건 방해 요소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망가는 엄마, 그 엄마의 부재로 말미암아 세 자매의 불행은 시작된다.
이 세 자매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원상아 관장이다. 모든 악은 원상아 관장으로 귀결되는데, 그녀가 악인으로 거듭난 이유 역시 엄마의 부재다. 범죄를 눈감을 수 없었던 그녀의 엄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딸과의 관계를 저버렸고, 이는 원상아를 괴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는 원상아의 딸 효린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는데, 부자로 얼핏 넘치는 사랑을 받는 듯 보이지만 효린은 천애고아나 다름없다. 또 핵심 사건에 휘말려 죽음에까지 이른 엄마의 복수를 위해 사건의 도화선이 된 진화영까지.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은 사랑의 결핍과 엄마의 부재, 그로 인한 나비효과이다. 사건의 원인, 과정, 결과 모두 여성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여성 중심 서사, 그 중에서도 ‘엄마의 부재’라는 핵심 구심점으로 관통한 <작은 아씨들>은 여성들의 연대를 통한 악인의 처단이라는 ‘작가 정서경식 권선징악’을 잘 구현해냈다. 가난하지만 진실과 정의를 택한 세 자매의 고군분투가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700억원의 애매모호한 출처와 이를 나누어 가진 세 자매의 모습이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만, 이는 권선징악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필요했던 ‘상’(賞)쯤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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