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위험한 금리, 대안은 없을까
금리는 위험 계산인가, 위험 생산인가? 목적기반 기본금융을 제안한다
- 위험 가산금리의 악순환 대통령과 정책실장이 지적했듯, 저신용자에게 부과되는 고금리는 위험을 관리하기는커녕 차주의 상환 능력을 파괴해 부실 위험을 더 키우는 ‘위험 생산 장치’가 되고 있다.
- 신용 중심에서 ‘목적 중심’으로 누가 빌리는가(신용점수)만 따지는 행정 편의적 심사에서 벗어나, 생계·의료·주거 등 삶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우선하여 심사하는 대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 회복을 위한 기본금융 설계 생활 필수 자금에 대해 단일 저금리를 적용하고, 직접 지급 및 장기 분할 상환 등의 정교한 위험 관리 수단을 도입하여 금리를 배제의 문턱이 아닌 ‘재기의 통로’로 재설계해야 한다.
금리는 정말 위험의 가격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최저신용자에게 높은 금리가 부과되는 현실을 두고 “어려운 사람 대출이 더 비싸다. 너무 잔인하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 김용범 정책실장 역시 같은 질문을 더 근본적으로 밀고 갔다.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합니까? 거꾸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질문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다. 현행 금융질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온 전제, 곧 신용이 낮을수록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리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기존 금융논리는 이에 대해 금리는 ‘위험의 가격’이라고 답한다. 돈을 갚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상환 가능성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것은 금융의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그럴듯하다. 위험은 존재하고 금융기관은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 설명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위험 가산금리는 개별 차주의 상환 가능성을 정밀하게 계산한 결과라기보다, 사실상 그런 정밀 계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심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자동 선별장치’에 가깝다.
차주의 생활조건, 자금의 용도, 소득 회복 가능성, 상환구조를 따져보려면 비용이 든다. 반면 신용점수, 기존 부채, 연체 이력에 따라 금리를 높이면 적은 비용으로 고객을 분류할 수 있다. 이때 높은 금리는 위험 보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취약한 차주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장치가 된다.

신용대출에서 고금리는 위험을 키운다
담보대출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담보가 있으면 담보가치와 회수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담보 없는 신용대출에서 최종 상환 재원은 차주의 미래 소득과 현금흐름이다.
바로 그 차주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하면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늘고, 가처분소득은 줄며, 상환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위험 가산금리가 이미 존재하는 위험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위험을 실제로 키우는 것이다.
생활기반 자금에서는 이 문제가 더 뚜렷하다. 생계비, 의료비, 주거비, 교육비처럼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돈은 단순한 소비자금이 아니다. 치료를 받고, 집을 지키고, 학업을 이어가고, 실직기를 버텨 다시 일할 수 있게 하는 자금이다.
이런 돈에 고금리를 붙이면 상환능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회복 이전에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고금리는 위험을 줄이는 장치가 아니라 위험을 앞당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고금리는 역선택을 낳는다
고금리는 역선택을 낳는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비교적 안전한 차주는 시장에서 빠져나간다. 가족에게 빌리거나, 자산을 처분하거나, 더 낮은 금리의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만 고금리 시장에 남는다.
그 결과 금융기관이 마주하는 차주 집단의 평균 위험은 더 높아지고, 남은 차주의 상환능력은 높은 이자 부담 때문에 다시 악화된다. 위험을 이유로 금리를 높였지만, 그 높은 금리가 다시 위험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위험 가산금리는 위험의 가격이 아니라 위험의 생산장치다.

은행신용은 주된 화폐공급 통로다
더 중요한 점은 은행신용이 현대 경제의 핵심 화폐공급 통로라는 사실이다. 은행 대출은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돈을 나누어주는 행위가 아니다.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면 동시에 예금이 만들어지고, 그 예금은 경제 안에서 화폐처럼 기능한다.
현대의 화폐 공급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공급하는 본원통화는 전체 광의통화, 곧 M2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기준에 따라서는 약 4% 수준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시중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화폐의 대부분은 은행의 신용창조를 통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은행이 누구에게 신용을 제공하고 누구를 밀어내느냐는 단순한 사적 영업 판단을 넘어선다. 그것은 현대 화폐공급망에 대한 접근권의 문제다.
은행은 국가의 면허, 예금보험, 중앙은행 유동성, 지급결제망, 금융감독이라는 공적 인프라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은행의 신용배분은 사적 계약의 형식을 띠더라도 공적 의미를 가진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에 대한 접근은 단순한 금융상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경제 안에서 버틸 수 있는 최소 조건의 문제다.
생활기반 기본금융과 목적기반 대출
이제 필요한 것은 위험 가산금리의 단순 폐지가 아니라 위험관리 방식의 재설계다.
특히 생활기반 자금에 대해서는 “이 사람은 몇 점짜리 차주인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돈은 왜 필요한가”, “지원하지 않으면 어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가”, “어떤 상환구조를 붙이면 갚을 가능성이 높아지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생활기반 기본금융’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생활기반 기본금융’은 모든 저신용자에게 무조건 싼 돈을 빌려주자는 제도가 아니다. 모든 대출을 국가가 대신 공급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핵심은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돌봄, 재기처럼 삶의 기반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일반 대출과 구별하자는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과거 신용점수만이 아니라 자금의 목적, 필수성, 긴급성, 사용처, 상환 회복 가능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제도 설계상으로는 이를 생활기반 목적대출이라고 부를 수 있다. “누가 빌리는가”만 보는 금융에서 “왜 필요한 돈인가”를 함께 보는 금융으로 전환하자는 뜻이다.
의료비는 병원에, 교육비는 학교나 훈련기관에, 주거비는 임대인이나 보증기관에 직접 지급할 수 있다. 이미 지출한 비용은 증빙을 통해 보전할 수 있고, 생계비처럼 세세한 증빙이 어려운 영역은 소액 한도 안에서 자율성을 인정하되 상담과 상환조정을 결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 외 사용을 막는 동시에 접근성을 지나치게 낮추지 않는 균형이다.
금리는 처벌이 아니라 ‘회복의 장치’여야 한다
생활기반 기본금융에는 단일금리 또는 매우 좁은 금리폭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동일한 생활기반 목적에는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금리를 적용하고, 신용점수에 따른 차등은 최소화해야 한다.
위험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고금리 하나로만 처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직접지급, 장기분할상환, 상환유예, 보증, 상담 연계는 모두 위험관리 수단이다. 차주를 탈락시키는 대신 상환 가능성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금융을 설계하자는 뜻이다.
이를 지속하려면 공동금리조정계정도 필요하다. 고신용·고소득 일반 목적 대출에 아주 낮은 수준의 공동기여를 붙이고, 이를 생활기반 기본금융의 금리 인하와 보증료 지원, 상환유예 비용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신용자를 벌주자는 제도가 아니다. 은행신용이 사회 전체의 화폐공급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생활기반 자금의 위험과 비용을 합리적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결국 쟁점은 시장이냐 반시장이냐가 아니다. 위험을 고금리로 떠넘길 것인가, 아니면 목적과 상환구조를 함께 보며 관리할 것인가이다.
금융의 본업은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것이다. 신용점수 몇 점 차이로 사람을 고금리 시장으로 밀어내는 방식은 금융의 효율이 아니라 금융의 행정 편의일 뿐이다.
생활기반 기본금융은 금리를 ‘처벌의 도구’에서 ‘회복의 장치’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라면 금융은 먼저 그 목적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이 생활기반과 연결되어 있다면, 금리는 배제의 문턱이 아니라 상환 가능성을 되살리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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