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셔터를 누를 준비가 되셨습니까
[박정인의 정치비평]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완벽한 사진 못찍어 민주주의도 잘 작동하려면 ‘타협과 조화’ 필요 민심에 더 낮게·더 가까이 가는 민주주의를
가을이 깊어갑니다. 이 글이 올라갈 즈음이면 설악산에는 단풍이 절정을 지나고 있겠네요. 10월이 가기 전에 속리산, 내장산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의 산들이 불 타듯 물들겠지요. 한국의 가을은 한번 보고 지나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색의 미학을 과시합니다. 한해 내내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는 분이라도 문득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숲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때입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복잡한 광학 원리를 몰라도 카메라가 알아서 다 해줍니다. 조리개 값이니 셔터스피드니 하는 것들을 굳이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두면 도움은 되지만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저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생명이 없는 시커먼 기계가 어쩌면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까?’ 신기합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조화와 타협’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갈등이 생길 때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는가 하면, 부나 권력에 눈이 멀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욕심을 채우기도 합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과정도 똑같습니다.
심지어 카메라의 작동법이 민주주의 원리와 비슷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엉뚱하게 들리시나요? 한번 자세히 알아보지요. 카메라에 관심 없으신 분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지만 이 참에 카메라 기초 작동법 한번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찍는 일은 기본적으로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의 조화로 이뤄집니다. 조리개 값은 빛이 들어오는 창의 크기입니다. 조리개를 열면 많이 들어오고 조이면 적게 들어옵니다. 셔터스피드는 창을 여닫는 속도입니다. 빨리 닫으면 빛이 적게 들어오고 천천히 닫으면 많이 들어옵니다.
조리개를 열고 셔터스피드를 천천히 하면 이중으로 빛이 많이 들어오겠지요. 사진이 하얗게 바랩니다. 거꾸로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스피드도 빠르게 하면 이중으로 빛이 줄어듭니다. 사진이 어두컴컴해집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의 조화를 맞추는 게 중요한 겁니다.
다른 기능도 있습니다. 조리개를 조일수록 초점 맞는 범위가 넓어집니다. 내 바로 앞에서 뛰노는 딸 아이부터 멀리 산 정상까지 다 초점이 맞게 하려면 조리개를 많이 조여야 합니다. 셔터스피드는 빠르게 할수록 움직이는 피사체가 흔들리지 않고 정지된 모습으로 찍힙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딸 아이를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면 셔터스피드를 높여야 합니다.
아이부터 산 정상까지 초점이 다 맞고, 아이의 뛰노는 모습도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둘 다 완벽하게 만족시킬 방법은 일단 없습니다.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스피드도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사진이 컴컴해질 테니까요.
디지털 카메라는 ISO기능이 이런 상황에서도 밝게 찍을 수 있게 도와주긴 합니다. 그러나 ISO를 너무 올리면 노이즈가 생겨서 사진에 검은 가루를 뿌린 것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국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가 타협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정치에서도 초점과 속도를 잘 맞춰야
민주주의 정치도 마찬가지죠. 보수는 성장을 향해 달려가고 싶습니다. 규제는 줄이고 해고는 쉽게 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복지보다는 기업지원에 예산을 더 쓰는 게 필요합니다. 진보는 저소득층 보살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이 늦어져도 좋으니 서민 복지에 더 예산을 투입하자고 주장합니다.
둘 다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고심의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정책을 일방적으로 몰고가다간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독재로 가는 길입니다. 양쪽 원하는 대로 다 하자고 덤벼들어도 안됩니다. 재정이 파탄납니다. 항상 타협이 필요합니다. 타협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카메라는 눈 앞에 보이는 피사체를 그대로 기록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기계 제품이지요. 민주주의 역시 폭력과 굶주림을 피하고 서로 사이 좋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이데올로기 제품입니다.
세상의 똑똑한 공학자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들어내고 200년 가까이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 온 카메라도 여전히 기능과 기능 사이의 타협 없이는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협이 없는 민주주의의 결과는 예나 지금이나 갈등과 파국 뿐입니다.

‘지나치지 않음’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극단을 싫어하는 것도 카메라와 민주주의가 닮은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대한 멀리까지 초점이 맞게 하려고 조리개를 한계치까지 조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조리개를 조일수록 초점 맞는 범위가 늘어나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리개를 극단적으로 조이면 오히려 초점이 흐려집니다. 빛이 지나치게 좁아진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려다 난반사를 일으키는 겁니다. 회절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의도 불꽃 축제에 가서 각양각색의 불꽃을 다 담고 싶어서 셔터스피드를 30초 넘게 극단적으로 느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불꽃이 터진 뒤에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연기와 불꽃의 잔영이 한데 뒤섞여서 찍히는 바람에 말끔하게 반짝이는 불꽃은 사라지고 물감 번지듯 뭉개진 사진이 나오지요.
민주주의는 어떤가요? ‘지나치지 않음’이 중요합니다. 유럽의 선거 문화를 보면 극우나 극좌 정당은 아무리 대중의 인기를 끈다 해도 실제 선거에서는 단독 집권하기 어렵습니다. 항상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정당과 연정을 해야 합니다. 유권자들의 집단 지성이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걸 막는 셈입니다. 나치와 파시스트에 시달렸던 경험의 결과 같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기능 설명이 길었네요. 이제는 사진 찍는 방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여기서도 민주정치가 작동하는 모습과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 높이가 우선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통 바로 선 채로 사진을 찍지요. 혹시 어린 아이를 찍을 때 그 아이의 눈 높이까지 몸을 숙여서 찍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이라도 한번 해보시지요. 아주 어린 아기라면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 찍어보세요. 시선의 높이가 바뀌면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종군 포토그래퍼 로버트 카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건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피사체라도 한 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새로운 사진이 찍힙니다.
민주주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치인이 몸을 낮춰 유권자를 바라보면 자기가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사나 의원회관 사무실을 벗어나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보면 서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무릎이 아프고 걷기 귀찮아도 더 낮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것. 이게 바로 민주주의 대의 정치의 요체입니다.
가장 좋은 민주주의는 준비됐지만
끝으로 혹시 어떤 카메라를 써야 더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조언 한 가지 드릴까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는 라이카도 소니, 캐논, 니콘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싼 카메라나 최신 카메라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는 꼭 찍고 싶은 피사체가 눈 앞에 나타난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다.” 포토그래퍼라면 누구나 아는 명언입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장롱 안에 잠자고 있으면 소용 없으니까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민주주의도 미국식 민주주의나, 영국식 민주주의, 또는 옛 아테네식 민주주의가 아닐지 모릅니다. 당장 오늘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민주주의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운용하느냐’입니다. 정치인 뿐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고 험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피비린내가 나기도 했고, 때로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장해왔습니다. 이미 최고급 라이카 민주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결과를 내놓을 준비는 다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손 안에 있는 이 훌륭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도록 나는 참여하고, 감시하고, 격려할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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